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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얼굴의 변양균, 발등찍힌 청와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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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얼굴의 변양균, 발등찍힌 청와대
  • 헤럴드경제신문 제공 csnews@csnews.co.kr
  • 승인 2007.09.11 10: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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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양균 청와대 정책실장이 결국 낙마했다. 강한 추진력과 업무 장악력을 지닌 코드장관으로 불리기도 했지만 그는 노무현 대통령으로부터 가장 능력을 인정받았던 참여정부 정통 관료 중 한 명이었다.

그런 그가 한 여자와의 부적절한 관계, 그리고 그에 대한 거짓말 때문에 화려한 공직생활을 순식간에 마감했다. 그의 말만 철석같이 믿고 비호했던 청와대와 노무현 대통령까지 위기에 빠뜨린 채 30년 공무원 생활을 불명예스럽게 마치게 된 그의 남은 앞길은 한동안 더 험난할 것으로 보인다.

변 실장이 이번 신정아 씨 사건에 얽히게 된 이유는 애틋한 ‘미술사랑’과 ‘예일대’라는 공통분모에서 찾을 수 있다.

예일대 경제학 석사 출신인 변 실장은 2005년 같은 대학에서 미술사로 박사학위를 땄다고 후배임을 자처하는 23세 연하의 큐레이터에 자연스레 마음이 끌렸을 것으로 주위에서는 보고 있다.

변 실장은 고교시절 미대 진학을 꿈꿨고 고려대 2학년 재학시절 조선일보 신춘문예에 당선되기도 한 예술청년이었다. 아마추어 화가 수준 이상의 그림 실력에다 개인 화실까지 갖추고 있다.

독실한 불교 신자로 청와대 불교신자 모임인 ‘불자회’ 회장을 맡아왔다.

신씨가 동국대 교수에 임용될 때 기획예산처 장관이었고, 광주비엔날레 총감독이 될 때는 청와대 정책실장으로 충분히 영향력을 행사할 만한 자리에 있었다는 점에서 의혹은 배가된다.

행시 14회로 옛 경제기획원과 기획예산처에서 예산업무를 꾸준히 해 온 변 실장은 2001년 민주당 파견시절 정책위 의장이었던 이해찬 전 총리를 보좌하면서 눈에 띄기 시작했다.

경남 통영 출신으로 부산고와 고려대 경제학과를 나온 변 실장은 예산처 장관에 이어 지난해 7월 청와대 정책실장으로 입성했다. 비서실장 다음의 ‘서열 2위’인 정책실장을 맡으면서 386 실세들과도 원만한 관계를 유지했던 드문 고위관료였다.

1급 때까지만 해도 유연한 사고를 가진 관료로 평가받으며 언론과 가까웠다. 그러나 차관이 된 후 구내식당에서 기자간담회를 할 정도로 현 정부의 코드에 맞추려 노력했고 참여정부 정책의 총아로 부상한 이후엔 ‘목이 뻣뻣해졌다’는 소리를 들을 만큼 권위를 내세워 구설수에 올랐다.

청탁에 대해서는 확실이 선을 긋는 모습을 보여왔기 때문에 이번 신씨와의 관계에 대한 주변 사람들의 놀라움은 더 크다. 그와 행시 동기인 한 퇴직 관료는 “변 실장이 사석에서 한 번도 신씨에 대해 언급한 적이 없었는데 정말 이해가 되지 않는 일”이라고 말했다.

김형곤 기자(kimhg@heraldm.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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