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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럽은 '공창 보호' vs 한국 '사창가 된서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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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럽은 '공창 보호' vs 한국 '사창가 된서리'
<유태현의 '유럽돋보기'-6>"적절 조치-판도라상자 열었다" 논란
  • 유태현 기자 yuthth@consumernews.co.kr
  • 승인 2006.11.28 07:5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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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를 위해 외국을 돌아다닐 때 새로운 현상이 나타나면 조건반사적으로 국내 상황과 비교해 보는 게 기자의 속성이다. 어쩌면 이는 기자뿐 아니라 모든 여행자들의 공통점인지도 모른다.

    이번 유럽 취재 기간 중에 가장 강렬한 대칭으로 다가온 현상 가운데 하나가 유럽의 공창제도다.

    지난 16일 오후 8시 독일 프랑크푸르트 시내 중앙역 부근. 늦은 식사를 위해 이곳에 있는 한국음식점을 찾았다. 기차역 건너편에 유명한 공창이 있다는 얘기를 들은 적이 있어 이곳에 거주하고 있는 박진석씨(40)에게 어디인지 물어봤다. 그는 이곳 마부룩대학에서 철학박사과정을 공부하고 있는 학생이다.

    “바로 뒷쪽입니다. 눈요기나 한번 해보시겠어요?”

    “가격이 얼마쯤 됩니까”

    “약50유로(약 6만5000원)쯤 이라고 들었습니다”

    “위험한 곳 아닙니까”

    “절대 위험하지 않습니다. 이곳 공창에 ‘근무’하는 사람들은 단 한푼도 속이지 않고 세금을 납부하고 있습니다. 법의 보호를 받으며 매우 떳떳하게 종사하고 있습니다. 심지어는 남편이나 애인이 출퇴근까지 시켜줍니다”

    "한국인도 많이 옵니까?"

    "엄청나게 많습니다"

    바쁜 스케줄 때문에 식사 후 박씨와 함께 공창 입구에서 잠깐 눈요기를 했다. 초저녁이지만 수많은 사람들이 홍등가를 무리지어 다니고 있었다. 동양인도 많이 보였다. 일본사람인지 중국사람인지 한국사람인지 분별은 어려웠다.

    유럽 여러 도시를 돌아보면 이 같은 공창은 모두 정부와 법의 보호를 받으며 매우 합법적으로 장사를 하고 있다. 특히 명소로 꼽히는 곳이 네덜란드 암스텔담이다. 이곳은 이미 관광명소가 됐다.

    종교적으로 매우 엄격했던 중세에도 공창은 통제 대신 보호를 받았다. 물론 사창은 금지됐다. 세금을 정확하게 냈다. 사회의 필요악으로 존재가치를 인정받았다.

    세계에서 가장 큰 공창인 암스텔담의 경우 남자 관광객만 오는 곳이 아니다. 남성과 여성 비율이 반반일 정도로 유서 깊은 관광지로 변했다. 막대한 외화를 벌어들이는 달러박스‘가 됐다.

    이곳에서 무역상사 주재원으로 근무하는 김창일씨(46)는 “꼭 ‘그 일’을 하러 오는 사람도 있지만 그냥 구경하기 위해 오는 사람들이 더 많다”고 말했다.

    “이곳에는 게임의 룰이 있습니다. 여자(창녀)가 남자를 거부할 권리가 있고, 안쪽에 있는 여자가 손님 '후보'를 살펴본 후 마음에 들어야 문을 열어줍니다. 가격도 매우 체계적으로 세분화 돼 있습니다. ‘사용’하는 신체 부위에 따라 다양하게 가격이 매겨집니다”

    청량리 588, 미아리 텍사스, 용주골, 자갈마당, 완월동, 천호동 텍사스 등 국내의 그 유명한 사창가들이 모두 된서리를 맞았다. 2004년 9월23일 노무현 정부가 성매매방지와 피해자 보호에 대한 법률과 성매매알선에 대한 법률를 시행하면서 모두 철퇴를 맞았다.

    정부가 이런 조치를 취한 데는 충분한 이유와 근거가 있다. 인권의 사각지대로 지탄을 받아왔고, 퇴폐풍조를 조장한다는 지적도 받아왔다. 세금도 제대로 내지 않고 이른바 ‘포주’들만 배를 불리는 등 수많은 부작용을 야기했기 때문이다. 기자도 이 조치의 타당성을 충분히 인정하고 공감한다.

    그러나 매우 적절한 조치라는 찬성론 못지 않게 ‘판도라 상자’를 열었다는 비난도 쏟아지고 있다.

    비난론자들의 주장에는 논란의 소지는 있지만 어느 정도 설득력이 실려 있다. 정부의 ‘극약처방’ 이후, 현재 전국 주요 도시와 읍단위 지역까지 윤락 바람이 확산됐다는 것이다.

    사창가 울타리 안에서 장사를 하던 여성들이 퇴폐이발소, 노래방, 티켓 다방, 스포츠 마시지, ‘대딸방’, 남성 전화 휴게실 등 온갖 형태의 퇴폐업소로 흩어져 이젠 통제 불능상태가 됐다는 게 이들의 주장이다.

    서울 시내 대다수 이발소들은 이발소 간판까지 내리고 ‘발 마사지’ ‘스포츠 마사지’ 등 새 간판을 내걸었다. 아예 이발사가 없는 곳도 수두룩하다고 한다. 서울 시내 술집과 모텔이 몰려 있는 곳에는 매일 밤 윤락 광고 전단이 뿌려진다.

    어디 이뿐인가? 지구촌 곳곳을 누비며 외화를 펑펑쓰면서 '섹스 관광'을 즐기는 한국인들 때문에 나라 망신까지 사고 있다. 그러나 국내에서 잘못하다가는 자칫하면 하루 아침에 전과자로 전락하고 패가망신할 수도 있으니 이들만 나무랄 수는 없다는 일부 주장도 있다.

    한국의 경우 사회보장제도가 거의 전무한 상태다. 서울은 세계에서 두 번째로 물가가 높은 도시로 부상했다. 이런 곳에서 하루 밥 세끼 먹기 어려운 궁지에 몰리면 마지막 남아 있는 생계 수단이 여성의 몸 뿐인 가정이 적지 않다. 주부 윤락은 이미 흔해 빠진 사회현상이 됐다.

    정부가 사창가 폐지 목적을 달성하려면 이들의 고통을 덜어줄 수 있는 조치부터 마련해야 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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