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러나 기업의 AI 활용이 소비자에게 미치는 영향에 대한 분석이 충분한지에 대해서는 의문부호가 붙는다. AI 활용으로 인한 편리함 뒤에 교묘한 알고리즘으로 소비자를 조정하고 피해를 양산하는 일도 현실이 되고 있다.
소비자가 만드는 신문은 2026년 창간 20주년을 맞아 AI가 몰고올 소비자 생태계 변화와 혼란을 진단하는 연중 기획 시리즈를 진행한다. [편집자 주]
금융 자산 관리 서비스를 이용하는 과정에서 사업자에게 유리한 사항이 미리 선택된 채 소비자에게 동의를 요구하는 다크패턴 행위가 성행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소비자는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결제처, 상품 카테고리, 가맹점명 등 자신의 소비생활 관련한 정보 제공에 동의하고 있는 것이다.
지난 4월 금융 소비자 결정을 왜곡하거나 침해하는 행위를 금지하는 ‘다크패턴 금지법’이 시행됐지만 주의를 덜 기울이는 소비자 정보를 수집하는 행위는 여전하다.
우선 시중은행 앱에서는 자산관리·마이데이터 연결 과정에서 선택 정보 동의 항목이 모두 미리 체크돼 있다.


우리은행 우리WON뱅킹에서도 ‘[선택] 가맹점명 사업자등록번호 정보 수집·이용’, ‘[선택] 상품구매 카테고리 정보 수집·이용’ 항목이 선택된 상태로 제시된다.
이들 항목은 모두 자산관리 서비스의 소비 분석이나 지출 분류 기능과 연관된 정보다.

신한은행 SOL뱅크 자산 연결 화면에서도 선택 정보 동의 항목이 체크된 상태로 표시됐다. SOL뱅크 화면에는 ‘정확한 내역 확인을 위한 동의(선택)’ 항목 아래 적요 또는 거래메모, 가맹점명 및 사업자등록번호 등 소비생활 관련 정보가 포함된다는 안내가 노출됐다.
여기서 '나중에'와 '동의함' 버튼이 안내되는데 '동의함'에 파란색으로 강조된 표시가 이뤄져있다.
신한은행 관계자는 “신용정보원 가이드에 따라 화면을 구성했고 해당 화면 구성에 대해 금융보안원 컨펌까지 받고 진행한 사항”이라며 “‘동의함’ 버튼을 눈에 띄게 표시한 것은 고객이 알기 쉽게 표현하기 위한 취지고 가이드와 외부 확인을 거쳐 진행한 만큼 문제가 없다고 보고 있다”고 밝혔다.

하나은행 하나원큐 화면에는 은행·카드 정보는 매주, 보험 정보는 4주마다 자동 업데이트된다는 안내와 함께 ‘정확한 내역 확인을 위한 동의(선택)’ 항목이 제시됐다.
해당 항목에는 적요·거래메모, 가맹점명 및 사업자등록번호 등 소비생활 관련 정보가 포함될 수 있다는 설명이 붙었고, ‘어디서 결제했는지 볼게요’ 항목에서는 '다음에'는 회색, '확인' 버튼에는 청녹색 계열의 컬러가 입혀져 있다.
'결제처 정보로 지출 현황을 확인할 수 있다'는 안내에서도 카드 결제 내역 예시가 뜨며 동일하게 하단에 ‘확인’ 버튼에 컬러가 입혀져 있다.
하나은행 관계자는 “금융소비자의 실질적인 선택권과 개인정보 보호가 무엇보다 중요한 만큼 사적인 내용이 포함될 수 있는 계좌 적요 정보 연결 시 본인이 확인하고 선택할 수 있도록 구현했다”고 말했다.
이어 "마이데이터 서비스의 안정적인 연동과 소비자 편의성을 확보하기 위해 구매내역과 결제장소 정보 연결은 가이드라인에 따라 기본 선택 설정을 반영했다”며 “현장의 고객 목소리를 면밀히 모니터링해 오인이나 불편이 없도록 UI·UX 개선 등 보완책을 지속적으로 검토하겠다”고 덧붙였다.

이어 ‘정확한 내역 확인을 위한 동의’ 항목에서 계좌 입·출금처, 거래 메모, 결제처, 구매한 상품 카테고리 정보가 함께 노출됐다. 이 가운데 ‘결제처를 볼게요’와 ‘구매한 상품 카테고리를 볼게요’ 항목은 체크된 상태로 안내된다.

‘내역에서 볼 정보 선택’ 항목 아래에는 ‘출처·메모’, ‘결제처’, ‘상품 카테고리’ 등의 세부 항목이 노출됐고 이 중 ‘결제처’와 ‘상품 카테고리’에 체크 표시가 돼 있다.

