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인의 거짓말이 근본적 원인이 됐지만 ‘신정아 학력 위조 사건’은 한국사회를 관통하는 허위의식의 한 단면이다. ‘폼생폼사’, 명품에 죽고 못사는 분위기 때문에 누구나 편하게 즐길 수 있는 여가생활에도 ‘명품바람’이 불고 있다. 등산복과 트레이닝복, 자전거는 물론 골프의류ㆍ골프채에 이르기까지 수십만원에서 수백만원짜리 명품이 아니면 꼬리를 내려야 한다. 실력과 장소, 필요와 상관없이 전문산악인, 골프황제ㆍ여제를 강요받고 있는 것이다.
가장 대중적인 등산을 즐기려고 해도 등산복을 구입하는 데만 100만원이 훌쩍 넘는다. 상의 재킷만 50만원이 넘는 경우가 흔하다. 노스페이스의 최고가 상의 재킷은 69만원, K2 역시 63만원에 달한다. 라푸마도 60만원을 상회하는 재킷을 여럿 보유하고 있다. 기능성을 표방한 이들 등산복은 히말라야를 등반해도 문제가 없다고 선전한다. 이쯤되면 동네 뒷산을 오르면서 복장만큼은 엄홍길 같은 전문산악인이 부럽지 않다. 때문에 명품 등산복업체의 매출액도 크게 증가하는 추세다. 노스페이스의 경우 2003년 1000억원이었던 매출액이 매년 급증해 올해는 3000억원을 예상하고 있다.
트레이닝복도 마찬가지. 스포츠 의류업체 EXR의 상하 트레이닝복은 32만원, 나이키는 평균 20만원대를 호가한다. 요가, 조깅, 헬스 인구가 증가하면서 배보다 배꼽이 큰 트레이닝복도 날개 돋친 듯 팔리고 있다. EXR 마케팅팀 직원 임민경 씨는 “매년 매출액이 10% 이상 꾸준히 증가하고 있다”고 얘기했다.
언뜻 보면 차이가 없어 보이지만 1000만원이 넘는 명품 자전거도 심심찮게 팔리고 있다. 스페인에서 수입하는 오베아는 경차 수준인 1120만원에 이르며, 미국에서 만드는 GT는 최고가가 930만원에 달한다. 자전거 수입업체 스포메이트의 이동민(34) 대리는 “1000만원이 넘는 제품은 6개월에 1대 정도 팔리고 있지만, 200만~300만원의 제품은 소비자도 부담을 느끼지 않는 것 같다”고 전했다.
골프복과 골프채도 명품바람에서 예외일 수 없다. 티셔츠 한 벌에 잭니클라우스는 21만원, 블랙앤화이트는 31만원짜리가 널려 있다. 보그너는 118만원짜리 니트도 판매하고 있다. 이들 업체 대부분이 작년 대비 10~20%의 판매 신장률을 기록하고 있다. 골프채의 고가 브랜드로는 혼마와 마루망이 유명한데 혼마의 아이언 세트는 3300만원의 최고급 제품이 나오고 있으며, 마루망은 520만원의 아이언 세트를 판매 중이다. 실력과 상관없이 의류와 장비는 타이거 우즈, 안니카 소렌스탐 수준이다.
명품 구매 자체를 탓할 수는 없지만, 필요와 상관없는 과시용 구매가 늘고 있다는 점이다. 등산복업체의 한 직원은 “60만원이 넘는 제품은 방수, 방풍, 방출이 확실한 전문가용”이라면서 “필요없는 기능을 가진 제품을 ‘비싸다’는 이유만으로 구매하는 사례가 많다”고 전했다.
특히 대중적인 여가생활에 명품열풍이 불면서 서민의 부담과 소외감도 가중되고 있다. 등산을 즐기는 박정순(50ㆍ주부) 씨는 “최근 들어 친구들이 브랜드에 신경을 많이 쓰고 있어 6만원을 주고 등산복을 구입했는데 입을 때마다 망설여진다”고 털어놨다.
서울대 소비자학과 김난도 교수는 이런 사회 분위기를 두고 “소유가 향유를 대신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그는 “한국사회에서 운동을 비롯한 취미생활은 단순한 즐거움 이상의 의미를 지닌다”며 “남에게 내 수준과 여유로움을 과시하는 수단으로 잘못 사용되고 있다”고 비판했다.
김상수 기자(dlcw@heraldm.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