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산신약 1호인 항암제 '선플라주'에 이어 지난 29일 국산 1호 코로나19 백신 '스카이코비원(SKYCovione)멀티주'를 탄생시키며 제약과 백신 국산 1호를 모두 거머쥐는 데 성공했다. SK그룹 최종현 선대회장과 최태원 회장의 백신·제약바이오주권을 향한 35년 뚝심과 집념이 빛을 발했다는 평가다.
지난 29일 식품의약품안전처는 SK바이오사이언스가 개발한 코로나19 백신 스카이코비원을 허가했다. 스카이코비원은 유전자 재조합 기술을 이용해 만든 항원 단백질을 투여해 면역 반응을 유도하는 국산 1호 코로나19 백신이다.
식약처 측은 스카이코비원 품목허가에 대해 "이로써 대한민국은 코로나19 치료제와 백신을 모두 보유한 나라가 됐다. 미래 감염병 유행에 보다 선제적으로 대응할 수 있는 보건안보 체계를 구축하게 됐다"고 평가했다.

SK그룹의 바이오 사업 역사는 1980년대로 거슬러 올라간다. 주력사업인 섬유산업을 대체할 성장동력을 고민하던 중 섬유를 만들 때 화합물을 합성하는 방식이 제약품 제조 방식과 유사한 점을 포착했다. 때마침 해외 섬유기업들도 생명과학으로 비즈니스 모델을 전환 중이었다. 서울대와 미국에서 화학을 공부했던 최종현 선대회장의 이력도 한몫 했다.
바이오를 목표로 잡았으나 실제 사업화는 쉽지 않았다는 설명이다. 당시 제약업계는 다국적 제약사들의 오리지널 신약을 수입해 단순 가공·포장하거나 오리지널 신약과 동일한 성분의 약제를 복제한 제네릭 의약품을 판매하는 수준이었다. SK그룹과 같은 대기업이 제약사업에 진출하자 경쟁업체들은 소위 '중소업종 침해'라며 강력히 반발했다는 후문이다.
최종현 선대회장은 "대기업이 참여했으면 이익을 사회에 환원하고 국민에게 봉사해야 한다. SK 목표는 우리 상표가 붙은 세계적 신약을 만드는 것이니 걱정하지 말라"면서 반발을 무마시키고 신약개발에 집중했다.
최종현 선대회장은 1987년 선경인더스트리 산하에 생명과학연구실을 설립한 뒤 합성신약, 천연물신약, 제제, 바이오 등 4개 분야로 나눠 연구에 돌입했다. 연구실은 1989년 연구소로 확대된 뒤 위암치료 신약을 1호 과제로 삼고 10년 연구한 끝에 1999년 3세대 백금착제 항암제인 '선플라주(성분명: 헵타플라틴)'를 개발했다.
'선플라주'는 국산 1호 신약이자 전 세계 최초 신약(First in Class)으로 10년여 연구 기간을 거쳐 개발됐다. 한국 근대의약이 시작된 지 100년여 만에 대한민국 위치를 신약 주권을 가진 국가로 올려놨다는 평을 받았다. SK는 연구에 81억 원이라는 당시로선 막대한 금액을 투입했다.
선대회장은 미국 뉴저지와 대덕에도 연구소를 설립한 뒤 1993년 글로벌 신약기업을 따라잡기 위한 'P프로젝트'를 시작했다. Pharmaceutical(제약)의 첫 음절을 딴 이 프로젝트는 현재 SK바이오팜의 출발점이 됐다. 앞서 선경인더스트리에 설립된 생명과학연구소는 바이오와 백신, 제제 분야로 특화된 SK케미칼, SK바이오사이언스, SK플라즈마 모태가 됐다.
선대회장의 제약바이오 바통은 최태원 SK 회장과 최 회장의 사촌동생인 최창원 SK디스커버리 부회장이 이어받았다.

선플라주 이후 SK그룹은 2001년 국내 1호 천연물 신약 '조인스'(관절염 치료제), 2007년 신약 '엠빅스'(발기부전 치료제)를 개발하는 데 성공했다. 국내 35개 합성신약 중 2개를 보유한 기업이 됐다.
SK그룹의 백신 기술은 최창원 부회장이 가세하면서 본 궤도에 올랐다. 최 부회장은 2006년 SK케미칼 대표이사를 맡은 이후 프리미엄 백신개발을 위한 스카이박스(SKYVAX) 프로젝트를 추진했다. 경북 안동에 백신공장을 설립하면서 백신 연구를 이끈 결과 2016년 세계 최초로 세포를 배양, 네 가지 바이러스를 예방하는 독감백신 '스카이셀플루'를 개발해 냈다.
