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해진 공통 기준이 없다 보니 일부 기업은 유리한 기준으로, 일부 기업은 보수적인 기준으로 연구개발비와 매출 대비 R&D(연구개발) 비율을 산정하고 있다.
제약바이오를 비교 평가하는 지표로 가장 많이 참고되는 R&D 데이터가 기업 입맛대로 가공돼 투자자와 관련자에게 왜곡된 정보를 줄 수 있다는 지적이 일고 있다.
16일 국내 주요 상장 제약바이오사 20곳이 금융감독원 전자공시시스템에 제출한 정기보고서에서 연구개발비 기재 현황을 조사한 결과, 대다수 기업이 자신들에 유리한 기준을 적용해 R&D 비용을 산정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종근당, 한미약품, 보령, 동아ST, 휴온스 등 9곳은 연결과 별도 재무제표 기준으로 연구개발비를 모두 기재한 반면 광동제약과 대웅제약, JW중외제약, 동국제약, 일동제약 5곳은 별도 기준으로만 기재했다.
별도 기준으로 산정한 매출은 연결보다 작기 때문에 매출 대비 R&D 비율이 상대적으로 높게 나오게 된다. 이 경우 R&D 투자에 적극적으로 투자하는 기업으로 실제보다 과장되게 비춰질 수 있다.
SK바이오사이언스와 셀트리온제약은 연결 대상 종속기업이 없어 별도로 기재됐고 유한양행과 HK이노엔, 제일약품 3곳은 연결 기준으로만 기재했다.
셀트리온의 경우 지난 한해 정부보조금을 합산한 연구개발비는 총 4304억 원으로 연결 연매출 1조9116억 원의 22.5% 비중이었다. 그러나 정부보조금 324억 원을 제한 3980억 원 매출 대비로 비중을 산정, 1.7%포인트가 낮아진 20.8%를 공시했다.
보령과 한독도 마찬가지다. 2018년 이들 업체가 공시한 매출 대비 R&D 비중은 각 7.2%, 4.7%인데 정부보조금 차감 전 비용으로 산정하면 7.5%, 4.8%로 나타났다.
GC녹십자는 정부보조금 차감 전 비용으로 매출 대비 R&D 비율을 산정하고 있는데 지난 한해 연구개발비를 정부보조금 차감 이후로 산정하면 1.1%포인트 하락한 10.1%가 된다.
특히 SK바이오사이언스는 정부보조금 차감 후로 매출 대비 R&D 산정 시 무려 5.6%포인트 차가 벌어졌다.
동아ST는 연구개발비와 매출 대비 R&D 비율을 경쟁업체 대비 보수적으로 산정해 데이터 축소 왜곡 현상이 나타났다.
올해 3분기 기준 동아ST가 공시한 매출 대비 R&D 비중은 10.8%다. 올 3분기까지 사용한 연구개발비 520억 원으로 산정했다는데 실제 이 연구개발비는 판매관리비에 한했다.
경쟁업체들은 판매관리비에 제조경비, 개발비(무형자산), 정부보조금 등을 합산한 금액을 연구개발비로 보고 매출 대비 R&D 비율을 구하는 것과 대조된다. 이 금액들을 모두 적용해 산정한 동아ST의 매출 대비 R&D 비율은 17.5%로, 판매관리비만 적용한 10.8% 대비 무려 6.7%포인트 상승하게 된다.
동아ST 관계자는 "연구개발비는 정부보조금을 차감하고 판매관리비로 계상된 금액으로 작성하고 있다. 재무제표상 비용으로 인식되는 금액은 결국 판관비므로 이 기준을 적용해 비율을 계산, 기재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정부보조금의 경우 정부 보조금에 부수되는 조건을 준수하고 그 보조금을 수취하는 것에 대해 합리적인 확신이 있을 경우에만 인식한다고 덧붙였다.
금융감독원이 '기업공시서식 작성기준'과 '제약·바이오 기업 사업보고서 기재 모범사례' 등을 배포해 작성 방법과 기준을 안내하고 있지만 강제력이 없는 가이드라인이다 보니 잘 지켜지고 있지 않다.
지난 달 개정된 기업공시서식 작성기준 제4-2-11조에선 연구개발비에 대해 연구활동이나 개발활동과 직접 관련이 있거나 합리적이고 일관성 있는 기준에 따라 그러한 활동에 배부될 수 있는 모든 지출을 포함한다고만 규정하고 있다. 또 효과적인 정보 제공을 위해 다양한 형태의 표를 이용하거나 서술식으로 기재할 수 있고, 정부보조금을 차감하기 전의 지출 총액으로 연구개발비와 매출 대비 비율을 산정한다고 했다.
금융감독원 측은 "가이드라인이라는 큰 틀 아래 세부적인 내용은 자율적인 기준으로 운영되고 있다"고 말했다.
공통 기준이 적용되지 않은 정보가 공시·비교되면서 투자자들이 왜곡된 정보를 제공받을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제약바이오업계 한 관계자는 "기준은 다소 다르지만 투자자들을 속일 만한 데이터 왜곡은 없을 것이다. 투자 시에는 공시 정보를 맹신하면 안 되며 참고 자료로만 사용해야 한다"고 말했다.
[소비자가만드는신문=김경애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