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비자가 만드는 신문=임민희 기자]고지의무에 대한 규정과 범위를 놓고 보험사와 소비자 간 첨예한 갈등이 계속되고 있다. 설계사 또는 상담원의 말만 믿고 보험에 가입했다가 보험금 청구 시 '고지의무 위반'으로 낭패를 보는 소비자들의 피해가 적지 않다.
고지의무 범위의 모호성과 한계
보험계약 시 보험사와 소비자가 반드시 지켜야할 고지의무 범위는 과연 어디까지 일까? 교보생명, 삼성화재 등 대형 보험사들은 보험가입 시 청약서 질문(5년 이내의 질병 유무와 진료내역, 건강, 취미, 직업 등)에 사실대로 기재(전화를 이용한 계약 시 음성녹음으로 대체)하는 것을 고지의무로 간주한다.
계약 후에도 계약자가 직업, 주소, 연락처 등 중요사항을 변경하거나 기타 위험이 증가하는 경우 이를 알려야 한다. 이를 어길 시 '신의성실 위반'으로 계약을 해지하거나 보험금 지급이 제한될 수 있다. 이는 민․상법상에도 적용된다.
반면 보험사는 계약자에게 상품의 주요 내용과 약관을 고지하도록 약관에 명시하고 있지만 고지 범위는 불명확하다. 보험사들은 약관내용의 전부를 계약자에게 알려주는 건 현실상 불가능하기 때문에 설계사 교육과 상품 요약 책자 등을 통해 충분히 설명하고 있다고 말한다.
그러나 보험계약이 주로 설계사를 통해 이뤄지고 있는 현실에서 설계사가 고의로 혹은 실수로 불완전판매를 할 경우 이를 입증하는 건 고스란히 계약자의 몫이 될 수밖에 없다. 이런 이유로 '고지의무'가 다분히 보험사들의 불로소득을 위한 수단이 되고 있다는 비판이 끊이질 않는다.
설계사 가짜 자료로 사기 판매
강원도 원주시 태장동에 사는 이 모(여.60세)씨는 설계사의 교묘한 술수에 속아 지난 2007년 11월 1일 흥국생명 '무배당 재테크 변액유니버셜보험'에 가입했다가 원금을 떼일 뻔했다.
금융 문외한이었던 이 씨에게 설계사는 '해약환급금 예시표'까지 보여주며 5천만원을 2년 이상만 납입하면 최소 5천90만원의 해약환급금을 받을 수 있고 투자수익률 6%가정 시 5천885만원을 받을 수 있다고 설득했다.
그러나 2년 후 찾으러 갔을 때는 4천100만원밖에 찾을 수 없었고 '해약환급금 예시표'도 설계사가 허위로 만든 가짜였다. 이미 설계사는 1년 전에 살인․사기․횡령 혐의로 13년 형을 받고 교도소에 수감 중이었다.
이에 대해 흥국생명 관계자는 "진위여부를 파악해 설계사가 허위로 보험을 판매한 정황이 드러나면 환불하겠다"고 밝혔다.
이 씨는 지난 20일 "보험사에서 설계사의 허위판매를 인정해 원금 5천만원을 환불했다"고 전해왔다.
고지의무 위반.강제해지
전화 상담을 통해 ING생명보험과 녹십자생명보험에 가입했던 경기 의정부시 호원동에 사는 문 모(여․.44세)씨는 ‘고지의무’ 위반으로 연이어 강제해지 당했다. 문 씨는 2008년 11월 무지외반증(우측 엄지발가락 변형)으로 수술 후 보험금을 청구했으나 두 보험사는 가입전인 2004년 '무지외반증'으로 병원 치료(보름간 통원치료)를 받은 사실을 고지 않았다는 이유로 해지시켰다.
그는 2007년 12월 ING생명보험 '무배당 다이렉트 케어프리 보험(만기환급형)'에 전화 가입 시 상담원에게 발가락 골절과 등 골절, 감기 등으로 병원에 갔던 사실을 고지했다. 보험사는 등 골절에 대한 진단서만을 요구했다.
문 씨는 "보험사에서 당시 '자질구레한 건 기억나지 않는다'고 했을 때 제대로 확인하고 5년 전 진료기록을 모두 제출토록 했다면 지금처럼 어이없이 해약 당하는 일은 없었을 것"이라고 주장하지만 ING생명보험 측은 계약자의 고의 누락을 지적, 인정하지 않고 있다.
또한 2007년 3월 29일 전화 상담을 통해 가입한 녹십자생명보험 '무배당 가족사랑종신의료보험3종3형'의 경우 상담원이 '입원한 것 외에는 고지하지 않아도 상관없다'는 말을 믿고 가입했다가 역시 같은 이유로 해지됐다.
녹십자생명보험사 측은 "보험 가입 시 녹음된 파일을 들어봤지만 상담원이 그런 말을 한 적이 없다"며 정상절차에 따라 해지한 것이라고 일축했다.
보험사들은 보험가입 시 청약서 질문(질병 및 진료내역, 건강, 직업 등)에
사실대로 기재하는 것을 고지의무로 간주한다. 사진은 보험 청약서 샘플.
저작권자 © 소비자가 만드는 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