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건 비극이다. 정을 나누지 못함으로 인한 비극이고 사람이 사람답게 살지 못하는 것에 대한 비극이다. 무대와 주인공들의 마음은 눈이 부시도록 하얗다. 눈이 부셔 눈물이 난다. 연극 ‘호야’는 사각형의 그 정갈한 슬픔을 비극이라는 길고 단단한 지휘봉 아래 섬세하게 연주한다. 연주자들은 음모와 사랑이 멜로디에 몰입돼 있다. 절정의 웅장함과 날카로움에서는 아파하기를 주저하지 않는다. 시간이 지날수록 점점 다급해지는 극단 ‘죽도록달린다’의 연극 ‘호야’. 배우들은 정말로 죽도록 달린다. 도망가기 위해 달리고 살기 위해 달리고 만나기 위해 달리고 사랑하기 위해 달린다. 그 달음박질의 끝은 파국과 죽음이다. 결국, 이들은 죽음을 향해 달리고 또 달렸다.
슬픔의 촘촘한 밀도

무대 위에는 아무것도 없다. 그저 약간 높은 사각형의 무대를 중심으로 배우들이 둘러앉아있다. 단아하고 깨끗한 무대는 무한한 가능성을 담고 있다. 아무것도 없기에 배우들은 무대 위에서 세상의 전부인 삶과 사랑, 죽음을 자유자재로 연주한다. 공연 내내 무대를 떠나지 않는 배우들은 새벽을 알리는 닭이 되기도 하고 자유롭게 날아다니는 새가 되기도 한다. 바람소리를 내고 귀뚜라미 울음을 전한다. 바람과 비, 동물과 자연, 모든 것이 살아있다. 의상 역시 살아있다. 독사의 가죽을 연상시키는 왕의 의상은 몸을 휘감고 먹이를 찾는 것처럼 어둡고 위협적이다. 독사의 유혹으로 피를 보고 말겠다는 대비의 붉은 의상, 그리고 한없이 슬픈 여인들의 바람인 듯 가벼운 의상이 흰 바탕 위에 다양한 선을 긋는다. 점차 늘어나는 선들이 흰 무대를 질서 있게 채운다. 이 죽고 살고 사랑하는 무대를 지탱하는 음악 또한 제 몫을 톡톡히 해낸다. 연극 ‘호야’는 쁘띠-오케스트라를 구성, 건반과 퍼커션은 물론 바이올린, 첼로, 기타, 플롯 등 다채로운 악기 편성으로 인물의 테마를 강화했다. 사각형의 ‘사건’ 안에서 움직이는 배우들과 사각형 밖에 앉아있는 배우들부터 악기까지 모두가 매 순간 연기를 하고 있다. 80분 동안의 그 촘촘한 밀도가 관객의 마음을 빈틈없이 채운다.
사람답게 산다는 것에 대한 그리움

통속적인 이야기와 낯선 시도를 감동으로 이끌어낸 데는 똑똑한 연출과 풍성한 연기가 있다. 또한 저마다의 아픔을 갖고 있는 캐릭터들의 현실이 이 시대를 사는 관객들의 마음을 움직였다. 왕의 여자, 그것이 왕의 성은인가 자비를 가장한 농락인가. 욕심이 사라져 부처가 되려나보다는 중전의 한숨이 어쩔 수 없는 것인가 한 여인에게 내려진 저주인가. 왕의 자리는 권력의 상징인가 모든 짊을 어깨에 메야하는 운명의 장난인가. 연극 ‘호야’는 사람답게 산다는 것, 정을 나누고 산다는 것에 대해 이야기한다. 사랑하는 사람과 손을 잡고 아무런 의심도 없이 꽃밭을 거닐어 보는 것, 아프면 울고 좋으면 웃고 화나면 소리치고 기쁘면 호탕하게 웃어보는 것. 연극 ‘호야’는 사람처럼 사는 것을 그리워했던 궁궐 여인들의 소리 없는 울음으로 채워져 있다. 한恨조차 내 것이 될 수 없었던 사람들의 사랑에 관객들은 충분히 슬퍼진다.
[뉴스테이지=이영경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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