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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물' 삼성TV- 독일 '냉동호텔' 지배인이 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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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물' 삼성TV- 독일 '냉동호텔' 지배인이 보고 싶다
<유태현의 '유럽 돋보기'-7>그 호텔, 그 지배인, 그 TV 가 '아른'
  • 유태현 기자 yuthth@consumernews.co.kr
  • 승인 2006.11.29 07:5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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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5일 저녁 10시 독일 서부도시 아헨의 베스트 웨스턴 호텔. 나이가 족히 15-20년된 듯한 '늙은' 삼성전자 TV와 전자레인지가 비치된 아담한 방에 들어갔다.

    문제는 냉방이었다. 스팀 온도계를 끝까지 올렸으나 끝내 온기는 없었다. 11월 중순의 바깥 온도가 이미 한 자릿수로 떨어졌으니 온기 없는 방에서 잠 자는 것이 쉽지 않았다.

    희한하게도 온수는 나왔다. 김조차 나지 않는 온수였다. 소름이 돋는 것을 가까스로 면할 정도였다. 샤워실도 콧구멍 만했다.

    다음 날 아침 뷔페식당에서 뒤셀도르프 의료기기 전시회 행사에 참석하기 위해 온 한국인들도 이구동성으로 침실 난방 문제로 벌벌 떨었다고 입을 모았다.

    16일 저녁 고단한 하루 취재 활동을 마치고 호텔로 들어왔다. 너무 추워서 도저히 잠을 잘 수 없을 것 같았다. 또 스팀 온도계를 올리고 기다렸으나 미동도 하지 않았다.

    도저히 참을 수 없어 호텔 매니저에게 전화를 걸었다. 스팀 고장인 것 같으니 잠깐 올라와 달라고 했다. 게슈타포 간부 풍채의 건장한 매니저가 와서 스팀을 만져보고 온도계를 가동해보더니 “고장인 것 같다”며 대책을 마련해주겠다고 하고는 나갔다.

    그러나 감감 무소식. 20여분 기다린 후에 다시 전화했다. 매니저는 "기술자들이 모두 퇴근해 어쩔 수 없다"며 이불만 더 갖다주겠다고 한다. 세계적인 체인망을 갖춘 호텔에서 이런 불친절이 있을 수 있나?

    고객이 불만을 제기했는데 답변도 없다가 마지 못해 올라와 겨우 이불 하나 주고 입 다물라니…. 방을 바꿔달라고 거세게 항의했으나 호텔방이 만원이어서 불가능하다며 어깻짓만 반복해댄다.  아무 소득 없이 입씨름만 하다가 어쩔 수 없이 이불 두 개를 겹쳐 덮고 잠을 청할 수밖에.

    그런데 이게 웬일인가. 새벽이 되자 고장났던 스팀이 정상 가동되며 열을 푹푹 뿜어냈다. 조금만 추워도 후끈후끈하게 난방을 하는 데 익숙한 한국인 투숙객들의 거센 항의가 빗발치자 수은주가 영하로 떨어져야 난방을 제대로 한다는 불문율을 깬 것이다.

고장났다는 것도 거짓말이었던 셈이다. 독일의 전형적인 난방문화다. 에너지 절약을 위해 고객이 뭐라고 하든 난방은 자신들이 정해 놓은 일정량만 허용하는 것이다. 이같은 난방문화는 독일의 일반가정도 예외가 아니라고 한다.

     “독일 사람들은 한겨울이라도 보통 냉방에서 잔다. 침실에 스팀이 아예 없는 가정도 수두룩하다. 얼음 같은 냉방에 들어가서 두꺼운 오리털이나 거위털 이불을 덮고 잔다. 처음 잠자리에 들 때는 관에 들어가는 것처럼 진저리치게 춥지만 체온으로 이불이 덮혀지면 그런대로 잘 만하다.”

    뒤셀도르프에 거주하는 교민 이경희(48)씨의 말이다.

    거실 실내 온도를 섭씨 18도 이상으로 끌어올리는 가정이 거의 없다고 한다. 한겨울에 반 팔 입고 창문 열고 사는 우리네 모습에 비하면 ‘쩨쩨하기 ’그지없는 모습이다. 에너지 절약이 어디 난방뿐이랴. 독일을 여행해본 사람은 호텔 문화가 다른 나라들과는 다르다는 것을 실감한다.

    독일 호텔에는 일회용품이 전혀 없다. 요즘 동남아 호화 호텔도 치약, 칫솔은 없앴지만 그외 샴푸, 린스, 보디샴푸, 스킨로션, 비누 등은 모두 비치돼 있다. 그러나 독일에선 샴푸, 린스, 보디샴푸, 비누 등이 한데 뭉뚱그린 액체 비누 한가지만 있을 뿐이다.

    그것도 커다란 통에 넣어진 공용품이다. 일회용 스킨로션, 슬리퍼, 목욕가운 등은 상상도 할 수 없는 것들이다. 웬만한 호텔엔 욕조도 없다. 샤워부스만 있다. 샤워로 만족하란 소리다. 보통 볼펜을 비치하는 다른 호텔과 달리 이 호텔의 룸 테이블엔 겨우 깎은 연필 한 자루만 놓여있다.

    독일의 1인 당 국민소득은 3만3390달러로 우리나라(1만4151달러)의 2.7배에 달한다. 에너지 소비행태를 보면 우리나라가 독일보다 국민소득이 훨씬 높은 나라다.

서울 시내엔 아우디 BMW 벤츠 등 독일의 배기량 3000cc이상 차량이 도로에 즐비하다. 정작 독일에 가면 이렇게 큰 차를 거리에서 구경하기조차 어렵다.

호텔 객실에 있는 낡은 삼성TV도 독일인들의 근검 절약 문화의 한 단면이다. 세계 어느 나라의 1급 호텔에서도 이렇게 낡은 TV를 본 적이 없다.

어설픈 거짓말을 한 후 불문율을 깬 아헨의 '구두쇠 호텔'에서 지배인과 두 시간 동안 싸운 나 자신이 부끄럽다. 그리고 그 분을 존경한다. 다시 그 지역을 찾으면 반드시 그 곳에 머물고 싶다. 그리고 낡은 삼성TV가 또 보고싶다. 그렇게 지독한 호텔에서 만약 삼성전자 TV 품질이 좋지 않았다면 15-20년이나 쓸 수 있었을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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