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는 충남 서천군 4대강사업 금강 1공구에서 덤프트럭을 운전하며 생계를 이어가고 있는 한 가정의 가장입니다. 올 초부터 1천100만원에 달하는 임금을 받지 못하고 있어 최근에는 애들 학교 등록금도 대출을 받아서 냈습니다. '국책사업'이라는 화려한 타이틀을 달고 있는 대형 공사현장에서 장비를 굴리고 있는데, 장비 할부금은 커녕 기름 값도 못 벌고 있다는 게 말이 됩니까. 정부에서는 이미 선급금을 줬다고 하는데 도대체 어떻게 된 일인지…가족들 얼굴 볼 면목도 없네요."
금강 1공구 공사현장에서 덤프트럭을 몰고 있는 특수고용노동자 김 모(남.45세)씨의 얘기다. 물론 임금체불 문제는 김씨 뿐만 아니라 이 공구에서 일해 온 하청업체 소속 100여명의 건설노동자들 모두에게 해당되는 내용이다. 이에 금강 1공구 노동자들는 지난 7일부터 원청사인 A건설 대구 서구 본사 앞에서 밀린 임금 지급을 요구하며 항의농성중이다. 이들에 대한 체불임금 규모는 14억4천만원 가량.
임금 체불로 생계를 위협받을 지경에 놓이게 됐다는 게 이들의 주장인데, 문제는 이러한 임금 체불 현상이 비단 금강 1공구에만 국한돼 있지 않다는 점이다. 특히 지난해 정부가 4대강사업을 수주한 건설사들에 전체 예산의 36%에 달하는 금액을 선급금 명목으로 지급했다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이에 따른 논란은 확산일로로 치닫고 있는 분위기다.
◆ 미지급 선급금 9천300억원…유용 의혹 '모락모락'
10일 민주노총 건설노동조합 등에 따르면 4대강사업 발주기관인 한국수자원공사 등은 이명박 정부의 예산조기집행 방침에 따라 4대강사업을 수주한 원청 건설사들에게 총 1조3천억원을 선급금으로 지급했다.
그런데 이러한 선급금 중 약 71%에 달하는 9천300억원이 하청업체를 비롯한 건설노동자에게 전달되지 않은 것으로 드러났다. 정부 입찰계약집행기준 35조(선급금의 사용)에 따르면, 선급금은 노임지급 및 자재확보에 우선 사용하도록 돼 있음에도 불구하고 이러한 규정들이 지켜지지 않아왔던 것. 미지급된 선급금 가운데 원청업체에게 돌아갈 수익분을 제외하더라도 상당한 금액이 대기업인 원청업체에 의해 유용됐다는 게 건설노조 측 주장이다.
이러한 정황은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이하 경실련)이 수공을 비롯해 5개 지방국토관리청, 지자체를 대상으로 '2010년 4대강사업 선급금 하도급 지급현황'에 대한 정보공개를 청구하면서 알려지게 됐다.
청구된 자료에 따르면 4대강사업 중 6개 공구의 공사를 발주한 원주청의 선급금 차액비율이 88%(약 165억원)로 가장 높았으며, 차액이 가장 많은 곳은 대전청(약 1천597억원, 77%)인 것으로 나타났다.
공구별로는 전체 158개 사업장 가운데 한강 4공구를 수주한 B건설 455억원(82%)을 비롯해 ▲금강 7공구 C건설 440억원(89%) ▲영산강 6공구 D건설 372억원(76%) ▲금강 6공구 E건설 363억원(90%) ▲금강행복1공구 F건설 329억원(63%) 등의 미지급 선급금을 보유하고 있는 것으로 조사됐다.
특히 국내 굴지 그룹의 건설계열사 B건설과 H건설을 비롯해 C건설, E건설은 선급금 차액이 많은 상위 10개 공구 명단에 각각 2개씩의 사업장 이름을 올려 업체별로 약 700억원의 선급금을 미집행, 여론의 비난을 면키 어려울 것으로 관측되고 있다.
이와 관련 건설노조 관계자는 "정부의 선급금 취지는 어려운 지역 경기를 살리고 지역 참여업체를 비롯한 중소하청업체와 실제 현장공사에 참여하는 건설노동자와 장비노동자에게 임금을 조기 지급해 경기활성화 효과를 내도록 하는데 있다"며 "그런데 원청 대형건설사들은 본격적인 공사를 진행하기 전 막대한 자금을 수혈 받고도 하청업체에는 정부에 제출한 사용계획서대로 선급금을 지급하지 않고 있다"고 비판했다.
이 관계자는 이어 "하청업체 중 회사자금 사정이 어려워 수개월씩 임금이 체불돼 있는 것은 다반사고 부도난 업체도 왕왕 있어서 건설기계 노동자들은 일한 대가 중 40~50% 가량을 날리게 되는 경우도 허다하다"며 "이는 차량유지비에도 턱없이 모자라 기름 값, 보험료, 할부금 등을 감안하면 일을 하고도 오히려 손해를 보게 된다"고 덧붙였다.
◆ 하청업체 부도났는데, 선급금 지급률은 29% 불과
이 같은 논란에 대해 C건설 관계자는 "4대강 사업장에 모두 30개의 하청업체를 두고 있는데 이중 12개 업체에는 선급금이 모두 지급됐고 나머지 업체들은 보증한도가 초과돼 수수료가 높게 부과될 것을 우려, 공정에 따라 공사대금을 지급해달라고 요청해왔다"고 해명했다. 선급금 미지급 비율이 높은 원인은 하청업체의 상황을 고려했기 때문이라는 설명이다.
이 외 원청 건설사들은 "자세한 내용을 확인중이다", "여러 부서들이 얽혀 있는 문제이기 때문에 확인절차에 상당한 시간이 소요된다", "담당자가 자리를 비웠다" 등을 이유로 입장표명을 꺼렸고, 정작 건설사들이 아닌 정부차원에서 해명에 나서 눈길을 모으고 있다.
국토부는 해명자료를 통해 "건설사들이 선급금 중 71%를 하청업체에 지급하지 않았다는 것은 사실과 다르다"며 "경실련은 원청업체가 받은 선급금이 하청업체에게 모두 지급해야될 금액으로 계산했다"고 밝혔다.
이어 "원청업체 선급금중 평균 38%만 하청업체에게 지급할 금액"이라며 "미지급된 선급금 비율은 평균 71%가 아니라 13% 수준"이라고 덧붙였다.
한편 이번 논란에 대해 경실련 관계자는 "지역경기 활성화와 경기부양을 목적으로 지급된 선급금은 재벌건설사들의 '배불리기' 수단으로 활용될 뿐, 정작 4대강사업장에서 일하는 노동자들과 중장비 기사들은 선급금은 커녕 노동의 대가인 임금조차 제대로 지급받지 못하고 있다"며 "정부는 지금이라도 재벌건설사들의 혈세 유용 여부에 대해 철저히 조사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이어 "특히 선급금이 제대로 사용되고 있는지를 관리 감독해야하는 국토관리청들은 관할구역에 몇 개의 하도급업체가 들어와 일하고 있는지, 또 원청사가 선급금을 어떻게 사용했는지조차 파악하지 못하고 있었다"며 "심지어 선급금 사용계획과 이후 발주처에 보고한 하청 지급내역의 금액이 최대 89%까지 차이가 난다는 문서자료를 갖고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아무런 조치를 취하지 않았다"고 지적했다.
[biz&ceo뉴스/소비자가 만드는 신문=류세나 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