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비자가 만드는 신문=임민희 기자] 퇴직 적립금이 수천억원대에 달하는 대기업과 공기업들의 퇴직연금 전환이 가시화되면서 금융권에 퇴직 연금 유치 전쟁이 일고 있다.
운용 수익도 막대하지만 고객기반을 확보할 수 있다는 점에서 은행은 물론 증권 보험사까지 가세해 치열한 경쟁을 벌이고 있다. 특히 적립금이 수조원에 달하는 삼성전자, 한국전력 등의 대기업과 공기업들의 퇴직연금 유치전은 경쟁을 넘어 과열로 치닫고 있다는 지적도 나오고 있다.
은행권, 퇴직연금 유치 총력..황금시장 대기업 공략!
퇴직연금제도는 기업이 사내에 적립하던 퇴직금 제도를 대체해 금융기관에 매년 해당금액을 적립, 근로자가 퇴직할 때 연금 또는 일시금으로 지급받아 노후설계가 가능하도록 한 제도이다.
내년부터 신설되는 기업들은 퇴직연금제도에 의무적으로 가입해야 하며 기존 퇴직보험이나 퇴직신탁을 이용했던 기업들도 법인세 감면이 사실상 내년 말로 폐지되기 때문에 세제해택을 계속 받으려면 퇴직연금으로 전환해야 한다.
금융감독원에 따르면 2005년 12월 시행 이래 2009년 10월말 현재 퇴직연금의 계약체결 건수는 7만2천281건(가입자 152만296명), 적립금액은 9조3천975억원에 달한다. 퇴직 연금을 가장 많이 유치한 곳은 은권으로 총 적립금 4조9천637억원중 52.8%를 차지했다. 이는 은행이 지점을 활용한 영업역량 강화를 통해 중소기업의 신규계약이 증가했기 때문이다. 반면, 생명보험사는 29.0%, 손해보험사가 5.8%, 증권사는 12.4%를 보이고 있다.
그러나 내년에는 대기업과 공기업들의 퇴직연금 전환이 속속 예고되고 있어 은행을 비롯한 금융권은 이미 총성 없는 전쟁에 돌입했다.
과열경쟁 우려..금융감독원 조사 착수
국민은행은 적립금 9천786억원으로 53개 퇴직연금 사업자 중 삼성생명(1조6천730억원)에 이어 시장점유율 2위를 달리고 있다. 전체 시장 대비 점유율은 10.4%, 은행권 내에서는 19.7%로 1위다. 국민은행은 전국 1천200여개 영업점에 아예 퇴직연금 전담직원을 배치해 기업 유치에 주력하고 있다.
신한은행은 적립금 9천309억원으로 국민은행의 뒤를 바짝 쫓고 있다. 신한은행 관계자는 "대기업과 공기업 전담 운영팀을 꾸려 각 영업점에 배치했고 경쟁력 강화를 위한 상담과 상품개발에 주력하고 있다"고 말했다.
우리은행은 8천862억원으로 시장점유율 10% 진입을 목표로 세우고 있다. 우리은행 관계자는 "실적위주보다는 정도영업을 추진, 사후관리와 거래 편리성에 초점을 맞추면서 타 은행에 비해 적립률은 낮지만 장기적인 관점에서 내실있는 성과를 거둘 것"이라고 기대감을 나타냈다.
기업은행과 농협은 각각 5천497억원, 5천303억원으로 비슷한 현황을 보이고 있다. 기업은행은 중소기업 회원들의 퇴직금과 관리, 지역별 컨설팅센터를 통한 부가서비스 등에 주력하고 있다.
후발주자로 뛰어든 산업은행과 하나은행은 안전성과 서비스 차별화에 중점을 두고 있다. 산업은행 측은 "국영은행이라는 한계를 갖고 있지만 근로자들의 업무 편리성을 증진하고 장기적인 상품인 만큼 안전성을 중시해 나갈 것"이라고 말했다.
하나은행 측은 "대출금리 우대 및 수수료 면제, 세무상담 지원, 퇴직연금 전용 시스템 독자 개발 등 타금융기관과 차별화된 서비스로 승부하겠다"고 포부를 밝혔다.
하지만 은행권의 퇴직연금 유치를 놓고 퇴직연금 가입 강요, 가입 대가로 리베이트 제공 등 과열경쟁에 따른 부작용을 지적하는 목소리가 높다. 퇴직연금 적립액이 1조2000억원인 삼성전자는 12월 15일 삼성생명 보험 가입을 공시하는 등 대기업 계열사들의 자기 식구 밀어주기, 주거래 기업과 금융권의 나눠먹기 시장으로 변모하고 있다.
이와 관련, 은행 관계자는 "중소기업 위주 영업으로 실적이 늘어나면서 수치상 올라간 것일 뿐 과당경쟁은 아니다"라고 일축했다. 하지만 금융감독원은 12월 3일부터 18일까지 은행, 증권사, 보험사 등 14개 금융회사를 상대로 자체적인 조사를 벌였다.
금융감독원 보험계리연금실 관계자는 "12월부터 퇴직연금 판매실태와 관련해 각 금융기관 내의 자체적인 검사시스템 하에서 조사를 진행하고 있다"며 금융기관의 법위반 혐의가 드러날 경우 제재할 계획임을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