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 22대 국왕 정조(1752~1800년)가 재위 말년에 막후 통치행위를 벌였음을 보여주는 친필 어찰 6첩 299통이 발굴됐다. 이 편지 내용은 심환지가 정조와 대립했다는 기존의 역사 기록이 사실이 아님을 증명해 주고 있다. 역사 책의 한 대목을 다시 써야할 가능성이 높을 정도로 중요한 사료로 꼽히고 있어 학계의 비상한 관심을 끌고 있다.
이 어첩에 대한 일반인들의 관심도 갈수록 고조돼 친필 공개 하루 뒤인 10일에도 주요 포털 인기 검색어 상위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성균관대 동아시아학술원과 한국고전번역원은 9일 ‘새로 발굴한 정조 어찰의 종합 검토’ 학술대회에 전 기자회견을 열어, 정조가 예조판서와 우의정으로 있던 노론 벽파(僻派)의 거두 심환지(1730~1802년)에게 보낸 비밀편지의 일부를 공개했다.
1796년 8월20일부터 1800년 6월15일까지 보낸 이 편지들은 개인이 소장해 오던 것으로, 1년 동안 탈초(정자체로 풀어쓰기)와 번역을 거쳤다.
임형택 성균관대 동아시아학술원장은 “조선조 국왕의 어찰로는 가장 많은 분량인 데다 정조가 심환지 한 사람에게 보낸 비밀편지라는 점에서 정조 말년 정국 동향의 비밀스러운 전개과정은 물론 인간적인 면모까지 들여다볼 수 있는 획기적인 사료”라고 평가했다.
정조는 어찰이 공개될 때의 정치적 파장을 고려해 편지를 없앨 것을 지시했으나 심환지는 어찰을 받은 날짜와 시간, 장소를 꼼꼼히 기록해 보관해 왔다.
편지의 내용으로 노론 벽파인 심환지가 정조와 날카롭게 대립했다는 통념을 깨는 한편 정조가 막후 정치에 능란했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김문식 단국대 사학과 교수는 “소설이나 드라마에선 정조와 심환지(노론벽파)의 대립을 쉽게 얘기하지만 1795년 화성 축조 이후 정조가 노론벽파를 중요한 정치세력으로 인정해 본격적으로 등용했음을 보여준다.”면서 “당대 벽파의 성격을 어떻게 이해할 것인가는 앞으로 학계가 풀어야 할 과제”라고 말했다.
또한 정조는 남인계 거두 채제공(1720~1799년)과도 비밀편지를 주고받았던 사실도 밝혀졌다. 이는 정조가 노론과 소론, 남인, 시파와 벽파 사이에서 자신의 정치적인 입지를 잃지 않고자 당파를 초월해 어찰을 통해 막후정치를 꾀했음을 보여준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