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난 98년 ‘감독기관에 딱 맞는 명당이지만 은행 터로는 좋지 않다’며 금융감독원 측에서 제일은행의 매각을 요구했고 은행 측은 이를 거부했던 것이다. 터가 너무 센 곳이라 은행으로는 적합하지 않다는 논리다. 제일은행 본점 터는 조선시대 ‘의금부’ 자리였으며 일제치하에서는 ‘종로경찰서’가 위치했던 곳이다.
지금의 종로타워도 몇 년 전만 해도 ‘국세청’이 있었는데 같은 맥락에서 나온 경우다. 사실인지 아닌지 몰라도 현재 제일은행은 ‘스탠다드차타드’로 인수, 합병됐다.
그래서일까. 종로타워를 중심으로 뒤쪽이나 건너편에 위치한 음식점들은 승승장구하는데 비해 제일은행에서 조계사 가는 길목으로는 딱히 잘 되는 음식점을 찾아보기 힘들다. 하지만 이 중에서도 튀는 집이 하나 있다. 바로 '공평동 꼼장어’다. 썰렁한 거리에 유독 그곳만은 ‘왁자지껄’ 시끄러운 소리가 들려온다.
꼼장어는 사람들이 즐겨먹는 스태미나 식품으로 바다에 살고 있는 장어류에 속한다. 꼼장어의 원래 이름은 ‘먹장어’다. 지역에 따라 묵장어, 꾀장어, 곰장어 또는 꼼장어라 불리는데 주로 꼼장어란 이름이 널리 사용된다.
저렴한 가격에 담백한 맛을 자랑하는 꼼장어는 소금구이나 양념구이를 해 많이 먹는데 이 집에서는 양념구이를 판다. 연탄불에 구워 먹는 붉게 물들은 꼼장어가 불판에 올려져 문어가 춤추듯 오그라드는 모습이 재미있다.
꼼장어구이와 함께 상추와 깻잎, 쌈무와 얇게 썰어낸 양파 등이 나오는데 어떻게 먹어야 할지 난감하다. 주인에게 물어보니 초고추장에 얇게 썰어 낸 양파를 버무려 쌈무에 얹은 다음 그 위에 꼼장어를 올려 먹으면 맛있다고 했다. 주인장 김병순씨 말대로 먹어봤더니 아삭하면서도 새콤한 쌈무와 양파 맛이 예술이다.
거기에다 걸쳐 마시는 소주 한잔은 겹겹이 쌓인 고민들을 한방에 날려 보내는 역할을 한다.
이곳의 특별 메뉴 ‘짬밥’까지 곁들여 주면 더욱 기가 막히다. 군대에서 먹는 철통 도시락에 각종 야채와 어묵 등, 그야말로 잡스러운 것들이 들어가 만들어진 짬밥은 참기름 맛이 고소하게 퍼지면서 입에 착 달라붙는다.
30대 후반에서 40대 초반 손님이 주로 많이 오는데 20대 후반으로 보이는 예비역(?)들도 간혹 보인다. 그들은 군 시절이 그리운지 하나같이 이 짬밥을 꼭 시켜 먹는다.
이곳은 꼼장어뿐만 아니라 추억도 함께 파는 곳이다. 벽면에는 7~80년대의 교복과 영화 포스터, 추억의 롤러스케이트, 교련복 등이 붙어 있어 사람들을 향수에 잠기게 한다. 메뉴판마저 칠판에 적혀 있어 정겹다.
카리스마가 넘치면서도 후덕한 사장 김병순씨는 “손님들이 옛 추억을 떠올리며 편안함을 느낄 수 있는 곳”으로 만들고 싶다”고 했다.
출처:한겨레 이코노미2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