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은의 고위관계자는 8일 "전문가들의 자문과 일반 여론조사 등을 거쳐 도안인물을 선정했으며 이를 번복하고 다른 인물을 선정하는 일은 있을 수 없다"고 강조했다.
이 관계자는 "도안인물 확정 후 고액권의 뒷면 보조소재의 선정과 전체 디자인 마련을 위한 작업에 착수했으며 연내 디자인을 확정해야만 2009년 상반기중 고액권 발행일정을 맞출 수 있다"면서 초상인물 선정 작업을 원점으로 돌리는 것은 현실적으로도 불가능하다고 말했다.
특히 발권기능을 보유한 한은이 한은법에 의거, 정부와 협의를 거쳐 도안인물을 선정해 발표한 후 이를 백지화하는 것은 중앙은행의 신뢰성에 큰 손상을 가져올 수 있다는 점에서 이미 발표한 인물도안을 그대로 유지해야 한다는 것이 한은의 입장이다.
한은은 지난 5일 이승일 부총재가 기자회견을 통해 고액권의 인물도안으로 10만원권에 백범 김구, 5만원권에 신사임당으로 선정했다고 발표했으나 진보적 여성단체 등에서는 신사임당을 화폐인물로 선정한 것을 받아들일 수 없다며 강력히 반발하고 있는 형편이다.
특히 일부 언론에는 화폐도안자문위원회에 참여한 익명의 전문가의 주장을 인용해 백범 김구보다는 도산 안창호가 자문위원들로부터 더 많은 지지를 받았다는 내용이 소개됐으며, 한 여성단체는 화폐도안자문위원장을 맡은 이승일 부총재가 신사임당의 아들인 율곡 이이와 종친인 덕수 이씨라고 주장하며 도안인물 선정에 하자가 있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한은은 "이 부총재는 덕수 이씨가 아니라 신평 이씨"라고 반박하면서 "자문위원회의 역할은 순전히 자문역할을 하는 것이며 위원들의 인기투표 결과로 도안인물을 선정하는 것이 아니었다"고 해명했다.
한은 관계자는 "화폐의 인물도안을 선정하는데 거창한 이념을 부여하는 것은 지나친 감이 없지 않다"면서 "화폐는 화폐로서의 기능에 충실해야 하며 도안의 상징성과 아울러 심미적 요소, 위.변조 방지 기능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해야 하기 때문에 도안인물이 지니는 역사적 의미나 대표성에 과도하게 집착해 찬반논란이 증폭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고 말했다.
그러나 한은의 이러한 입장에도 불구하고 도안인물 선정의 적절성을 둘러싼 논란이 수그러들지는 미지수다.
특히 과거 1만원권의 지폐 도안이 발행공고까지 마친 상태에서 우여곡절 끝에 변경된 전례가 있어 한은의 '도안인물 변경 불가' 방침이 끝까지 고수될지 여부도 의문이다.
1973년 첫 등장한 1만원권 지폐의 원래 도안은 지금의 세종대왕이 아닌 석굴암과 불국사였으나 우여곡절 끝에 발행 직전 변경됐다.
당시 한은은 1만원권의 앞면에는 석굴암 본존불, 뒷면에는 불국사 전경을 보조소재로 도안한 지폐를 발행키로 결정하고 시쇄품(試刷品)까지 제작한 뒤 박정희 대통령의 서명을 받아 발행공고를 마쳤었다.
발행공고를 했다는 것은 정식 은행권으로 유통채비가 끝났음을 뜻한다.
그러나 발행공고가 나간 이후 종교계의 반발이 심해지고 일반 여론도 '특정 종교를 두둔할 수 있다'는 쪽으로 기울면서 발행을 취소한 뒤 이듬해 앞면에는 세종대왕, 뒷면에는 근정전(이후 경회루, 혼천의 등으로 교체)이 도안된 새 지폐를 내놓았었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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