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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뷰] 나도 모르게 눈물을 훔치게 되는 정말 ‘평범한’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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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뷰] 나도 모르게 눈물을 훔치게 되는 정말 ‘평범한’ 이야기
연극 ‘친정엄마와 2박 3일’
  • 뉴스관리자 csnews@csnews.co.kr
  • 승인 2009.07.15 1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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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년 영국문화협회에서는 102개의 비영어권 국가에 사는 4만 명을 대상으로 설문을 실시했다. 선정된 70여 개의 단어 중 ‘가장 아름다운 말’을 선택하는 것이었다. 열정, 미소, 영원 등 온갖 좋은 단어들을 다 제치고 가장 아름다운 말로 뽑힌 단어는 바로 엄마(Mother). 누군가를 사랑하게 되거나 일에 바빠질 때 가장 먼저 잊어버리게 되는 것은 아마 엄마, 가족, 어릴 적 추억 등이다. 그러나 그들은 힘들 때마다 뒤돌아보면 그 자리에 있기 때문에 더욱 아름답다. 떠올리기만 해도 울컥해서 마음속에 꼬깃하게 접어놓은 그 온기를 이야기한 공연, 바로 ‘친정엄마와 2박 3일’이다.

- 무대 위로 끌어올려진 너무나도 평범한 이야기

대학을 졸업하고 좋은 집에 시집간 딸 미란이 어느 날 연락도 없이 친정 엄마에게 왔다. 두 사람은 이런저런 지난 이야기를 나누며 간만에 함께하는 시간을 보낸다. 그러나 어딘가 좋지 않아 보이는 미란의 모습에 친정엄마는 반가운 중에서도 계속 걱정이 된다. 사실 미란은 말기 암을 통지 받은 상태. 미란이 있는 곳을 알고 달려온 큰오빠가 어머니께 사실을 고백하며 두 사람은 이별의 준비를 한다. 평범하게 떠올릴법한 슬픈 이야기다. 연극의 캐릭터 역시 그러하다. 학교 문턱도 밟아 본적 없고, 어이없으리만큼 헌신적인 엄마. 혼자 있는 방에 기름 값이 아깝다고 보일러도 안 틀고, 딸이 버리고 간 옷을 아깝다고 입고 다닌다. 사실 평범하다 못해 진부하다. 그런데 관객들의 태반은 눈물을 훌쩍이고 있다. 암전은 눈물을 닦는 바스락거림으로 더 이상 조용하지 않다. 이 연극이 바로 평범한 이야기이기 때문이다. 자신이 엄마와 나누던, 그러나 쉽게 잊고 있었던 그 어투와 그 대화들을 바라보며 관객들은 연극에 깊게 동화된다. 하나라도 더 독특하고 자극적이며 신선한 것만을 말하려는 세상에서 그런 이야기를 방구석에 치워두지 않고 끌어낸 작가 고혜정의 따뜻한 감성이 돋보인다.

- 추억들을 매끄럽게 겹쳐낸 장면 연출 기법

구태환 연출은 장면을 물리적으로도 시간적으로도 잘 겹쳐놓았다. 이런 세심한 연결 덕분에 잔잔한 공연이지만 지루하지 않다. 기둥만 남아 있는 집에 마임과 효과음을 더해 문 여닫는 것을 표현하는 방식은 시선을 끈다. 친정집과 기차역 대합실, 병원을 조명 하나로 오가는 방식은 세트 이동 하나 없는 무대장치지만 타박할 거리를 만들지 않는다. 장소뿐만 아니라 시간을 넘나듦도 자연스럽다. 미란이 사진첩을 펴 들면 어린 미란이 뛰어나온다. 또, 엄마가 국민학교 담임선생님이랑 실컷 대화하다가 갑자기 평상으로 고개를 돌리며 현실의 미란에게 “내가 그 때 그랬단 말이다”라고 말한다. 이러한 연출법은 훈훈하고 재미있게 관객들을 두 사람의 추억 속으로 이끈다.

- 엄마, 내 엄마여서 고마워

연극 ‘친정엄마와 2박 3일’의 백미는 단연 마지막 이별 장면이다. 앞에서 조각조각 패치워크 된 장면들은 바로 이 클라이맥스를 위한 연결단계이다. 죽음과 삶, 과거와 현실이 겹쳐진다. 그 속에서 모녀는 점점 멀어져 간다. 2박 3일간 같이 있으며 “엄마, 궁상 좀 떨지마”“넌 너랑 똑 같은 딸 낳아서 길러봐라”하며 타박에 잔소리만 하던 모녀가 극중에서 드물게 서로 들리지 않는 상태에서 방백을 한다. 서로 쳐다보고 있지만 유리된 상황이 가슴을 죄어온다. “엄마, 내 엄마여서 고마워” “너한테는 참말로 미안허지만 나는 니가 내 딸로 태어나줘서 고맙다.” 삶을 정리한 딸이 차마 떠나지 못하고 몇 번이고 뒤를 돌아보고, 오열하는 엄마를 위로하듯 하늘에서는 하얗게 꽃가루가 날린다. 암전 후에 무대에는 두 모녀가 다정하게 찍은 사진 한 장만 남아있다. 마치 외로운 시간이 다 지난 뒤 같다. 마지막까지 따뜻한 결말은 “글을 몰라서 죽어서도 너 있는 곳을 못 찾을 것 같아 두렵다”는 친정엄마가 분명 언젠가 미란을 만났을 것을 상상하게 한다.

포스터에는 “단, 22952분에게만 허락된 감동의 시간!”이라고 쓰여 있다. 저 혼자 잘나서 잘 사는 줄 알던 딸과 세상에서 가장 보람 있는 일이 딸을 낳은 것이라는 엄마의 이야기는 무대 위에만 있는 것은 아닐 것이다. 꼭 한번은 미란처럼 “미안해요, 사랑해요”라고 말하고 싶은 자식들이 비단 22952명뿐이랴. 포스터 속 친정엄마의 눈가 주름을 세다가 생각해본다. 조금은 더 많은 자식들이 그 감동의 시간을 허락 받았으면 좋겠다고 말이다.

[뉴스테이지=백수향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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