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현상이 지속하면 가계 소비가 움츠러들어 내수 부진을 가속하면서 경기를 더욱 악화시키는 부작용이 우려된다. 가계가 빚을 제때 갚지 못해 금융회사가 부실에 빠질 수 있고 기업은 증시에서 자금을 조달할 길이 막히며 투자가 위축되는 등 실물경제를 옥죄게 된다.
전문가들은 금융시장의 불안이 장기화하지 않고 경기가 회복하면 자산 디플레이션이 약화되겠지만 지금은 국내외 경제 여건이 갈수록 나빠지는 만큼 정부의 대응책이 필요하다고 주문했다.
◇ 주가 반토막, 부동산 값 하락, 금리 상승
지난 24일 종합주가지수(코스피지수)는 1,000선이 무너지며 938.75를 기록해 작년 말보다 50.5% 폭락했다. 10개월 사이에 반 토막이 났다. 주식 투자를 통해 자산을 늘리려던 개인들은 바닥 없이 추락하는 증시 앞에서 눈물을 머금고 손실을 감수하며 외국인의 투매에 합류하는 사태까지 벌어지고 있다.
직접 투자보다 안정적인 자산 운용으로 여겨졌던 펀드 또한 예외가 아니다. 내 집이나 자녀의 교육비 마련, 노후 대비를 위한 펀드가 세계 금융위기의 파고에 속절없이 휩쓸리고 있다.
금융감독원과 펀드평가사인 제로인 등에 따르면 이달 10일 기준으로 29개 내집마련장기주택 주식형 펀드의 지난 1년간 평균 수익률은 -33.76%나 됐다. 15개 어린이 펀드는 최근 1년간 33.65%의 손실을 냈다. 302개 개인연금펀드와 퇴직연금펀드의 평가손실액은 지난 13일 기준으로 4천586억 원에 달했다.
주부 이모(37) 씨는 "작년 2월부터 아이들 교육비를 준비하려고 매달 20만 원 이상씩 900만 원가량을 적립식 펀드에 넣었는데 지금 40% 정도의 손실을 보고 있다"며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다"고 하소연했다.
물가가 상승하면서 실질 금리는 제로 수준에 근접해 있다. 8월 예금은행이 적용한 저축성 수신의 평균 금리는 연 5.91%로, 여기에서 같은 달 물가 상승률 5.6%를 뺀 실질 금리는 0.31%에 그쳤다. 이자에 붙은 소득세(세율 15.4%)를 빼면 사실상 제로 금리인 셈이다.
주가가 폭락하고 있어 예금을 뺀다고 해도 투자할 곳을 찾기가 어려운 실정이다. 다만 은행들이 최근 원화 유동성을 확보하려고 연 7%대의 고금리 예금을 경쟁적으로 내놓고 있어 개인으로서는 숨통이 다소 트이고 있다.
'불패'의 신화를 자랑하던 부동산 가격도 무너지고 있다. 부동산 정보업체 부동산114에 따르면 서울 지역의 아파트 매매 가격은 전체 평균을 기준으로 지난 6월 말부터 떨어지기 시작했다.
강남권을 중심으로 이뤄지던 아파트 가격의 하락세는 8월 중순부터 노원.도봉.성북구 등 강북 지역으로 확산됐고 이달 중순부터는 25개 자치구가 모두 하락 대열에 합류했다.
10월 셋째 주 서울의 아파트 값은 0.2% 떨어져 2003년 11월(-0.24%) 이후 하락 폭이 가장 컸다. 올해 1월 초와 비교해 송파구(-6.49%)와 강동구(-6.48%), 강남구(-4.14%), 서초구(-3.29%) 등의 약세가 두드러졌다.
정부가 투기지역을 풀어 간접적으로 주택담보대출 규제를 완화하고 미분양 아파트를 매입하는 대책을 내놓았지만 부동산 경기의 침체를 막기에는 역부족이라는 평가가 나오고 있다.
◇ 자산 디플레 심화 `경제 복병'
자산 디플레이션 현상은 소비 위축으로 이어지며 경기를 급랭시킬 수 있다. 올해 3분기 민간 소비는 작년 동기보다 0.1% 증가하는데 그칠 정도로 이미 바닥권에 있는데 금융시장의 불안이 실물 경제로 번질 경우 감소세로 돌아설 수밖에 없다.
9월 백화점 매출액은 작년 같은 달보다 0.3% 줄어 올 들어 처음으로 마이너스를 기록하는 등 내수 부진이 가시화되고 있다.
경기가 둔화하고 있는 가운데 가구 소득은 제자리이고 대출 금리는 치솟으면서 주택담보대출의 부실을 우려하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주택담보대출의 평균 금리는 작년 8월 연 6.38%에서 올해 8월 7.16%로 12.2% 상승했지만 전국 가구의 2분기 실질 소득은 작년 동기보다 0.3% 증가하는데 머물렀다.
가계 소득에 비해 이자 부담은 눈덩이처럼 불어나고 있어 이를 내버려둘 경우 대출 연체가 늘어나면서 금융회사의 부실이 확대될 수 있다. 또 주택 가격이 급락하면 금융회사가 담보로 잡은 집을 처분해 대출금을 회수하기도 어려워 `한국판 서브프라임(비우량 주택담보대출) 사태'가 올 수 있다는 우려도 있다.
다만 은행들이 대출 만기 연장에 나서고 있고 정부는 금리 인하 유도 정책을 검토하고 있어 극단적인 사태는 오지 않을 것으로 전망된다.
성신여대 강석훈 교수는 "자산 디플레이션의 가장 큰 부작용은 가계 소비의 위축"이라며 "특히 노후를 대비해 저축했거나 투자한 자산의 가격이 많이 내려가면 소비에 부정적 영향을 미칠게 된다"고 말했다.(연합뉴스)
저작권자 © 소비자가 만드는 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