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일 서울고법 형사13부(백강진‧김선희‧이인수 부장판사)는 이 회장의 19개 혐의에 대해 모두 무죄를 선고했다. 이는 지난해 2월 1심 무죄 선고 이후 1년 만이다.
재판부는 함께 기소된 최지성 전 삼성그룹 미래전략실(미전실) 실장을 포함해 김종중 전 미전실 전략팀장, 장충기 전 미전실 차장 등 나머지 피고인 13명에게도 원심과 같이 무죄를 선고했다.
이번 항소심에서는 삼성바이오로직스의 분식회계 혐의 입증이 가장 큰 쟁점 사안이었다.
재판부는 삼성바이오로직스의 허위공시‧부정회계와 관련해 “(바이오젠의) 콜옵션이 행사되면 로직스가 (에피스에 대한) 지배력을 잃는다는 사실이 주요 위험이라고 공시했어야 된다고 본다”면서도 “하지만 은폐한 것으로 보기는 어렵다고 본다”고 말했다.
이 밖에도 △각종 자본시장법상 부정거래 행위 및 시세조종 △허위 호재 공표 △중요 정보 은폐 △거짓 정보 유포 △국민연금 의결권 확보를 위한 불법 로비 등에서도 차례로 판단한 뒤 검찰 측 주장을 모두 기각했다.
재판부는 “검찰 측의 여러 이유를 모아보더라도 공소사실에 대해서는 형사 책임을 인정할 수 없다”면서 “피고인들에 대한 항소를 모두 기각한다"고 판결했다.
재판이 끝난 후 이 회장 변호인단은 "이번 판결을 계기로 피고인들이 본연의 업무에 전념할 수 있게 되기를 희망한다"면서 앞으로 이 회장의 행보에 대해서는 “추가로 말씀드릴 수 있는 게 없다”며 말을 아꼈다.
이번 판결로 사법리스크 족쇄에서 풀려난 만큼 이 회장은 뉴삼성 구축으로 위기를 극복하기 위한 경영 보폭을 넓힐 것으로 전망된다.
삼성그룹의 대표 계열사인 삼성전자는 성장성이 큰 고대역폭 메모리(HBM) 시장에서 SK하이닉스에 밀리고 범용(레거시) 메모리의 부진 등으로 시장 기대에 못 미치는 실적을 기록하는 등 전방위적 위기에 빠져 있다.
삼성전자 반도체 사업의 지난해 영업이익은 15조1000억 원으로, SK하이닉스(23조4673억 원)보다 8조 원 이상 적다. 지난해 4분기만 보면 가전과 스마트폰까지 포함한 전사 영업이익이 처음으로 SK하이닉스에 추월당했다. 파운드리 사업은 여전히 수조원대의 적자를 기록하고 있다.
지난해 사상 첫 노조 파업을 겪은 데 이어 노사 갈등도 여전히 진행 중이다. 여기에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취임 이후 관세 부과와 반도체 보조금 지출 중단 움직임 등으로 경영 불확실성도 커진 상태다.
이 같은 위기 상황에서 이 회장이 사법리스크를 벗은 삼성전자는 먹거리 발굴을 위한 대규모 투자 단행은 물론 과거 그룹의 구심점이었던 미래전략실 재건에 나설 것으로 관측된다.
미전실은 지난 2017년 국정농단 사태로 인해 해체됐으나 최근 삼성이 위기에 봉착하면서 재건에 대한 필요성이 꾸준히 제기됐다.
특히 삼성 준법감시위원회 이찬희 위원장 역시 지난해 그룹 컨트롤 타워가 필요하다는 발언을 한 바 있다. 삼성전자와 같은 대규모 기업이 핵심 현안에 기민하게 대응하고 중장기 사업 전략을 짜기 위해서는 컨트롤타워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더욱이 삼성전자는 올해 조직개편을 통해서 삼성글로벌리서치(옛 삼성경제연구소) 내 관계사 경영진단과 컨설팅 기능을 수행하는 사장급 조직인 경영진단실을 신설한 바 있다.
재계에서는 삼성그룹의 컨트롤타워 재건과정에서 경영진단실이 그 발판 역할을 수행할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이 회장은 지난 2019년부터 유지했던 미등기임원 신분을 벗어나 등기임원에 오를 것으로 관측된다. 이르면 3월 열리는 주주총회를 통해 등기임원에 복귀할 지 관심이 모아진다.
반도체 사업 주도권 확보에도 시동을 걸 것으로 예상된다. 삼성전자 반도체 사업은 고대역폭메모리 (HBM)에서 SK하이닉스에게 밀리고, 파운드리는 대만 TSMC에 치이면서 난항에 부딪쳤다. 기술격차를 줄이기 위한 대규모 투자도 이뤄질 것으로 보인다.
미래 준비를 위한 '세상에 없던' 신사업 발굴에도 한층 속도를 낼 것으로 보인다.
이 회장은 2016년부터 10년여간 최순실 국정농단 사건에 휘말리면서 560일간 구속수감됐으며, 2020년부터는 삼성물산-제일모직 합병 및 삼성바이오로직스 시세조정 혐의로 100차례가 넘도록 재판에 출석했다.
이번 무죄 선고로 사실상 이 회장이 경영에만 100% 전념할 수 있는 환경이 갖춰진 만큼 삼성의 초격차를 이끌며 경영 능력을 본격적으로 발휘할 때라는 분석도 나온다.
한편 앞서 이 회장은 지난 2015년 경영권 승계와 그룹 지배력 강화를 위해 삼성물산-제일모집 합병 과정에서 위법하게 관련했다는 혐의로 2020년 9월 재판에 넘겨졌다. 검찰 측은 이 회장이 합병 과정에서 부정거래와 시세조정 등 위법행위를 저질렀다고 판단했다.
지난해 진행된 1심에서는 이 회장 등 삼성전자 전‧현직 임직원 전원에게 무죄가 선고됐다. 당시 재판부는 이 회장의 경영권 승계나 지배력 강화가 합병의 유일한 목적이 아니었으며 합병비율이 불공정했거나 주주에게 손해를 끼쳤다고 인정할 만한 증거가 없다고 판단을 내렸다.
[소비자가만드는신문=선다혜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