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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범 피격 때 피 묻은 옷 문화재 등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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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범 피격 때 피 묻은 옷 문화재 등록
  • 조창용 기자 csnews@csnews.co.kr
  • 승인 2009.04.10 11:0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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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백범 김구 선생이 피격 당시 입었던 피 묻은 옷등  그의 유물 19점이 문화재로 등록된다.

   문화재청(청장 이건무)은 임시정부 주석을 지낸 독립운동가 김구 선생이 1949년 6월26일 서울 경교장(京橋莊)에서 안두희의 총탄을 맞고 서거할 당시 입었던 혈의(血衣)를 비롯한 유품들을 문화재로 등록 예고했다고 10일 밝혔다.

 
  등록 대상은 혈의를 비롯한 의복류 8종 10점과 편지나 붓글씨에 사용한 인장 3종 5과, 윤봉길의 상해 의거 직전 그와 바꿔 찬 회중시계(1점), 서거 당시 책상 위에 있던 유묵을 비롯한 붓글씨 3점 등이다.

   이 중 혈의는 백범이 흉탄에 쓰러지던 순간에 입었던 의복류로 조끼적삼ㆍ저고리ㆍ조끼ㆍ개량 속고의ㆍ바지ㆍ대님ㆍ양말 및 개량 토시등이다. 혈흔(血痕)과 탄흔(彈痕)이 남아 있다.

   이 의복류들은 지난 1996년 국립문화재연구소에서 보존처리했됐다. 이 과정에서 혈액검사를 통해 백범의 혈액형이 AB형임이 확인됐다.

   인장은 백범이 임시정부 주석으로 활동할 때부터 편지나 붓글씨 등에 사용한 것들이며 이 중 1940년 무렵부터 1945년까지 사용한 '金九之印'(김구지인) 인장은 임시정부 판공실장을 역임한 민필호(閔弼鎬)가 관리하다가 그 후손이 독립기념관에 기증했다.

   '寬和'(관화)ㆍ'金九之印'(김구지인)ㆍ'白凡'(백범)이라는 낙관(落款) 세트는 근대기의 유명한 전각가 김태석이 1946년에 새겼다.  회중시계는 윤봉길이 의거(義擧)를 위해 상해로 떠나는 날 아침에 백범의 시계와 맞바꿔 찬 것으로 윤 의사 유품이면서 백범 유품이기도 하다.

   유묵 '韓美親善平等互助'(한미친선평등호조)는 백범이 1949년 1월에 당시 주한미국대사관 문정관이던 그레고리 헨더슨(1922-1988)에게 써 줬다.

   '愼其獨'(신기독. 홀로 있을 때도 삼가다)과 '思無邪'(사무사. 생각에 그릇됨이 없다)는 백범 서거 당시 책상 위에 두루마리 상태로 놓여있던 것으로 가장자리에 혈흔이 남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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