세포배양 기술은 유정란 백신에 비해 생산 기간이 짧고 효율이 우수하며 독감 대유행 상황에 신속히 대처할 수 있는 장점을 가지고 있다.
이 같은 성과를 기반으로 최 부회장은 2018년 SK바이오사이언스를 설립하고 K백신 노하우를 고도화시켜 나갔다. 빌&멜린다게이츠 재단이 코로나19 백신 개발에 360만 달러의 연구비를 지원한 것도 SK바이오사이언스의 기술력을 감안한 결정이었다는 게 그룹 측 설명이다.
최 부회장이 백신에 집중했다면 최태원 회장은 신약 개발에 주력했다. 최 회장은 SK바이오팜을 설립해 2019년 수면장애 신약 '수노시(성분명: 솔리암페톨)'와 뇌전증 신약 '엑스코프리(성분명: 세노바메이트)' 2개를 개발한 후 FDA(미국 식품의약청) 승인을 받아 미국 시장에 출시했다.
SK그룹 관계자는 "국내 기업 중 신약후보 물질 발굴과 임상, FDA 승인, 마케팅 등을 독자적으로 수행한 신약을 보유한 기업은 SK가 유일하다"고 자신했다.
최 회장과 최 부회장 등 사촌형제는 SK와 대한민국의 성장을 이끌 동력원으로 바이오 사업을 키워가고 있다.
최 회장이 2002년 '바이오 사업을 육성해 2030년 이후에는 그룹의 핵심 성장 동력으로 삼겠다'는 장기목표를 제시하자 SK는 바이오에 적극적인 투자를 단행하면서 SK바이오팜, SK바이오사이언스, SK플라즈마, SK팜테코 등을 설립했다.
이들 기업은 각각 신약과 백신, 제제, 의약품 위탁생산(CMO)을 주력으로 한다. 4개 기업 매출은 2019년 9532억 원에서 2021년 2조4022억 원으로 크게 늘며 반도체와 배터리에 이은 SK의 성장 버팀목으로 자리했다. CMO를 주력으로 하는 SK팜테코의 경우 매출은 5554억 원에서 9486억 원으로 증가하는 등 SK 바이오 사업의 효자 역할을 하고 있다.
최 회장은 SK의 바이오 시장을 글로벌로 확장하면서 K바이오 위상을 강화하려 하고 있다. 2017년 글로벌 제약사 BMS의 아일랜드 생산시설(CMO)과 2018년 미국의 위탁개발생산(CDMO) 업체인 앰팩(AMPAC)을 인수했다. 국내 세종시에 위치한 공장을 포함하면 한국과 미국, 유럽에 바이오 생산기지를 갖춘 유일한 기업으로 성장했다는 설명이다. 해외 생산시설을 통합관리하고 신약의 글로벌 마케팅을 담당할 SK팜테코를 미국 캘리포니아에 설립하며 미국 시장도 공략 중이다.
아울러 지난해 프랑스 세포·유전자치료제 기업 이포스케시를 인수했고 지난 1월에는 미국 세포·유전자치료제 기업 CBM에 투자, 세포·유전자치료제까지 생산하는 기업으로 외형을 확장했다. 특히 이포스케시에 대한 투자는 프랑스 정부가 2030년 부산엑스포 유치 지원을 위해 프랑스를 방문한 최 회장에게 양국 경제협력에 기여한 공로를 인정, '레지옹 도뇌르' 훈장을 수여할 정도로 경제외교를 강화하는 계기가 됐다는 게 그룹 측 설명이다.
이외 SK는 인공지능을 활용, 단백질을 분해해 신약을 개발한 로이반트 사이언스에 투자하고 중국에 중추신경계 제약사인 이그니스를 설립하면서 해외시장 진출을 본격화하고 있다.
SK그룹 관계자는 "바이오 관련 분야에 향후 5년간 최소 6조 원 이상 투자를 단행할 예정이어서 향후 SK발 K바이오 스토리는 더 많이 창출될 것으로 예상된다"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이어 "SK의 바이오 역사는 최종현 선대회장과 최태원 회장, 바이오 연구진들이 리스크를 두려워하지 않고 새로운 도전을 거듭하면서 이뤄낸 성과다. 과감한 투자와 연구를 지속해 K바이오의 또 다른 신화를 만들어 내겠다"고 말했다.
[소비자가만드는신문=김경애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