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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수현의 스테이지피플] 강아지의 눈빛과 고양이의 몸짓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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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수현의 스테이지피플] 강아지의 눈빛과 고양이의 몸짓
뮤지컬 배우 ‘박영수’
  • 뉴스관리자 csnews@csnews.co.kr
  • 승인 2009.07.20 15: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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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재력 있는 파릇한 신인을 만나는 것은 항상 즐겁다. 특히 몸을 제대로 쓰는 배우가 그리 많지 않는 국내 뮤지컬 현실에서 춤에 느낌을 실을 줄 아는 신인을 만나는 것은 더욱 반가운 일이다. 서울예술단의 신입 단원 박영수는 그렇게 나의 눈에 들어왔다. 댄스컬 ‘15분 23초’의 앙상블을 거쳐 지난 달 막을 내린 뮤지컬 ‘바람의 나라’에서 고구려의 신비로운 상장군 괴유 역으로 무대에 선 박영수는 우아하면서도 힘이 넘치는 몸짓으로 관객의 시선을 사로잡았다. 그렇게 뮤지컬 마니아의 레이더에 포착된 박영수와 이야기를 나누며 나는 세 번 놀라게 된다. 보기보다 많은 나이에, 인상과는 다른 고집에, 그리고 연기에 대한 열정에……. 일대일 인터뷰는 처음이라며 뭘 보고 자신을 인터뷰하느냐고 진지하게 되묻는 이 생짜 신인을 지금부터 파헤쳐 보자. 팍팍!!

- 배우가 되기 위해 무작정 상경한 부산 청년

카리스마 넘치는 괴유는 오간데 없었다. 긴 팔다리로 무대 위에서 마치 고양이처럼 가볍고 우아한 몸짓을 뽐내던 박영수는 가까이서 보니 참 선한 눈을 가졌다. 던지는 질문마다 열심히 대답하는 모양새가 순하고 똘망한 강아지 같다. 82년생, 우리 나이로 스물 여덟. 보기보다 제법 나이가 있는 박영수는 부산이 고향이다. 본래 농구 선수가 되고 싶었던 그는 자신의 한계를 깨닫고 고3 때 꿈을 접었단다.

“농구를 포기하고 3개월 동안 정말 미친 듯이 공부만 해봤어요. 그런데 도저히 공부는 제 길이 아닌 거예요. (웃음) 진로에 대해 고민하던 중에 친구랑 버스를 타고 가다가 MBC 아카데미 광고 전단지를 보고 이거다 싶더라고요. 설명할 순 없지만 느낌이 딱 왔다고나 할까. 아! 그 광고를 같이 본 친구가 지금 드라마 ‘친구’에서 중호로 출연하고 있어요. (웃음) 그런데 연기를 하겠다고 하니까 부모님 반대가 심했어요. 그럼 제가 벌어서 하겠습니다 하고 무작정 수원으로 갔죠. 거기 공장에서 8개월 정도를 일해서 돈을 모아 학원비를 마련했어요. 제가 보기보다 오기도 있고 고집도 있거든요. (웃음)

낮에는 연기를 배우고 밤에는 수능 공부를 하며 입시 준비를 했지만 박영수는 번번이 대학 문턱에서 좌절했다. 그래도 꿈을 포기할 수 없어 부산의 극단에 들어가 무대 감각을 익히다가 입대했다. 눈이 나빠 공익으로 근무하던 중 서울예술대학에 지원한 그는 드디어 합격 통지를 받고 05학번으로 입학하게 된다. 4수만이었다.

“연기에 있어서 제 기본적인 마인드는 기본에 충실하자는 거예요. 대학 3년은 기본기를 충실히 다지는 시간이었죠. 연기, 노래, 춤 모두. 특히 노래는 정말 열심히 배웠어요. 제가 노래가 워낙 안됐었거든요. 피아노도 못 치고. 가진 거라곤 열정뿐이었는데 졸업할 때쯤 되니까 교수님들께서 노력한 만큼 성장한 것 같다고 해주셔서 뿌듯했어요. (웃음)

그렇게 알찬 대학 시절을 보낸 박영수는 올해 초 수십 대 일의 경쟁을 뚫고 서울예술단 새내기가 되었다. 배울 것이 많은 자상한 선배들이 있어 무척 든든하다고.


