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명한 유리 구두는 그 안에 들어있는 발을 숨기지 않는다. 깨끗함과 순수함을 노골적으로 상징하며 유리 구두의 주인에게 순결을 강요한다. 국립발레단의 발레 ‘신데렐라’는 그것마저도 벗겨냈다. 가장 아름다운 구두는 그 무엇도 아닌 인간의 삶과 희로애락이 담긴 발. 장 크리스토프 마이요는 신데렐라의 절대적 상징인 유리 구두를 과감히 벗겼다. 대신 자유로워진 발레리나의 발에 금가루를 뿌렸다. 혹사당하는 무용수의 발에 금빛 찬사가 쏟아졌다. 장 크리스토프 마이요의 발레 ‘신데렐라’는 구차한 수식이나 무겁기만 한 철학 등을 버리고 날것과 여백을 통해 한껏 가벼워졌다.
- 여백이 가진 극한의 가능성, 그 재기발랄함

이 재치는 의상에서도 드러난다. 역시 거추장스러운 것들은 버렸다. 모던하면서도 강렬한 의상들은 신체를 가리는 대신 몸에 밀착돼 무용수들의 움직임을 그대로 보여줬다. 단순화된 의상들은 각 캐릭터들의 특징과 실체를 묘사하는 동시에 위트로 가득하다. 최소화된 의상을 입은 무용수들은 몸에 흐르는 음악과 감정들을 가식 없이 드러냈다. 투명한 옷을 입은 요정의 거짓 없는 라인은 실제 몸이며 요정 동시에 인간의 것이다. 이 의상들에는 정제되고 기상천외한 19세기 자료들이 사용됐으며, 왕자의 여행 장면에서 소개하는 의상들은 아프리카 전통의상과 나이지리아 조각품들 혹은 16세기 전통예술품에서 영감을 받았다. 또한 아름다워지기 위한 여성들의 수단인 성형수술을 붕대로 표현하는 등 현대가 추구하는 아름다움의 콘셉트를 섞어 식상함의 허를 찔렀다.
- 가식을 벗은 캐릭터, 그 영민함

장 크리스토프 마이요는 왕자와 신데렐라로 집중됐던 원작에 다양한 캐릭터를 비중 있게 삽입, 더욱 맛깔 나는 인물구도를 만들었다. 동화에서 잘 보이지 않았던 신데렐라의 아버지와 친어머니는 새로이 조명되며 곧 이루어질 신데렐라와 왕자의 원형으로 묘사된다. 아버지는 죽은 아내와 계모 사이에서 중심을 잡지 못하는 우유부단한 캐릭터로, 한없이 멋지기만 해야 할 것 같은 왕자는 발에 집착하는 치기어린 젊은이로 보인다. 무엇보다 소금과도 같은 역할의 계모는 더할 나위 없는 좋은 밑간이 됐다.
국립발레단의 발레 ‘신데렐라’는 진부함을 탈피하고 식상한 의미를 가뿐하게 벗었다. 요정은 무도회에 갈 신데렐라에게 아름답고 화려한 드레스를 입히는 대신 어머니를 상징하는 심플한 드레스를 입히고 구두를 제거했다. 새로운 시도와 해석, 비틀기 속에서도 기본적 희망과 사랑에 충실했다. 낯설면서도 친숙하게 다가오려는 따뜻함과 친절함이 있다.
[뉴스테이지=이영경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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