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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년째 자리잡지 못하는 '중고차 가격조사·산정제도'...활성화 법안은 국회에 발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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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년째 자리잡지 못하는 '중고차 가격조사·산정제도'...활성화 법안은 국회에 발목
소비자 알 권리 보장 vs. 객관성 담보 보장 못해
  • 이철호 기자 bsky052@csnews.co.kr
  • 승인 2023.08.31 07:1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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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고차 상태를 진단하고 점수를 부여해 가격과 등급을 산출하는 '자동차 가격조사·산정제도(이하 가격조사·산정제도)'가 시행된 지 8년째지만 여전히 매매 과정에서 활용되는 일이 드물어 자리를 잡지 못하고 있다는 지적이다.

소비자가 중고차 매물의 가격이 어떻게 정해졌는지를 투명하게 알게 한다는 취지로 시작됐으나 의무가 아니다 보니 사문화되고 있다. 올해 들어 국회에서 제도 활성화를 위한 법안이 발의됐지만 중고차 매매업계의 반발 속에 아직 심사 상태다.

31일 업계에 따르면 중고차 거래 매물 중 가격조사·산정제도에 따라 가격 산정 이력이 기록된 매물은 전무하다시피 한 것으로 나타났다. 올해 1월~7월까지 중고차 거래대수는 총 223만3854대에 달했지만 실제로 가격이 어떻게 정해졌는지 확인할 수 있는 매물은 찾기 어려웠다.
 


주요 온라인 중고차 매매 플랫폼인 케이카·엔카닷컴·KB차차차 등에 등록된 매물의 중고차 성능·상태 점검기록부를 확인한 결과 가격 산정 내역이 기재된 매물을 찾아볼 수 없었다. 당연히 최종 가격조사·산정 금액이 적힌 매물도 없었다.

가격조사·산정제도는 지난 2016년 1월부터 중고차 품질에 대한 소비자 불안 해소를 위해 시행됐다. 중고차 매매업자는 매수인이 가격조사·산정을 원할 경우 그 결과를 매매계약을 체결하기 전 매수인에게 서면으로 공지해야 한다.

중고차 가격조사·산정 자격은 자동차 진단평가사와 기계분야 자동차 기술사에 주어지며 기준가격을 토대로 중고매물의 종합상태, 사고·교환 수리 이력, 자동차 세부상태 등에 대한 평가를 바탕으로 가격이 산정된다.

이러한 내용은 중고차 매물을 구입하려 할 때 조회할 수 있는 중고차 성능·상태점검기록부에서 확인이 가능하다.

하지만 고객이 직접 신청해야 가격조사·산정이 진행되기 때문에 중고차를 판매하는 쪽에서는 가격이 어떻게 책정됐는지 고지할 의무가 없다. 중고차 구매 과정에서 가격조사·산정제도에 대한 설명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다 보니 이를 모르는 소비자들도 상당수다.
 

▲현재는 소비자가 가격 산정을 요청할 때만 가격조사산정액이 기재된다 [출처-엔카닷컴]
▲현재는 소비자가 가격 산정을 요청할 때만 가격조사산정액이 기재된다 [출처-엔카닷컴]

박순장 소비자주권시민회의 사무처장은 "중고차 가격조사·산정제도가 있는지 제대로 알지 못하는 소비자들이 많다"며 "관련 제도와 절차가 있는데도 제대로 시행되지 않아 사문화되고 있어 개선이 필요한 상황"이라고 전했다.

국회에서는 가격조사·산정제도 활성화를 위한 법안 발의에 나서고 있다. 지난 2월 국민의힘 김학용 의원이 자동차매매업자가 고객에게 가격조사·산정제도에 관해 설명할 의무를 부여하는 법안을 대표 발의했다.

8월에는 더불어민주당 민형배 의원 등 12명의 의원이 자동차매매업자가 매매 계약 체결 전에 중고차 가격 조사·산정 고지를 의무화하고 잘못된 내용을 고지할 경우 벌금을 부과하는 법안을 발의했다. 하지만 두 법안 모두 국토교통위원회에서 계류 중이다.

가격조사·산정제도 활성화 법안에 대해 중고차 업계에서는 찬반 의견이 엇갈리는 상황이다. 찬성 측에서는 매물 가격 산정을 통해 소비자가 정보를 투명하게 확인할 수 있게 되면서 소비자 신뢰 개선에 도움이 될 것이라는 입장이다.

한국자동차진단보증협회 관계자는 "중고차 가격 조사·산정이 활성화되면 소비자가 구매하려는 중고매물이 어떻게 가격이 매겨졌는지 알 수 있어 중고차 구매에 참고자료로 삼을 수 있다"며 "투명한 정보 공개를 통해 중고차 시장의 신뢰를 확보할 수 있고 장기적으로 시장 활성화에도 도움이 된다"고 전했다.

하지만 중고차 매매업계에서는 2월에 발의된 김학용 의원안은 물론 민형배 의원안에도 반대 의사를 표하고 있다. 매물 가격 조사·산정 과정에 전문성을 보장할 수 없는 상황에서 시장원리와 맞지 않는 제도를 강요한다는 입장이다.

중고차 매매업체 관계자는 "중고차 가격 조사·산정 자격을 확보한 사업자단체가 얼마나 객관적으로 매물 가격을 책정할지 보장할 수 없는 상황"이라며 "그런 단체에서 책정한 가격이 소비자-매매업자와의 합의로 정해진 가격과 다를 경우 중고차 시장에 큰 혼란을 가져올 수 있다"고 우려했다.

자동차 전문가들은 소비자들의 알 권리를 보장하고 중고차 구매 과정에서 정보의 비대칭 문제를 해소하기 위해 가격조사·산정제도 활성화가 필요하다는 입장이다.

김필수 대림대 미래자동차학부 교수는 "소비자 입장에서는 구매하려는 중고차 매물의 연식, 주행거리, 종합적인 상태 등에 따라 어떻게 가격이 매겨지는지 아는 것이 중요하다"며 "가격조사·산정제도 활성화를 통해 중고차 시장의 투명성이 개선되면 장기적으로 소비자와 업계 모두 도움이 된다"고 전했다.

박진혁 서정대 자동차과 교수 역시 "현재는 소비자가 원할 때만 중고차의 가격 산정이 가능한 상황"이라며 "법안이 마련되면 소비자가 중고차 구매 시 궁금한 가격 관련 정보를 확인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고 밝혔다.

[소비자가만드는신문=이철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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