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당국은 전·현직 임직원의 금융회사 감사 추천제 폐지에 이어 지난 9일에는 금융사의 상근감사 제도를 아예 폐지하고 사외이사로 구성된 감사위원회를 강화하는 방안을 검토하겠다고 밝혔다.
하지만 일종의 '경력세탁'을 거쳐 금융회사의 사외이사나 고문 등으로 취업하는 행태에 대해서는 해결책을 내놓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또 상근감사 제도를 폐지하고 사외이사가 이 기능을 대신하는 부분에 대해서도 전문성 저하 등 감사기능이 약화되는 게 아니냐는 비판도 제기되고 있다.
금융권 감사․사외이사 자리는 금감원과 모피아가 독차지?
저축은행을 비롯한 은행․보험․증권업계의 감사나 사외이사 자리는 금감원과 금융위 등 금융당국 퇴직자들이 거의 독차지하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현재, 금융회사에 감사로 재직 중인 금감원 출신 임직원은 총 44명에 달한다. 신한은행 감사 내정자였던 이석근 전 금감원 부원장보의 경우 금융회사 '낙하산 감사' 논란이 가열되자 지난 8일 자진사퇴했다.
제2금융권(금감원 3급 이상 임직원 출신)도 보험사 6명, 증권사 15명, 카드사 4명, 저축은행 10명이 감사로 일하고 있다. 특히 저축은행의 경우 지난 10년간 감사로 재직한 금감원 출신이 84명에 달한다.
지난 6일 한나라당 조문환 의원이 공개한 저축은행중앙회 자료에 따르면 4월 현재 저축은행에 재직하고 있는 금감원 퇴직자 36명 중 17명은 감사, 19명은 사외이사나 대표이사, 차장 등의 직함을 달고 있다.
은행과 보험 등 주요 금융권의 사외이사나 고문 등의 고위직은 금융위 등 금융당국출신이 주류를 이루고 있다. 34개 주요 금융회사에서 사외이사로 재직 중인 145명 가운데 은행(6곳) 43명, 증권(9곳) 40명, 보험(6곳) 25명, 저축은행(7곳) 17명 등 61명이 정·관계 고위직 출신인 것으로 나타났다.
사외이사 '거수기' 역할 취지 무색, 감사기능 약화 우려
이중 4대 금융지주 사외이사 현황을 보면 KB금융지주는 이경재 이사회 의장(한국은행, 기업은행장 역임)과 배재욱 변호사(대통령비서실 사정비서관), 우리금융지주는 이용만 전 재무부 장관이 있다.
신한금융지주는 남궁훈 전 재경부 세재실장, 하나금융지주는 김각영 현 이사회 의장 겸 법무법인 여명 고문변호사(검찰총장), 정해왕 전 한국은행 금융경제연구원장, 김경섭 전 조달청장, 허노중 키움닷컴사외이사(재정경제원 대외경제국장) 등 대다수 정․관계 인사들이 포진해 있다.
특히, 최근에는 미래에셋자산운용이 재경부 출신인 박병원 전 청와대 경제수석을 사외이사로 영입해 논란이 되기도 했다. 박 전 경제수석은 이미 KT 사외이사 겸 감사위원 명단에 이름을 올려놓은 상황에서 또다시 미래에셋에 영입되면서 억대 연봉을 보장받게 됐다.
하지만 그는 우리지주회장 재임 시절(2007년) 컨설팅용역업체 부당 선정과 한미캐피탈 부당 고가매입 등의 의혹이 드러나 지난 2009년 3월 감사원 감사에서 적발되는 등 구설수에 오른 인물이어서 사외이사 도입 취지를 무색케 만들었다.
사외이사 제도는 경영진의 독단을 견제하고 의사결정의 투명성을 높이기 위해 도입됐다는 점에서 전문성은 물론 도덕성과 청렴성도 검증된 인사여야 한다는 것이 금융계의 인식이다.
하지만 이들 사외이사가 경영진의 독단경영을 막기 보다는 '거수기' 역할에 그치고 있다는 지적은 비단 어제 오늘의 얘기가 아니다.
이런 상황에서 김석동 금융위원장이 상근감사 대신 감사위원회 제도를 활용하는 방안을 대안으로 제시했다.
김 위원장은 지난 9일 출입기자 간담회에서 "영국, 미국, 독일은 감사위원회 전원이 비상근인데 감사위원회를 두고 여기에 상근감사를 따로 두니 골치 아픈 문제가 생기는 것"이라며 감사위원회를 활용하겠다는 계획을 밝혔다.
상근 감사 1명과 사외이사 2명으로 구성된 금융사의 감사위원회를 비상근 사외이사 3명으로 구성해 금감원 등의 낙하산 인사를 막겠다는 취지지만 금융전문가들은 회의적 시각을 보이고 있다.
각 금융회사별로 '사외이사 모범 규준안'이 마련돼 있지만 경영진 주도로 사외이사를 추천하고 독립성도 미약해 이들이 경영진을 효과적으로 견제하기에는 한계가 있다는 지적이다. 일각에서는 소액주주를 통한 집중투표제 활성화 방안이 거론되고 있다.
금융위는 금융권의 감사위원회 설치 의무화를 현재 입법 진행 중인 금융회사지배구조법에 포함시키고 금융권의 준법감시인 제도를 대폭 손질해 감사기능을 강화시키겠다는 방침이어서 얼마만큼 실효성을 거둘지 귀추가 주목되고 있다.
한편, 투기자본감시센터 홍성준 사무국장은 "금감원 임직원들이 경력세탁을 위해 퇴직 전 총무과 등의 관련없는 부서에 있다가 바로 금융회사 감사로 가는 경우가 많았는데 '저축은행 사태'를 계기로 이에 대한 규제가 생길 것 같다"면서도 "가장 큰 문제는 이들이 법률회사 로펌을 거쳐 금융사 사외이사로 가는 등의 회전문 인사 관행이 계속되고 있다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홍 사무국장은 "금융당국의 감독/검사권한을 분산할 필요는 있지만 근본 개혁을 위해서는 고위직의 부당한 로펌행과 금융기관에 대한 낙하산 감사 폐해 근절 방안 마련 등 '공공성 실현'에 초점을 맞춰야 한다"고 강조했다. [마이경제 뉴스팀/소비자가 만드는 신문=임민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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