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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뷰] 연극 ‘7인의 기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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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뷰] 연극 ‘7인의 기억’
당신의 기억을 위해 건배!
  • 뉴스관리자 csnews@csnews.co.kr
  • 승인 2010.04.13 17:0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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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0대 중후반 남성 여섯이 모교의 어느 교실을 찾는다. 교실은 여전히 네모다. 그 교실에는 ‘목욕탕처럼’ 사물함도 있다. 이제는 ‘가방에 다 쳐 넣고 다닐 필요’ 없어졌다. 도시락 따위도 급식이 대신한다. 태극기는 아직 그대로다. 추억에 젖게 하는 이곳에서 여섯 명을 관통하는 과거의 기억이 꿈틀거리며 몸을 일으킬 준비를 하고 있다. 조심스러웠던 지난 시간들이 점차 선명해진다. 그리고 곧 현실과 정면으로 마주하게 된다. 연극 ‘7인의 기억’은 이 여섯 명의 과거에서부터 시작한다.


그들의 지난 기억은 자극적이고 세련된 소재들로 가득한 연극들 사이에서 관객과의 교감에 성공해야한다. 연극 ‘7인의 기억’은 70년대 소재로 현대와의 소통을 이뤄야한다는 부담을 안고 시작한다. 그러나 망설일 필요 없다. 눈치 볼 필요도 없다. 극 중 추달오의 대사처럼. “내 아들놈 말이야. 그 놈 호주 보내놨더니 공부 끝나고 거기서 살 거래. 안 올 거래. 한국이 지겹데. 지 아버지 돈 잘 버니까. 근데 왜 나는 걔 눈치를 봐야 되는데? 생각해봐. 역사는 말이야. 그렇게 누구 희생으로 나아지고 그런 거 아냐. 우리가 배운 거 전부 다 틀린 거야. 그냥 역사는 흘러가는 거야!” 속이 다 시원하다.


- 시대가 꾸는 꿈


작품 속 인물들은 동명의 극중극 연극 ‘7인의 기억’ 연습을 위해 이곳에 모였다. 그런데 여섯 명이다. 이 자리에 없는 한 명의 이름은 서종태, 그는 이들과도 연관된 어떠한 사건의 충격으로 평범한 삶을 살아가지 못하고 있다. 딸과의 대화도 불가능하다. 딸 수정은 현재 뮤지컬 ‘더 미러’의 주인공 애린 역을 위해 오디션 현장에 있다. 연극 ‘7인의 기억’은 20대가 뛰고 있는 뮤지컬 연습현장과 50대가 만들어내려는 연극 연습현장을 교차적으로 보여준다. 동떨어진 두 시대는 이질적이지만 하나로 연결돼 있다. 바로 ‘꿈’이다.


딸에게 뮤지컬이라는 꿈이 있듯 아버지들에게는 민주화와 자유라는 꿈이 있었다. 그것은 치기어린 고등학생의 객기로 회상될지라도 당시에는 찬란하게 빛났다. 고등학생이 총과 칼을 든 군부와 맞서 자신들의 이야기를 하고자 했던 것은 무모한 행동이다. 또 영웅적 행위다. 그때는 신념대로 행동할 수 있는 용기가 있었다. 이제는 너무 늙었다. 또 지쳤다. 더 이상 영웅이 될 수 없다. 그러나 그 순간만큼은 자신에게 충실한 영웅이었다. 무대 위 아버지들은 그래서 멋있다. 반면 수정은 오디션에서 번번이 떨어진다. 그 배후에는 김병준이라는 50대 후반의 사내가 있다. 김병준은 다시 극의 7인과 관계돼 있다. 이렇듯 엉켜있는 인물들의 관계, 실패와 좌절, 상처와 아픔은 서로를 쓰다듬지 못한 채 각자의 위치에서 서로를 날카롭게 겨냥하고 있다.


- 당신의 기억은 우리의 역사


연극 ‘7인의 기억’은 1972년 10월, 유신 당시 고등학교 학생 일곱 명이 유신헌법을 비판하는 유인물을 만들어 배포한 실화를 바탕으로 한다. 그러나 정치 혹은 사회 고발에 관한 이야기는 아니다. 이들을 하나로 묶고 있는 것은 기억이다. 그 기억이 현재 어떠한 모습으로 표출되는지, 그 결과물 ‘나’에게 어떻게 작용됐는가를 이야기한다. “살아있는 게 계속 그 구치소 같아. 구치소가 내 집이었던 것 같아. 평생 그 바깥을 못 나온 거 같아. 종태처럼.” 더불어 그 시대를 희생으로 보냈던 아버지들, 그들의 아픔에 격려를 보낸다. 대신 어루만지며 당신들의 과거가 소중한 것이라 일러준다.


과거와 현재의 모습을 그려내며 소통에 대해 이야기 한 이 작품은 보기 드문 ‘착한 연극’이다. 그럼에도 젊은 관객들과의 교감에 성공했는가 여부는 확실치 않다. 사설적인 대사는 간결하고 심플하게 치고 나가는 맛이 없다. 때문에 산만하거나 늘어진 느낌이 있다. 또한 연극계에서 ‘한 연기 하는’ 중견 배우들이 대거 출연하는 작품에 대한 기대감에 비해 하나의 하모니 보다는 산발적 느낌이 든다. 일곱 명의 인물, 김병준 포함 여덟 명의 캐릭터가 등장하지만 모두들 엇비슷해 보인다. 연출된 의도나 계산 하에 이뤄진 표현방법일 수도 있으나 집중력을 떨어트렸다는 데에는 아쉬움이 남는다.


그러나 당신이 젊어 느린 호흡에 안타까움을 느꼈다 하더라도 이 연극은 상당한 의미를 갖는다. 공연 중 객석을 둘러보면 중장년 관객들의 몰입도가 굉장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바로 그들의 이야기인 것이다. 그들은 이 연극을 통해 공감하고 회상했으며 웃고 울었다. 세대를 불문하고 한국에서 이 시대를 사는 모든 관객들에게 이 연극이 의미를 줄 수 있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그들은 우리들의 아버지다. 이들을 경멸했던 수정은 아버지를 이해하고 연기에 눈을 뜨게 된다. 그리고 자신의 벽을 깨며 아버지에게 다가온다. 8명의 중년들은 그런 수정을 보며 자신의 ‘기억’의 의미를 깨닫는다. 이것이 바로 연극 ‘7인의 기억’이 조심스레 제시하고 있는 소통의 시작이다.


뉴스테이지 이영경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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