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0년대에 접어들면서 우리 기업들은 한 때 '비전 2020'이라는 이름으로 장밋빛 청사진을 무더기로 쏟아냈다. 2020년이 눈앞의 현실로 다가온 시점에서 각 기업들이 내건 경영목표가 얼마나 실현 됐는지, 혹시 주먹구구식의 경영전략은 아니었는지를 점검해보고자 한다. -편집자 주-
이재현 CJ그룹 회장은 지난 2010년 '그룹 제2도약 선포식'에서 '2020그레이트(Great) CJ'를 선언했다.
2020년까지 그룹 매출 100조 원, 영업이익 10조 원과 글로벌 매출 비중 70% 이상을 달성하고 그룹 4대 사업군 중 최소 2개 이상을 세계 1등으로 키우겠다는 게 골자였다.
목표 달성 시한을 1년 앞둔 지난해 말 이재현 회장은 ‘양적 성장’이 아닌 ‘질적 성장’으로 방향을 선회했다. 전사가 비상경영에 돌입하고 재무구조 개선 집중을 강조하며 '비전 2020'도 거둬들였다.

이는 '2020 그레이트 CJ'를 내세워 양적 성장에서는 성과를 내기는 했지만, 당초 목표에는 미달한 데다 업황 부진 등으로 건전성이 악화된 데 따른 것으로 풀이된다.
공정거래위원회에 따르면 지난 2018년 기준으로 CJ그룹의 매출은 개별기준 24조8000억 원을 기록해 2020년 목표치에 크게 못 미친다. 최근 3년 간 성장률이 한 자릿수에 머문 것을 감안하면 올 연말까지 당초 매출을 달성하기는 불가능한 상태다.
다른 그룹들과 마찬가지로 경영목표 자체를 지나치게 공격적으로 잡은 탓도 있지만, CJ그룹의 경우 이재현 회장의 경영 공백이 발목을 잡았다.
이재현 회장은 2013년 횡령과 배임, 탈세 등 혐의로 구속돼 3년이 넘는 수감생활을 마치고 2017년에야 경영에 복귀했다. 이 회장은 그 와중에도 외형확대와 글로벌 사업 강화를 위해 투자 확대와 대형 M&A를 잇따라 성사시키며 비전 달성의 고삐를 당겼지만 목표했던 성과를 거두지는 못했다.
다만, '2020 그레이트 CJ' 추진을 통해 외형적인 성장면에서는 가시적인 성과를 거둔 게 사실이다. 비전 선포 당시인 2010년 10조9840억 원이던 매출은 2018년 2.3배로 늘었다. 최근 4년 동안은 매년 1조 원 이상씩 매출 규모가 확대됐다.

지난해에도 매출과 영업이익이 눈에 띄게 증가하는 호실적을 거둔 것으로 추정된다.
에프앤가이드에 따르면 CJ그룹 주요 상장사의 2019년 매출은 연결기준으로 43조1075억 원을 기록하며 전년에 비해 18.2%나 증가할 것으로 전망된다. 영업이익은 17조622억 원으로 2조 원 가까이 늘어날 것으로 보인다.
CJ의 핵심 계열사인 CJ제일제당과 CJ대한통운이 10% 이상 매출을 늘린 가운데 CJ CGV, CJ ENM, CJ프레시웨이, 스튜디오 드래곤 등 전 사업 부문에서 매출과 영업이익이 모두 두자릿수 성장을 거둘 것으로 전망된다.
◆ 안정적인 사업구조, 음식 등 한류 기여 긍적적...M&A 후유증에 질적 성장으로 선회
CJ그룹은 비전을 선포한 2010년 이후 사업 구조에서도 큰 변화를 이뤄냈다.
CJ는 식품·식품서비스, 물류·신유통, 엔터테인먼트·미디어 등을 주력 사업군으로 삼고 있다. 이중 식품이 전체 매출의 50% 이상 차지하고 있었지만, 비전 2020을 통해 식품비중을 30% 이내로 줄이고, 나머지 사업군이 고르게 자리를 잡았다.
현재 그룹 전체 매출에서 가장 높은 비중을 차지하는 사업은 물류·신유통(36.2%)이고 식품(28.6%)과 엔터테인먼트·미디어(15.1%)가 그 뒤를 잇고 있다.
물류·신유통이 그룹 내 최대 매출 사업군으로 성장할 수 있었던 건 CJ가 지난 2011년 '대한통운'을 인수한 데서 시작됐다. 당시 이재현 회장은 세계화를 이루는데 물류사업은 글로벌 플랫폼이라는 중요 역할을 수행할 것이라며 적극적인 투자와 지원으로 글로벌 기업과의 M&A를 성사시켰다.
CJ 물류·신유통 사업의 주축인 CJ대한통운은 다슬(인도), 이브라콤(중동), 제마뎁(베트남), DSC(미국) 등 글로벌 물류회사를 거듭 인수합병하며 덩치를 키워 매출이나 영업이익은 비전 선포 당시보다 크게 증가했다. 매출은 2조5000억 원에서 9조2000억 원으로 260% 증가했고 영업이익은 1546억 원에서 2427억 원으로 60% 가까이 신장했다.

