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토리뷰] 흔히들 선과 악을 흑과 백으로 구분한다. 아주 적은양의 물감이 묻어도 그 색에 온 신경이 집중될 만큼의 순백의 깨끗함. 그리고 어떠한 색이 묻어도 그것보다 강렬한 블랙. 흑조는 모든 색을 흡수하고서 아무 일도 없는 듯 푸른 물 위를 떠다닌다. 밤이 되면 밤의 어둠에 자신을 감추고 세상을 희롱할 준비를 한다.
여기 흑조가 있다. 어두워서 더 매혹적인 블랙. 모든 것을 감추고 빨아들이는 검음. 세상을 압도하는 흑조의 검은색은 당당하다. 흑조는 요염한 표정을 짓고 있다. 그 표정으로는 속을 알 수가 없다. 그리고 자신감 넘치는 손동작. 모든 마디에 세상을 조롱할만한 힘이 들어있는 것 같다. 흑조는 가녀린 몸을 하고 있다. 하지만 모든 것을 알고 있는 듯 강자의 힘이 느껴진다. 가냘파서 그녀의 속임수는 더욱 빛을 발한다. 세상을, 왕자를 완벽하게 속인다.
그 뒤로 비탄에 젖은 듯한 백조 한 마리가 있다. 하늘을 향한 얼굴과 뒤로 젖힌 팔은 절망적이다. 검은 천에 가려 그 실루엣만 보이는 백조는 흑조처럼 아름답다. 그러나 슬프다. 자신의 절망을 알리려 온 몸으로 애를 쓰지만 무언가에 가려져있다. 그 앞에서 흑조가 모든 시선을 압도한다. 마치 흑조의 손놀림에 의해 백조가 조종당하는 느낌이다. 백조는 외로워 보인다. 백조의 호수를 장악한 흑조들을 비추는 호숫가가 푸른빛을 잃고 검게 물들었다.
왕자는 악마의 저주에 걸려 백조로 변한 공주 오데뜨에게 사랑을 맹세한다. 그러나 악마는 오데뜨와 닮은 흑조 오딜을 등장시켜 왕자를 유혹하고, 왕자는 오데뜨와 닮은 오딜에게 달려간다. 이때 어둠이 밀려오며 절망에 빠진 오데뜨의 환영이 나타난다. 왕자는 그때서야 자신이 악마의 장난에 놀아난 것을 깨닫는다.
왕자와 백조 오데뜨는 선과 사랑을, 악마와 흑조 오딜은 악과 저주를 상징한다. 이 상반된 성격들이 한 인간 속에 존재해 상황에 따라 그 힘이 변화된다. 그러나 우리는 판단할 수 없다. 이들 모두는 우리들이 갖고 있는 양면성을 보여주기 때문이다. 우리는 백조다. 그리고 흑조이기도 하다. 국립발레단의 발레 ‘백조의 호수’는 백조와 흑조의 아름답고 우아한 동작으로 관객들을 매료시킨다. 절망과 환희를 온 몸으로 표현해내는 발레 ‘백조의 호수’는 12월 13일까지 예술의전당 오페라하우스에서 공연된다.
[뉴스테이지=이영경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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