캐플러 박사가 소속된 기관인 국제전통음악협회(ICTM: International Council for Traditional Music)는 각국의 음악 및 춤의 연구와 보존을 목적으로 하는 세계적인 예술연구단체이며, 미국 워싱턴 D. C.에 위치한 세계 최고의 아카이브인 스미소니언박물관은 지난해 6월 개별국가로는 처음으로 독립적인 전시공간인 ‘한국실’이 문을 연 곳이다. 그리고 케플러 박사가 회장으로 활동하고 있는 세계무용연맹(WDA: World Dance Alliance)은 비영리적, 비정치적, 비종교적인 NGO로써 세계 무용계에서 주도적 역할을 담당하는 기관이다. 캐플러 박사의 연구 성과들은 발표하는 즉시 세계 무용/음악학의 중심 경향이 되고 있다.
한국에 대해 특별한 애정을 갖고 있는 캐플러 박사는 한국무용가 배한라의 제자로 오랜 기간 한국 전통춤을 배웠고 이론적 연구도 계속해오고 있다. 인터뷰 도중 짧지만 몇 가지 한국춤 동작을 보여주었는데 금발의 노학자에게서 기대할 수 없는 놀랍도록 아름다운 호흡이었다. 춤전문 학자 애드리언 캐플러에게서 춤기록과 한국춤에 대한 견해를 들어보았다.
(다음은 월간 ‘춤과 사람들’ 2008년 6월호에 게재된 글의 일부이다.)
▶ 오래 전에도 한국을 방문하셨다고 들었습니다.
△ 제가 대학생 때인 1960년대에 처음으로 한국에 왔으니 꽤 오래 전 이네요. 최근에 방문 한 것은 1996년 김천흥 기념사업 때문이었고 이번 방문이 네 번째가 됩니다.
▶ 국제학술심포지엄 때문에 방한 하셨죠?
△ 그렇습니다. 춤 아카이브에 관한 심포지엄에 참가하고 이화여대와 서울대학교, 그리고 한국예술 종합학교에서 강의했습니다. 한국무용기록학회와는 처음 교류하는 것이고 한국예술종합학교는 나의 제자였던 주성혜교수와의 인연으로 방문하게 된 것입니다.
▶ 이번 국제학술심포지엄은 어떤 의미가 있나요?
△ 한국 무용계를 위해 매우 중요한 심포지엄입니다. 춤 아카이브라는 것이 단순한 영상기록이 아닌 복합적 자료를 보존한다는 점에서 현재 가장 절실한 것이라 생각해요. 예를 들어 김천흥 선생께서 작고하셨는데 그의 춤을 완전하게 복원한다거나 학술자료로 남기고자 했을 때 영상뿐 아니라 그의 춤에 관한 문서화된 자료와 인터뷰 등의 자료가 더해져야 하기 때문입니다. 더 늦어지면 현존하는 연로한 무용가들의 춤 설명을 남길 수 없습니다. 이 시점에서 이런 심포지엄을 연 것은 적절했고, 세계적으로 앞서가는 일이라고 생각 합니다.
▶ 한국무용기록학회를 어떻게 보셨나요?
△ 현재 바른 길로 가고 있다고 생각 합니다. 학회의 회원들로 많은 학생들이 있기 때문에 아카이브 기록의 중요성에 대해 생각하기 시작한 것 같습니다. 제 개인적으로는 심포지엄 이외에 여러 연계 강의를 통해 한국 춤의 경향, 인류학에 대해 토론 할 수 있어서 좋았습니다. 특히 예술의 글로벌화에 대해 토론 한 것이 좋았습니다. 세계화와 아카이브는 공존해야 하는 것이므로 중요하다고 할 수 있습니다.
▶ 춤에 있어서 아카이브는 정확히 어떤 의미죠?
△ 한 마다로 자료를 보관하는 곳입니다. 공연의 영상은 물론 공연을 설명할 수 있는 문서기록, 분석자료, 안무노트 등 복합적인 자료를 보관 하는 곳입니다. 이러한 자료들은 미래의 춤에 영향을 미치거나 예측하는데 있어서 중요한 것입니다.
▶ 다른 나라의 아카이브 현황은 어떤가요?