- 박영수의 괴유를 완성하기까지

박영수는 지난 달 결코 잊을 수 없는 경험을 했다. 서울예술단의 인기 창작 뮤지컬 ‘바람의 나라’에서 괴유 역을 맡아 무대에 오른 것. 영상으로만 보고 입을 다물지 못했던 공연에 비중 있는 캐릭터로 출연하게 되어 긴장되면서도 기쁘기 그지없었다. 고구려 3대 대무신왕 무휼의 전쟁과 사랑 이야기를 다루고 있는 ‘바람의 나라’에서 괴유는 작품을 통틀어 비주얼적으로 가장 눈에 띄는 신비로운 캐릭터다.

“기록에 보면 괴유는 키가 무척 크고 하얀 피부를 가졌다고 해요. 그래서 러시아 사람이 아니었을까 하는 분석도 있죠. 캐릭터를 위해 8년 만에 염색을 했어요. 어렸을 땐 안해본 색깔이 없을 정도로 다양하게 염색을 해봤는데 오랜만에 하니까 되게 어색하더라고요. (웃음) 상반신에 헤나 문신도 했는데 씻을 때마다 참 조심스러웠죠,”

박영수가 생각하는 괴유란 캐릭터는 모든 것을 놓고 있는 인물이다. 사사로운 욕망에 얽매이지 않고 주어진 운명을 묵묵히 받아들이는 사람. 항상 무휼 뒤에서 그를 지키며 무휼의 존재감을 공고히 다져주는 사람. 그런 박영수의 괴유가 가장 빛나는 순간은 ‘바람의 나라’의 백미인 전쟁씬에서다. 전쟁씬에서 그는 시쳇말로 정말 날아다녔다. 대학 입시를 위해 연마했던 아크로바틱이 많이 도움이 되었다고.

“부산에서는 아크로바틱을 전문적으로 가르쳐 주는 곳이 없어요. 그래서 영상을 보고 혼자 연구하고 습득했죠. 요령이 없어서 머리가 깨지기도 하고 얼굴이 아스팔트에 갈린 적도 있어요. (웃음) 지금은 어떤 동작을 하던 다치지 않게 제 몸을 컨트롤할 정도는 되요.”

몸을 쓰는 것에 어느 정도 자신이 있었지만 완벽한 괴유를 완성하기 위해 박영수는 노력을 아끼지 않았다. 괴유의 무기인 단검을 자유자재로 다루기 위해 연습하느라 손은 상처투성이가 되었고 손가락 마디마디엔 굳은살이 배겼다. 군살 없는 몸을 만들기 위해 신대방 집에서 서초동 공연장까지 자전거와 조깅으로 출퇴근하느라 가뜩이나 없는 얼굴 살이 쏙 빠졌다. 그렇지만 무엇보다 어려웠던 것은 신비로운 괴유의 아우라를 표현하는 것이었다.

“전 천성적으로 밝은 성격이에요. 괴유는 보기만 해도 고독과 슬픔이 절로 묻어나야 하는데 말이죠. 선배님들이나 이지나 연출님으로부터 조언도 많이 구하고 스스로를 억압하면서 괴유란 인물에 빠지려 애썼어요. 그러다 보니 자연스레 말수도 장난기도 줄더라고요. 공연 직전엔 좀 우울해지기도 하고요.”

괴유 캐릭터를 만들어가는 데는 더블 캐스팅이었던 김산호의 도움도 컸다. 대학 선배이기도 한 김산호는 이전 시즌에서 괴유로 무대에 섰던 노하우를 아낌없이 전수해 주었단다.