◆ 금융업계 “마이데이터 가이드라인 따른 것”…소비자단체·전문가 "명백한 다크패턴"
사업자에게 유리한 사항이 미리 선택된 채 소비자에게 동의를 요구하는 상황에 대해 금융업계는 금융분야 마이데이터 서비스 가이드라인을 준수했다는 입장이다.
업계 관계자들은 '기본 선택으로 설정할 수 있으나 고객이 해당 정보 전송을 원하지 않는 경우 해제할 수 있도록 구성'이라고 명시하고 있다"며 "지난해 6월 19일 시행된 마이데이터 2.0에 맞춰 적용한 사항이라고 입모았다.
해당 선택 항목을 해제해도 필수 항목으로 수집되는 마이데이터 정보를 활용한 자산 조회나 분석 서비스 이용에는 제한이 없다고 설명했다.
KB국민은행 관계자는 “상품 구매 정보와 가맹점명·사업자등록번호 정보는 가이드라인에서 ‘기본 선택으로 설정할 수 있다’고 명시한 항목이라 그대로 따르고 있으며 적요·거래 메모 정보는 같은 문구가 적시돼 있지 않아 기본 체크하지 않고 있다”고 밝혔다.
우리은행 측도 "해당 항목이 가이드라인에 따른 적용 사항이며 고객이 미동의할 때 거래 내역에서 해당 데이터를 제외하고 조회가 가능하다"고 말했다.
업계 관계자는 "다크패턴 가이드라인 적용 여부에 대해 신용 정보원에 문의한 결과 금융소비자보호법에 따른 금융상품 비대면 판매에 적용되는 것으로, 마이데이터 서비스는 적용 대상이 아니라는 답변을 받았다"고 말했다.
토스 측도 결제처·상품 카테고리가 소비·지출 내역을 정확하게 분석해 자산관리·소비 분석 기능을 제공하기 위한 항목이라는 입장이다. 각 항목은 개별적으로 선택·해제할 수 있게 구성돼 있으며 해당 항목을 해제하더라도 자산 조회와 마이데이터 기본 이용 자체에는 제한이 없다고 설명했다.
토스 관계자는 “금융 관계 기관 가이드라인에 따라 설계됐고 사전 적합성 심사도 거쳤기 때문에 다크패턴으로 보기 어렵다”고 밝혔다.
카카오페이 관계자는 “결제처와 상품 카테고리는 자산 서비스 이용 과정에서 사용자에게 필수적으로 필요한 정보로 표준적인 서비스 품질을 누락 없이 제공하기 위해 가이드라인을 준수하며 편의적 최적화 조치를 적용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네이버페이 측도 정보 연결 동의 절차는 당국 가이드라인을 따른 것이며 마이데이터 사업자 대부분이 동일한 방식으로 운영하고 있다는 입장이다.
마이데이터 기반 자산관리 서비스는 여러 금융기관에 흩어진 계좌, 카드, 대출, 투자, 보험 정보를 한 화면에서 확인할 수 있게 해준다. 정확한 자산 분석이나 소비 내역 분류를 위해 거래 메모, 결제처, 상품 카테고리 같은 추가 정보가 필요하다는 점은 금융사들이 내세우는 입장이다.
문제는 동의 받는 방식이다. 소비자가 ‘자산 불러오기’, ‘자산 최신화’, ‘자산관리’ 기능으로 인식하고 진입한 뒤 장기간 정기적 정보 전송과 세부 소비 정보 수집 동의까지 함께 마주하게 되는 구조에서는 제공 정보 범위를 충분히 인식하기 어렵다는 지적이 나온다.
주의를 조금이라도 덜 기울이면 소비자로서는 사전에 미리 체크된 항목을 그대로 동의하기 십상이다.
소비자단체와 전문가들은 ‘필요한 정보를 제공받는 것’과 ‘사전 체크 방식으로 동의 받는 것’은 구분해야 하며 명백한 다크패턴 행위라고 지적한다.
마이데이터 가이드라인이 일부 항목의 ‘기본 선택’ 설정을 허용하고 있더라도 소비자가 선택 정보 제공 여부를 명확히 인지하고 직접 결정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금융위 다크패턴 가이드라인은 ‘특정 옵션 사전선택’을 사업자에게 유리한 선택사항을 미리 선택해 놓고 소비자가 이를 지나치거나 그대로 수용하도록 유도하는 행위로 규정하고 있다.
정지연 한국소비자연맹 사무총장은 “선택 항목을 둔 취지는 소비자에게 선택권을 주기 위한 것인데 그것을 기본값으로 설정해 두면 결국 소비자의 선택을 흐리는 다크패턴에 해당한다”며 “특히 금융은 소비자에게 금전적으로 영향을 미치는 영역인 만큼 더 엄격하게 봐야 한다”고 지적했다.
이어 "특정 기업과 비교해 자체적으로 문제가 없다고 판단하기보다 기본값이 실제 소비자 결정에 영향을 미치는지 금융당국이 직접 들여다볼 필요가 있다"고 덧붙였다.
이정민 한국금융소비자보호재단 연구위원은 "사전 선택이 일률적으로 잘못된 것은 아니다"면서도 "‘선택 동의 항목’에 사전 체크가 적용되는 방식은 별개의 문제"라고 짚었다.
이 연구위원은 “필수 동의 사항은 편익 차원에서 사전 선택을 일정 부분 용인할 여지가 있다”면서도 “필수가 아닌 선택 동의 항목을 사업자가 임의로 사전 체크해 두는 것은 명백한 다크패턴”이라고 강조했다.
이어 “소비자가 사전 체크된 항목을 필수 동의 사항으로 오인할 가능성이 커 의사결정 왜곡으로 이어질 수 있다”며 “마이데이터 동의 시 어떤 혜택이 있는지 명확한 안내 없이 선택 항목만 사전 체크해 두는 방식은 지양해야 한다”고 말했다.
[소비자가만드는신문=이태영 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