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산으로 바다로 나가서 모처럼 코에 바람 좀 쏘일 유일한 기회다. 7말8초라는 말이 있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7월 말에서 8월 초에 휴가를 잡는다고 해 나온 말이다. 가장 더울 때가 또 이즈음이니 다들 이 날짜에 가는 것이다.
휴가지로 으뜸은 역시 설악산이 아닐까. 산도 보고 바다도 볼 수 있는 설악산이야말로 하늘이 내린 축복이다. 그런데 그 설악이 물벼락을 맞아 말이 아니라니 허탈하다. 패닉 상태에 빠진 현지 주민들 옆에서 반바지에 선글라스를 끼고 다닐 수도 없다.
주당들은 계절을 가리지 않는다. 오히려 철철이 나는 안줏감에 사계절이 즐겁다. 그렇다면 이 오뉴월 염천에는 무슨 안주가 어울릴까. 시원한 그늘이 그립듯이 여름에는 차가운 안주가 제격이다. 불 끼고 고기를 구워 먹는 건 고역이니 역시 싱싱한 해산물이 최고다.
서울에서 바다를 느낄 수 있는 곳이 있다. 바로 노량진수산시장이다. 일반 시장과는 달리 수산시장은 더 활기가 넘친다. 펄떡펄떡 뛰는 생선이 있고 물속에 드러누워 기포를 뿜는 갑각류가 있기 때문이다.
서울 바닥에 널린 게 횟집이지만 ‘청해진’(사장 김옥임)은 내 발로 간 집이 아니라 끌려서 간 집이다. 노량진수산시장에 잘 하는 횟집이 있다길래 갔는데 주차장에서 내리니 마치 주문진 어시장 냄새가 났다. 바로 옆에 한강이 있어 더 헷갈렸다. 비린내를 맡으니 바닷가에 온 듯한 착각이 든 것이다.
‘청해진’은 처음 간 사람에게는 그리 특별할 것 없는 횟집이다. 횟집이 다 그렇듯 홀이 있고 방이 있는 그런 구조에 유니폼을 입은 종업원까지 평범한 것이다. 그러나 메뉴판을 보고 나면 사정이 달라진다. 결코 만만치 않은 가격대다.
‘청해진’은 활어를 제주도에서 매일 가져다 쓴다고 했다. 그래서 이곳에서 먹던 손님은 다른 곳에 가서는 못 먹는다는 말까지 하고 있다. 신선도 하나만큼은 어느 횟집보다 자신 있다는 얘기다. 생선회에서 신선도는 목숨(?)보다 더 철저하게 지켜야 하는 덕목이다. 주방장의 회 뜨는 솜씨가 입신의 경지라도 선도가 떨어지는 생선을 내놓는 집은 ‘미필적 고의에 의한’ 범죄(식중독)를 저지를 가능성이 크다.
일식집을 횟집으로 대중화시킨 한국인들의 발상은 놀랍기만 하다. 일본풍 인테리어 대신 택한 한국식에 서비스는 거의 대동소이한 것이다. ‘청해진’은 이른바 스키다시라고 부르는 곁두리가 기본 9가지. 여기에 해삼을 비롯한 각종 해산물에 초밥까지 얹은 별도의 접시가 따라 나오고 튀김 그리고 생선구이가 잇따라 나온다. 회를 뜨는 동안 입이나 다시라는 의미다. 곁두리는 여느 횟집도 다 주는 것이지만 성패는 격이 좌우한다. 접시를 내려놓는 종업원의 손놀림이 그 중 하나다.
‘청해진’의 광어회는 살아 있었다. 비행기를 타고 와서 그런가. 선도가 좋은 생선회 특유의 씹히는 맛이 탄탄하다. 음식점의 풍(風)은 주인이 만든다. 주인이 시종 웃는 낯이면 종업원들도 웃으며 일한다. 웃는 얼굴은 불친절하지 않다. ‘청해진’의 김옥임 사장은 수줍게 웃는다. 노량진수산시장의 비린내도 그이 앞에서는 비리지 않을 법하다.
출처:한겨레 이코노미 2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