CJ 핵심사업인 식품·식품서비스는 그룹 내 매출 비중은 물류·신유통에 밀렸지만 성장세는 두드러졌다.
비전을 선포했던 2010년 매출(5조6600억 원)에 비해 2018년 매출은 18조6700억 원으로 3배 이상 증가했다. 이 기간 영업이익은 4433억 원에서 8327억 원으로 87.8% 증가했다.
2017년 베트남 식품기업 민닷푸드, 브라질의 소재기업 셀렉타, 러시아 식품회사 라비올리 등 인수에 이어 2018년에는 미국 냉동식품 회사 슈완스와 카히키, 독일 마인프로스트 등을 인수했다.
이외에도 CJ는 그간 돈으로 환산할 수 없지만 글로벌 시장서 K뷰티, K푸드, K팝 등 우리나라 콘텐츠 확산에 기여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특히 지난 2012년부터 미주, 중남미, 중동, 동남아 등 세계 각지에서 개최해 온 세계 최대 K컬쳐 페스티벌 '케이콘(KCON)'은 지난해 기준으로 누적 관객만 100만 명에 달한다. 케이콘은 한류 문화 확산에 기여할뿐 아니라 중소기업의 글로벌 시장 진출 창구로도 활용되며 긍정적인 평가를 받고 있다.
다만 단기간에 급격하게 덩치를 키우면서 재무건전성은 뒷걸음질을 치며 또 다른 숙제를 안겼다.
CJ제일제당의 경우 외형 확장 과정에서 차입금이 급증하고 재무건전성이 악화됐다. 지난 2010년 1조3898억 원이던 순차입금은 지난 3분기 말 기준 11조 원으로 불어났다.
이에 CJ제일제당은 비상경영체제를 가동하고 서울 가양동 부지와 영등포 공장 부지를 매각하는 등 재무 건전성 개선에 나서고 있다. 또한 가공식품 상품 수를 조정해 선택과 집중 전략으로 어려움을 돌파한다는 방침이다.
CJ대한통운은 CJ제일제당에 비해 재무구조가 안정적이라는 평가를 받고 있지만 지난 3분기 말 순차입금이 3조5430억 원으로 2015년(1조2817억 원)에 비해 2조 원 이상 불어났다. 부채비율도 매년 상승하는 추세다. 지난 2016년 101.6%로 100%를 넘어선 후 2017년 127.8%, 2018년 151.3%로 높아졌다.
이에 CJ대한통운도 그룹 경영기조에 따라 올 한해 투자 확대 보다는 수익성 제고로 질적 성장을 꾀한다는 방침이다.
이에 따라 그룹 차원에서도 올해 경영목표를 질적 성장에 맞추고 외형 확대보다는 경쟁력 강화에 치중한다는 계획이다.
CJ그룹은 "2020년 올 한해 새로운 도약의 원동력이 될 초격차 역량을 확보하고 이를 지속적으로 강화하겠다"라고 밝혔다.
[소비자가만드는신문=조윤주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