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천고마비의 계절이라는 가을이다. 여름에 잃었던 식욕이 서서히 살아날 때인 것이다. “뭐, 맛있는 거 없나?” 이런 소리를 중얼거리면 떠오르는 집이 몇 곳 있다. 이른바 줄 서서 기다렸다 먹는 집이다.
얼마나 맛이 있길래 기다렸다 먹느냐는 힐난이 나올 법도 하지만 자괴감을 억누르며 기다렸다가 주인의 부르심을 받아 들어가서 먹는 이 음식들은 보통 손님들을 실망시키지는 않는다.
중앙일보 건너편 장호왕곱창은 이름과 달리 김치찌개로 사람들을 줄 세우고, 정동극장 옆 골목 안의 남도식당도 추어탕 한 그릇으로 사람들을 일렬종대로 만들고, 세종문화회관 옆 골목 안에 숨어 있는 광화문집도 그 좁아터진 곳에서 김치찌개 한 번 먹어보겠다는 사람들을 역시 손바닥만한 문 앞에서 서성거리게 만든다.
아무리 문전성시라고는 하지만 손님들도 자존심은 있다. 거저 주는 것도 아닌데 사람을 길바닥에 세워놓고 장사를 한다니 부아가 치미는 일이다. 그런데도 사람들은 그 집 앞에서 줄을 선다. 마치 표를 사려는 사람들처럼.
서울 관악구 봉천동에도 줄을 서서 먹는 집이 있다.
이곳은 다행스럽게도 아직 언론에 노출되지 않은 집이어서 찾아가느라 애를 먹었다. 대로변에서 버젓하게 장사를 하고 있었다면 금방 찾았겠지만 골목 안에 숨어 있어 물어물어 찾아가야만 했다.
‘신흥루 곱창집’(사장 소재욱)이라는 희한한 간판을 단 이 집은 같은 자리에서 30년 동안 장사를 했다고 소 사장은 말했다. 취재를 위해 찾아간 저녁, 소 사장은 취재를 거부했었다. 방송국에서도 자꾸 하겠다는 걸 마다했는데 어디에서 왔느냐면서 쉼 없이 들이닥치는 손님 맞으랴 주차시키랴 정신이 없었다.
취재를 여러 곳 다녀봤지만 이렇게 철저하게 기자를 무시하는 취재원은 처음 봤다. 그도 그럴 것이 밀려드는 손님 맞기도 바쁜데 인터뷰는 무슨 얼어 죽을 …. 촬영을 위한 사진기자의 수모도 만만치 않았다. 빈자리가 없어 자리가 날 때까지 1시간을 기다려야 했던 것이다.
신흥루 곱창구이는 무조건 한 판에 1만4천원이다. 이 집은 1인분 2인분의 개념도 없었다. 손님이 와 자리에 앉으면 주방에서 애벌로 익힌 곱창을 철판째 들고 와 다시 익혀 먹게 하는데 소창과 대창, 염통을 한꺼번에 올려 구워 먹는다.
뒤집기 전에 굵은 소금을 두어 번 뿌리고 양파를 얹어 같이 먹는 방식이다. 철판이 수북하게 푸짐한 곱창 한 판에 1만4천원은 다른 집 1인분 값도 안 된다며 올린다 올린다 한 게 벌써 7년째라고 소 사장은 말했다. 봉천동 사람은 몇 안 되고 다들 외지에서 입소문 듣고 찾아온 손님들이라는 말도 덧붙였다.
“내가 옛날에 한 동안 자장면, 우동을 팔았어. 그래서 신흥루야.”
비싼 음식을 싸고 맛있게 파는 것도 중생을 구제하는 일이라면 과장일까. 촬영이 끝난 다음 주린 배 속으로 곱창을 밀어 넣는 우리들 앞에서 대를 이어 찾아오는 단골들 때문에 값을 못 올린다는 소 사장의 투정은 곧이들리지 않았다. 땀을 뻘뻘 흘리며 철판을 든 채 드럼통 사이를 누비는 그의 아들은 대물림을 할 거라고 내게 말했다.
/출처:한겨레 이코노미2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