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계순위 25위의 효성그룹이 부도 위기에 직면한 계열사 진흥기업의 '회생'과 관련해 계속 뜨뜻미지근한 반응을 보여 채권단의 눈총을 사고 있다.
진흥기업 채권단 등은 최근 진흥기업이 위기에 처하면서 대주주인 효성에 자금지원을 촉구하고 있지만 정작 당사자인 효성 측은 진흥기업 사태에 대해 명쾌한 입장을 취하지 않고 있는 것. 채권단에서 워크아웃(기업개선작업)을 개시한 이후에나 지원 여부를 논의해보겠다는 게 효성 측 입장이다.
이런 까닭에 관련업계 사이에서는 "지난해 연매출 8조원이라는 사상최대 실적을 기록한 효성이 계열사에 대한 지원사격에 선뜻 나서지 않는 데에는 이미 진흥기업을 정리하기로 결정을 내렸기 때문이 아니겠냐"는 의혹의 눈초리를 보내고 있다.
특히 효성 측은 워크아웃 개시이후에 진행될 논의의 방향에 대해서도 '지원'쪽으로 가닥이 잡힌 것인지 확언하기 어렵다고 밝히고 있어 효성과 진흥기업을 둘러싼 '사업정리설'은 좀처럼 사그라지지 않고 있는 형국이다.
◆ 부채비율 높고 차입금도 많고…산 너머 산
23일 관련업계에 따르면 지난 2008년 1월 진흥기업을 인수한 효성은 경영권 확보와 이후 유동성 확보 등 명목으로 인수이후 3년간 2천400억원의 자금을 진흥기업에 투자했다.
그러나 이 같은 자금수혈에도 불구하고 진흥기업은 지난해 1천495억원의 당기순손실을 기록했으며, 이 회사 분기보고서에 따르면 지난해 9월 현재 부채총계는 5천909억원, 자본총계는 3천392억원으로 부채비율은 174%에 달한다.
단기 부채 비중도 높다. 같은 기간 기준 현금 및 현금성자산은 38억4천억원인데 반해 1년 안에 갚아야 할 단기차입금규모는 무려 2천687억원에 달하는 것.
때문에 모기업인 효성그룹 입장에서도 추가적인 자금지원을 선뜻 결정하기가 쉽지 않은 상황인 것으로 보인다. 진흥기업의 부실이 그룹 전체로 확산될 수 있다는 우려 때문이다. 이와관련, 채권단 등에선 '효성그룹이 이미 진흥기업과 결별수순을 밟기로 마음먹고 단계를 밟아가고 있는 게 아니냐'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계열사를 살리려는 의지는 보이지 않고, 워크아웃이 되면 하고 안 되면 말고 식으로 '강 건너 불구경'하고 있다는 것.
실제로 지난 15일 진흥기업이 어음 193억원을 막지 못해 최종부도 위기에 직면했을 때도 효성 측은 끝내 자금지원을 외면, 진흥기업은 어음결제를 요구하던 솔로몬저축은행이 결제기한을 연장해주면서 간신히 부도위기를 넘겼다.
'진흥기업 정리설'과 관련해 효성 관계자는 "현재 상황에서 얘기할 수 있는 부분은 진흥기업에 대한 채권단의 워크아웃이 결정된 뒤에 지원방향을 논의하겠다는 것 외에 없다"며 "채권단에서 '언제, 얼마 규모의 자금을 지원하겠다' 등 구체적인 내용을 원하고 있는 것은 알지만 지금은 확실히 말할 수 있는 부분이 하나도 없다"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이어 "워크아웃이 개시될 경우 채권단과 협의를 통해 지원방안을 검토할 예정이고, 지원여부나 규모 등도 그 때가 돼봐야 알 수 있다"고 덧붙였다.
◆ 잘 나갈 땐 내 자식, 어려울 땐 나 몰라라 지적도
재계 한 관계자는 "효성이 부도위기에 빠진 계열사 살리기에 전면적으로 나서지 않는 까닭은 밑 빠진 독에 물 붓는 격의 사업을 정리하려는 계산이 깔린 것 아니겠느냐"며 "정리가 되게 되면 단기적인 손실은 따르겠지만 장기적인 안목에서 다른 분야에 추가적인 투자를 할 여력이 생기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효성과 진흥기업이 분리 수순을 밟게 될 것이라는 분석인 것.
그러나 이 같은 전망은 비단 이번에 처음 제기된 게 아니다. 이미 지난 연말부터 금융권을 중심으로 '효성이 진흥기업 정리를 위한 수순 밟기에 돌입했다'는 소문이 돌면서 진흥기업 채권기관들이 채권을 회수하려는 움직임을 보였던 것. 하지만 이 때 효성 측은 "진흥기업에 문제가 생길 경우 그룹에서 책임을 지겠다"면서 사태를 무마시켰던 것으로 알려졌다.
효성그룹은 지난해 건설사 신용위험평가 당시에도 워크아웃 대상인 C등급으로 분류됐던 진흥기업을 대주주가 책임지겠다는 논리로 채권단과 금융당국을 설득, 정상등급인 B로 조정시켜 놓았던 것으로 알려졌다. 채권금융기관들이 효성을 믿고 진흥기업에 자금을 대줬으니, 효성이 이에 대한 책임을 지라고 목소리를 높이고 있는 이유가 바로 이 때문이다.
한편 진흥기업 주채권은행인 우리은행은 65개 채권기관으로부터 진흥기업 워크아웃에 대한 동의서를 받고 있다. 채권단 100%의 워크아웃 동의서를 받지 못할 경우, 진흥기업은 법정관리 수순을 밟게 된다.
[biz&ceo뉴스/소비자가 만드는 신문=류세나 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