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하나.신한.우리은행등 시중 은행 지점장들이 죽을 맛이다. 두 다리 뻗고 자는 사람이 드물다. 대다수가 지뢰밭 위에서 외줄타기 하는 기분으로 하루 하루를 살아 가고 있다. 특히 거래 기업 가운데 부도 위기를 맞고 있는 곳이 있거나 덩어리가 큰 연체가 발생하고 있는 곳이 많은 지점장들은 거의 저승 사자를 기다리는 심정으로 살고 있다.
지난 4월 30일 어둠이 채 가시지 않은 새벽 6시30분. 시중 한 은행 지점장들이 서울 본점 회의실로 속속 모여들었다.
영업 담당 상무와 본부장 주재로 영업 부실 지점장들을 닥달하는 회의였다. 회의 분위기는 내내 무겁고 살벌했다. 성과가 미흡한 지점장들은 그 자리에서 심한 질타를 당했다.
시중 은행들이 작년부터 최악의 실적으로 내몰리면서 은행의 '야전 지휘관'인 지점장들의 피말리는 한숨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국민은행, 우리은행, 신한은행 하나은행등 시중 은행들은 6개월마다 지점장 평가를 실시하는등 목을 죄고 있다. 하나은행의 경우 종전 1년에 1번 실시하던 지점장 평가를 최근 2번으로 늘렸다. 은행들은 새벽회의는 물론 심야 회의까지 실시하며 지점장들을 압박하고 있다.
하나은행의 서울 강북지역 모 지점장은 "하루 16시간이 넘는 엄청난 노동 강도에 시달리고 있다. 6시30분 새벽 회의는 물론 밤 9시 야간 회의도 소집되고 있다"고 하소연했다.
사정은 다른 은행들도 마찬가지다. 은행장들이 틈만 나면 지휘 계통을 통해 혹독한 채찍질을 독려하고 있다.실제 실적이 계속 저조한 지점장들은 한직인 조사역으로 발령을 낸다. 퇴직 대기 발령과 다름 없는 자리다.
은행 지점장들이 이처럼 살얼음판을 걷고 있는 것은 은행의 실적 위기 때문.지난 1분기 18개 시중 은행들은 8020억원의 순이익을 냈으나 그 규모가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74.9% 급감했다. 올 상반기 기업 구조조정 과정에서 은행권의 부실채권이 급증할 수있다는 우려도 확산되고 있다.
실제로 지난 3월말 국내 은행의 원화대출 연체율은 1.46%로 작년 3월 말에 비해 0.55%포인트 상승했다. 특히 중소기업대출 연체율은 2.32%로 1.03%포인트 뛴 것으로 나타났다.일부 시중은행의 1분기 실적 흑자전환도 보유주식 매각 등 일회성 이익이 발생한 데 따른 것이라는 분석도 있다.
결국 이같은 시중은행의 위기감이 그대로 지점장들에 대한 압력으로 반영되고 있다는 분석이다.
우리은행 서울 영등포 지역의 한 지점장은 "주로 '깨지는' 이유는 연체율과 부도율의 상승. 미흡한 예금 유치 실적 때문"이라며 "예금.대출 실적이 나쁘거나 연체율이 올라가면 알아서 나가든지 자르든지 하겠다는 식의 살벌한 분위기가 계속되고 있다"고 말했다.
서울 성동구의 한 외환은행 지점장도 "최근 실적 압박강도가 높아지면서 사무실에 있는 지점장들은 거의 없고 모두 대출장사를 하기 위해 여기저기 뛰어다니고 있다"며 "요즘 지점장들 사이에선 '파리목숨'이라는 자조감이 팽배해있다"고 한숨을 쉬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