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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재만의 한방이야기] 간(肝)이 콩알만해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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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재만의 한방이야기] 간(肝)이 콩알만해지다...
  • 박재만 객원칼럼리스트 www.csnews.co.kr
  • 승인 2006.11.20 07:5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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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 제약회사의 피로회복제 TV광고에서 한 샐러리맨이 직장 상사들 앞에서 한 소리 듣지나 않을까 조바심내며 굽신거리는 장면이 나오는 걸 본 적이 있습니다. 공포에 질린 듯하면서도 누가 볼까 눈치보는 그 샐러리맨의 모습을 배경으로 '간이 콩알만해졌다!'는 광고문구가 대문짝만하게 나오더군요. 그러고는 광고 마지막에 아내가 힘내라고 피로회복제를 건넨다는 줄거리였습니다.

    뜬금없이 '간이 콩알만해진다'는 것과 '피로'가 무슨 상관이란 말인가? 피로하면 간이 콩알만하게 작아지기라도 한단 말인가? 주위 눈치를 보는 마음씀씀이와 간장(肝臟)이라는 내부 장기와는 또 무슨 연관이라도 있단 말인가?

    이 광고 안에는 한의학적 인체관이 고스란히 담겨져 있습니다. 간장(肝臟)은 횡격막 아래에 주로 오른쪽으로 해서 가로질러 있는, 내부 장기 중 가장 큰 장기입니다. 간장이 피로와 연관되어 있다는 건 잘 알려진 의학상식입니다.

    간장에서 해독작용을 한다고 하는데 특히 술이나 약독을 분해하는 역할을 담당하고 있어서 술이나 약을 많이 먹는 사람들에게 간장은 쉴 틈이 없습니다. 한의학에서 간장은 장군(將軍)에 비유합니다. 바깥을 살피고 바깥으로부터 침입을 방어하는 역할을 담당한다는 의미입니다.

    술이나 약을 바깥으로부터의 침입이라고 한다면 술이나 약독으로 병이 나는 것은 대부대의 공격을 장수가 감당하지 못하는 형상인 것입니다. 그래서 간장은 혹사당하지 않게 적절히 쉬게 해야 제 기능을 할 수 있습니다.

    간장은 피를 저장하는 장부(臟腑)입니다. 사람이 보고 듣고 말하고 쥐고 움직이는 모든 생명활동에는 피가 이용됩니다. 피는 낮에는 생명활동이 있는 온몸 여기저기를 돌아다니다 밤에 잘 때 간장으로 돌아와 쉬게 됩니다.

    일을 많이 하거나 신경을 많이 쓰면 피로해지는데 피로하다는 말은 피의 소모가 많다는 말입니다. 결국 피로하게 되면 피를 관장하는 간장에 무리를 주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피로와 간장은 피의 저장과 순환을 통해 연관이 생기는 것입니다.

    한의학에서 오장육부는 사람의 정신활동과 연관이 있다고 봅니다. 간장은 피를 저장하고 그 피에 '혼(魂)'이 깃들어 있습니다. 혼이라는 것은 사람의 주체적인 생각과 의지를 말합니다. 흔히 투혼을 발휘한다고 할 때의 혼입니다.

    간장이 콩알만해졌다는 말은 겁이 나서 몹시 두려워진다는 말인데 간장이 관장하는 혼이 쪼그라들었다는 말입니다. 주체적인 생각과 의지가 줄어들고 외부적인 압력이 크게 느껴져 무서움을 느끼는 상태이지요. 간장의 기운이 허해지면 눈이 희미해지고 귀가 잘 안 들리고 다른 사람이 잡으러 오는 것같아 두려워하게 됩니다.

    결국 간장이 콩알만해졌다는 말은 간장의 기운이 허해져서 혼의 작용이 축소되어 두려워하는 마음 상태가 되었다는 의미입니다.

    허해진 간장의 기운을 북돋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휴식이 필요합니다. 조용히 묵상을 하거나 잠을 잔다거나 충분한 영양을 섭취하는 것이 좋습니다. 물론 술은 가급적 자제하는 것이 간장을 쉬게 하는 최고의 양생법입니다. 간장을 이롭게 하는 음식으로는 모과, 밀, 부추, 자두 등이 있으니 간장이 피로한 사람은 염두에 두면 좋겠습니다.

    TV광고의 마지막에 아내가 어깨가 쳐진 남편에게 기운내라고 피로회복제를 건네는 장면은 미소 짓게 하더군요. 사실 피로회복제가 아닌 다른 걸 주었더라도 남편은 기운낼 수밖에 없었을 것입니다.

    간이 콩알만해져가면서도 고된 하루를 살아내는 남편에게 필요한 것은 삶의 의지, 혼을 되살아나게 하는 것입니다. 간장이 제 기능을 하게 하는 데는 충분히 쉬고 때로 약물 치료도 필요하겠지만 간장의 혼을 일깨우는 것도 중요합니다.

    남편의 축 쳐진 어깨를 치켜 올려주며 “당신이 있어 난 행복해요, 기운내세요!”라며 입맞춤해주는 아내의 말 한마디가 최고의 피로회복제가 아닐까 생각해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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