“산호 형이 나이는 저보다 한 살 많지만 학번은 다섯 학번이나 위여서 학교 다닐 때는 마주친 적이 없어요. 그저 전설로만 들었죠. 실물 보면 끝장이다. 9등신이다. 작살 간지다 등등. (웃음) 저도 나름 얼굴 작단 소릴 듣는데 산호 형 옆에 서면 완전 굴욕이에요. (웃음) 산호 형이 너무 많은 깨달음과 도움을 주셨어요.”


- 뮤지컬 신(神)을 꿈꾼다

박영수는 이제 막 뮤지컬 배우로 첫 걸음을 시작한 신인 배우다. 김무열, 홍광호 등 한창 잘 나가는 82년생 동갑내기 배우들을 보면 조급한 마음이 들지 않느냐고 물었다. 그런데 이 친구 연기에 대한 마음가짐이 제법 단단하다.

“저보다 어린 분들도 잘 나가는 분들 많은걸요. (웃음) 대학 때 지도 교수님이 이런 말씀을 해주셨어요. 진짜 배우, 오래 가는 배우가 되고 싶으면 차근차근 천천히 밟아가라는. 말씀드렸다시피 전 기본에 충실하다보면 언젠가는 많은 분들이 알아주실 날이 올 거라 믿어요. 그리고 이건 여담인데, 홍광호라는 친구는 한번 만나보고 싶은 배우예요. (웃음) 그 배우 소리가 너무 좋거든요. 그 친구가 ‘스위니토드’에서 노래 부르는 걸 봤는데 소름이 쫙 돋더라고요. 제가 노래 욕심이 좀 많아서……. (웃음)

그렇다면 배우로서 드라마나 영화 등 다양한 분야에 진출하는 것에 대한 욕심은 없을까? 이런 질문을 하면 보통 장르를 가리지 않고 도전하고 싶다는 대답을 듣게 마련인데, 박영수는 무대가 좋다고 잘라 말했다.

“서울에 와서 영화나 드라마 오디션을 먼저 봤다면 어땠을지 모르지만 제가 처음 경험한 분야가 무대였고 그 무대가 너무 좋아요. 극단에서 청소하고 의상 바느질하며 연기를 배우면서 2년 동안 받은 페이가 125만원이었어요. 먹고 살기 위해 아르바이트를 병행해야 하는 힘든 생활이었지만 연기에 눈뜨게 해준 소중한 시간이었죠. 그래서 전 스타라는 헛된 꿈보다는요. 진짜 연기자가 되고 싶어요.”

이렇게 단단한 연기관을 가진 박영수의 지향점은 뮤지컬 신(神)이다. 스포트라이트를 독차지하는 주연 배우를 꿈꾼다는 의미가 아니다. 물론 ‘레미제라블’의 장발장, ‘오페라의 유령’의 팬텀, ‘캣츠’의 럼텀터거 등 해보고 싶은 역할은 헤아릴 수 없이 많지만 그보다는 연기와 노래, 춤 3박자를 완벽히 갖춘 다재다능한 배우가 되고 싶다는 뜻이다. 그런 의미에서 그의 롤 모델은 예술단 출신의 중견 뮤지컬 배우 송용태다.

“송용태 선생님에 대한 수식어가 있어요. 슈퍼 코러스! 선생님이 출연하면 그 공연은 빛이 난데요. 저도 그런 평가를 받는 배우가 되고 싶어요. 주연이든 조연이든 그 배우의 출연 여부에 따라 공연의 질이 달라지는 그런 배우요. 남들은 꿈을 좀 크게 가져라 할 수 있겠지만, 전 어설픈 주인공보다는 완벽한 앙상블을 택하겠어요.”

고작 작품 한 편만 보고 배우의 미래를 점치는 것은 성급한 일임에 틀림없다. 하지만 이야기를 나눌수록 기특하고 반듯한 심지를 가진 박영수라는 신인은 지켜볼만한 가치가 있는 배우다. 강아지의 눈망울과 고양이의 몸놀림을 동시에 갖고 있는 그가 자신의 꿈을 마음껏 펼칠 날을 기대해 본다.

[뉴스테이지=조수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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