△ 이미 많은 나라에서 활성화되어 있습니다. 뉴욕의 춤 아카이브는 뉴욕공립도서관 안에 있는데 미국의 춤 뿐 아니라 전 세계의 춤 자료를 모아놓고 있어요. 독일에는 루돌프 본 라반의 모든 자료를 보관하고 있는 라이프히치의 아카이브와 퀼른 춤 아카이브가 있고 중부 유럽의 춤자료를 대량 보관하고 있는 헝가리 부다페스트 아카이브 등이 유명하다고 할 수 있고 많은 나라에서 설립을 계획하거나 실행 중에 있는 것으로 압니다.
▶ 한국 춤과 인연이 깊으신데 언제 부터인가요?
△ 1969년 하와이대학 재학 중에 배한라 선생의 수업을 들으면서 시작 되었어요. 하와이에 스튜디오를 가지고 있는 한국 무용가셨죠. 그 분의 스튜디오에서 주로 한국의 민속무용을 배웠고 김천흥 선생이 하와이를 방문하셨을 때 궁중무용을 배웠습니다. 그 후에도 배한라 스튜디오의 조교였던 김천흥 선생의 따님을 통해 계속해서 김천흥 선생의 춤을 전수 받았습니다.
▶ 인류학을 전공하셨는데 어떻게 춤에 열중하게 되었나요?
△ 원래 5살 때부터 춤을 배웠습니다. 저는 다른 문화에 개방적인 사람이고 인류학 공부를 위해 통가에 1년 머무르며 그들의 미학 가운데 가장 큰 비중인 춤을 연구했습니다. 그 후로 한국 춤을 비롯해서 필리핀, 말레이시아, 일본 등 광범위한 춤을 배웠습니다. 그 가운데 유독 한국 춤이 좋았기 때문에 계속 배우게 된 것이죠.
▶ 한국 춤의 어떤 점이 좋았나요?
△ 움직임의 느낌과 어르는 호흡이 좋았어요. 팔을 옆구리에 고정시켜 추는 일본 춤에 비해 팔의 유연한 움직임이 하와이 춤과 흡사한 연관이 있어서 친근하기도 했습니다. 음악적으로는 타악기가 강조되는 부분이 좋았고 무당춤의 방울 과 장구를 메고 추는 장구춤 등 악기가 춤의 일부로 사용되는 것 또한 매력적이었습니다. 그리고 북의 장단이 참 흥미롭지 않습니까.
▶ 최근 한국의 무용공연을 보셨나요?
△ 이번에 방문해서 조기숙의 뉴발레 공연과 국립 무용단의 공연을 보았습니다. 국립국악원의 전통무용(상설공연)도 보았어요. 짧은 일정 속에서 많은 종류의 공연을 본 것 같습니다.
▶ 어떻게 보셨나요?
△ 매우 흥미로웠습니다. 특히 뉴발레의
▶ 가장 이상적인 춤 기록 방법은 무엇일까요?
△ 영상기록과 문서화된 기록이 병행하는 것입니다. 문서화된 기록에는 춤의 뿌리(근거)나 공연된 배경, 해설은 물론 비평도 포함 됩니다. 거기에 한 가지 매우 중요한 기록을 더한다면 안무자나 무용수의 구술을 기록하는 것입니다. 세 가지가 병행될 때 완전한 기록이 될 수 있을 것입니다.
▶ 라바노테이션은 좋은 기록 방법인가요?
△ 무보작성법 중 가장 최상의 방법이라 생각 합니다. 몸의 각 부분을 볼 수 있기 때문입니다. 영상 기록은 찍는 방향에 따라 보이지 않는 부분도 있기 마련이죠.
▶ 라바노테이션의 한계점도 있지 않나요?
△ 얼굴 표정이나 감정을 전달할 수 없다는 점이 있습니다. 한국 춤에서 보면 배에서 끌어 올리는 에너지나 섬세한 호흡(어르기)을 전달하는 데에 분명 한계가 있어요. 즉 라바노테이션은 외부적 기록만 가능하다는 단점이 있습니다.
▶ 춤을 기록하려는 후학들에게 해주고 싶은 말이 있다면?
△ 많은 젊은이들이 아카이브를 관리할 인력으로 성장했으면 좋겠습니다. 컴퓨터 기술과 지식을 갖고 있는 세대로써 그 재능에 전통과 컨템포러리를 포함하는 무용예술전반에 대한 이해가 더해진다면 좋은 아카이브 관리자가 될 것입니다. 아카이브가 보관하는데서 그치지 않고 무용가, 무용역사가, 비평가 및 일반인들이 자료들을 꺼내 볼 수 있게 되려면 훈련 받은 사람들이 필요합니다.
[뉴스테이지=글_김예림 무용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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