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 & 캠페인
또 고개 드는 리디노미네이션 논쟁
상태바
또 고개 드는 리디노미네이션 논쟁
  • 뉴스관리자 csnews@csnews.co.kr
  • 승인 2007.11.07 06:42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회사원 박모(43) 씨는 얼마전 택시를 타고 요금 3천100원이 나와 1만원 지폐를 건넸더니 운전기사로부터 거스름돈으로 6천900원이 아닌 7천원을 받았다.

   거스름돈으로 충분한 동전을 확보하고 있어야 하는 운전기사가 동전 900원을 건네는 대신 아예 100원을 포기한 것이다.

   주부 김모(42) 씨는 동네 슈퍼마켓이나 할인점에서는 물건을 사고 거스름돈으로 10원 단위까지 꼬박꼬박 챙겨 받지만 재래시장에서 물건을 살 때는 10원짜리를 주고 받는 경우는 아예 없다고 말한다.

   우리 실제 상거래에서 거래의 최소단위가 과거에는 1원 단위였으나 이제는 10원 단위로 올라섰으며 당장은 아니더라도 앞으로 100원 단위로 상승할 때가 올 수도 있다.

   이쯤되면 화폐액면단위변경(리디노미네이션)은 피할 수 없는 대세가 될 것으로 보인다.

   한국은행은 현단계에서는 리디노미네이션을 추진할 계획이 없다는 점을 분명히 하고 있다.

   하지만 경제규모와 금융시장의 규모가 함께 커지고 물가상승과 함께 거래의 단위가 점차 올라가면 리디노미네이션을 무한정 미룰 수는 없을 것으로 보인다.

   특히 2009년 영(0)이 5개나 그려진 10만원권이 등장하면 리디노미네이션에 대한 논의가 본격화될 것으로 보인다.

   7일 한국은행에 따르면 2009년 상반기에 5만원권과 10만원권이 발행되면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가운데 한국이 최고액면권종을 보유하게 된다.

   현재 OECD 회원국 가운데 헝가리의 2만 포린트 지폐가 최고액면권종이지만 한국의 고액권이 발행되면 5만원권과 10만원권이 단번에 최고액면권종 1,2위에 등극한다.

   통용화폐 가운데 영이 4개나 들어가는 권종을 보유한 국가도 극소수인 가운데 영이 무려 5개나 들어가는 10만원권 지폐가 OECD 국가 가운데 한국이 첫 선을 보이는 것이다.

   그렇다고 한국의 10만원권이 액면가치면에서 대단한 위치를 차지하는 것도 아니다.

   OECD 30개 회원국 가운데 한국을 제외한 29개국가의 최고액면권종 평균이 원화로 37만원 가량인 점을 감안하면 10만원권은 동그라미 숫자만 많을 뿐 액면가치는 OECD 국가의 최고액권 가운데 중간수준에도 끼지 못하는 셈이다.

   리디노미네이션에 찬성하는 진영은 이러한 점 뿐만 아니라 금융통계의 단위가 너무 커지고 있는 것도 리디노미네이션을 서둘러야 하는 요소로 꼽고 있다.

   올해 6월말 현재 국내 금융자산 총액은 7천573조4천억원으로 작년 같은 시점에 비해서는 15.7% 늘었다. 이러한 증가속도가 계속 이어진다면 고액권이 발행되는 2009년 6월께는 1경(京)원을 돌파할 수 있다.

   1경은 1조(兆)의 1만배에 해당하는 단위로 장부에 표시하기 위해서는 영이 무려 16개나 필요하다.

   한은 금융망을 통한 연간 결제액 규모는 이미 1경원을 넘어섰고 파생금융 거래 규모의 총액도 경단위를 돌파했다.

   광의유동성(L)은 2천조원에 육박하고 있다.

   한은은 유동성 통계를 외국통계기관에 제공할 때 '1.8 쿼드릴리언(quadrillion)' 이라는 표현을 사용한다. 외국인들에게도 10의 15승을 뜻하는 '쿼드릴리언' 이 무척 생소한 단어여서 이를 설명하기 위해서는 영어사전까지 펼쳐 보여야 하는 촌극이 빚어지기도 한다.

   외국의 경우 통계단위의 대부분이 10억(billion) 단위로 해결되고 최대치라하더라도 1조(trillion) 단위에 그치는 점에 비춰 볼 때 우리나라 통계단위의 인플레이션은 계속 방치하기 곤란하다는 지적이 많다.

   실제 생활에서도 수십만원 이상을 송금할 때는 화폐 단위 숫자를 꼼꼼하게 짚어가며 착오가 없도록 신경을 곤두세워야 하는 형편이다.

   그러나 한은의 리디노미네이션에 대한 입장은 '당분간 계획없음'이라는 쪽이다.

   이성태 한은 총재는 국회 국정감사 등에서 "화폐단위 변경은 장래의 어떤 시기에 거론될 수 있을지는 모르지만 가까운 장래에 추진할 계획은 없다"고 밝혔다.

   과거 박승 총재 재임때는 고액권 발행, 화폐의 위.변조 방지기능 강화, 리디노미네이션 등 3개 과제를 동시 추진하는 화폐제도개선방안을 수립했으나 이 가운데 고액권 발행과 위.변조방지 기능 강화만이 이뤄졌다.

   리디노미네이션을 나머지 2개 과제와 함께 추진했더라면 유.무형의 비용이 절감됐겠지만 현 시점에서 리디노미네이션만을 별도로 추진하는 것은 무리가 따른다고 본 듯 하다.

   게다가 원.달러 환율이 1천원 아래로 떨어진 후 900원선마저 하회하려는 움직임을 보이는 것도 리디노미네이션을 필요성을 희석시키는 요소다.

   한은 고위관계자는 "리디노미네이션은 화폐를 새로 유통시켜야 할 뿐만 아니라 회계장부와 컴퓨터의 회계시스템 전반을 일시에 바꿔야 하는 등 사회.경제분야 전반에 걸쳐 상당한 영향을 미치기 때문에 국가전체적으로 충분한 공감대가 형성돼야 추진할 수 있다"고 말했다.

   일각에서는 차기 정부 출범에 때맞춰 한은이 리디노미네이션을 재추진할 것이라는 관측도 있으나 한은은 이에 대해 다소 부정적이다.

   한은 관계자는 "현재 리디노미네이션이 꼭 필요한 과제인지, 만일 추진해야 한다면 적절한 시기가 언제인지, 사회.경제적 비용은 어느 정도인지 등에 대해 좀 더 새로운 시각으로 면밀히 검토하고 있다"면서 "그러나 가까운 장래에 리디노미네이션을 추진할 계획이 없다는 점은 분명하다"고 말했다.

   그러나 한은도 물가상승과 함께 경제규모가 커질 수록 시장이 먼저 리디노미네이션을 압력을 키워갈 것이라는 점을 부인하지는 않는다.

   장기적으로 볼 때 물가상승으로 화폐 거래단위의 인플레이션 커지면 상거래의 편의를 위해 경제주체들이 알아서 1천 단위 정도를 줄여 거래하는 관행이 정착될 수 있다.

   이렇게 되면 중앙은행이 리디노미네이션을 미룰 수는 없는 노릇이다. 일부에서는 경제규모가 지금보다 더 커지면 리디노미네이션을 추진하는 비용도 함께 커지기 때문에 시기를 앞당길수록 좋다는 주장도 펴고 있다.

   2009년 동그라미가 5개나 그려진 고액권이 등장하면 리디노미네이션에 관한 논의는 지금보다 훨씬 더 뜨겁게 달아오를 전망이다. (연합뉴스)



주요기사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