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마에 쓰러진 국보 1호인 숭례문이 11일 아침 참담한 모습을 드러내자 출근길 시민들은 당혹감을 넘어 좌절과 분노를 감추지 못했다.
허탈한 표정의 일부 시민들은 발길을 멈추고 `어떻게 이럴 수가 있느냐'며 인근 공무원들로 보이는 이들에게 원망에 찬 욕설을 내뱉거나 눈물을 글썽이기도 했다.
횡단보도 신호를 기다리던 시민들의 눈길은 모두 검게 무너져내린 누각에 쏠렸으며 `되풀이되면 안 될 아픈 장면'이라며 휴대전화기를 꺼내 `흉물'이 돼버린 숭례문을 사진기에 담았다.
한성렬(45.회사원)씨는 "마음이 아프다. 복원이 되더라도 의의가 있을지 모르겠다. 우리가 국보를 관리하는 게 이것밖에 되지 않는지 화가 치민다"라고 눈에 핏발을 세웠다.
최승혁(30.회사원)씨는 "참담하고 허탈하다"며 "방화라는 얘기도 있던데 정말 그렇다면 용납할 수 없는 일이다. 모두가 사랑하는 문화재에 불을 지르는 건 `사회적 테러'라고 밖에 볼 수 없다"고 말했다.
김병일(46.회사원)씨는 "전날 불이 났다는 말을 듣고 당혹스러웠다가 불기둥이 치솟아 전소했다는 얘길 듣고는 허탈했다"며 "잔해를 보니 `자존심 1호'가 무너졌다는 생각에 화가 나서 눈물이 나려고 한다"고 말했다.
참담한 숭례문의 모습에 시민들의 분노가 터져나오고 일부 출근길 차량들은 도로에서 서행하거나 정차해 창 밖으로 삿대질 하는 모습이 목격되는 가운데 당국은 서둘러 숭례문에 가림막을 치기 시작했다.
일부 익명성이 보장돼 의사표현이 자유로운 온라인에서는 더 노골적인 감정이 쏟아졌고 사고의 원인을 분석하거나 당국의 반성을 촉구하는 차분한 글도 눈길을 끌었다.
포털사이트 네이버의 아이디 `hikim63'씨는 "완벽한 대책 없이 일반에 개방한 데 문제가 있다"며 "부작용까지 예측해 일반인의 접근이 쉬워지면 일어날 수 있는 모든 상황에 대비책을 세웠어야 했다. 문화재는 가까이 두고 즐기는 것보다 보존이 우선인데 소 잃고 외양간 고치는 심정이다"라고 말했다.
김영훈씨는 문화관광부 홈페이지 게시판에 "운현궁은 차 돌진으로 문이 부서지고 숭례문은 불타고, 화성의 장안문도 그슬리고, 수어장대도 불타 없어지고, 경복궁 문은 탈 뻔하고, 양양 낙산사는 다 타버리고...관리 좀 똑 바로 하자"며 허탈함을 내비쳤다.
심은주씨는 싸이월드에서 "설에, 또 대통령 취임 직전에 국보 1호가 불에 탄 것은 조상의 암시"라며 "한글을 제쳐두고 영어를 숭상하고 금수강산을 토막내려고 하니 조상이 진노한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자꾸 든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