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비자가 만드는 신문=백진주 기자] “돈 주고 시한 폭탄을 구입해 집안에 설치한 기분입니다"
가전제품 화재.폭발 사고가 잇달아 소비자들이 두려움에 떨고 있다.최근 소비자가 만드는 신문으로는 TV, 청소기, 보일러 등에서 발생한 폭발사고들이 연이어 접수되고 있다. 폭발로인해 집안에 화재가 발생하거나 제품이 망가지는등 피해도 적지 않지만 보상이나 배상을 받기는 '하늘의 별 따기'.
업체들은 '폭발'로인한 브랜드와 제품의 이미지 하락을 우려 ‘소비자 사용 부주의’ ‘전기누전’ 등을 핑계 삼아 제품결함을 극구 부인하고 있다. 업체측이 제품 결함을 인정하지 않을 경우 보상도 묘연해질 수밖에 없다.
사고원인이 가려지지 않을 경우 국립과학수사연구원에 조사를 의뢰하게 되는 데 이 경우 결과확인을 위해 한 달 이상을 기다려야 한다.
하지만 어렵게 제품에서 원인을 찾았다 해도 업체들의 '발빼기'는 여전하다. ‘정품여부’ ‘무상AS기간’등의 규정들이 장애물이 되어 소비자들은 막대한 재산 피해에도 불구하고 넋 놓고 상황을 지켜볼 수밖에 없다.
삼성전자.LG전자.대우일렉등 국내 가전 업체 뿐 아니라 AEG등 다국적 가전업체 제품 화재.폭발 제보가 줄을 잇고 있다. 소비자가 만드는 신문에 접수된 화재.폭발 제보의 일부를 정리해 본다.
▶청소기가 화염방사기?!
용인 죽전동의 김 모 (여.38세)씨는 4년여 전 아토피로 고생하는 딸을 위해 고심 끝에 AEG청소기를 29만원에 구입해 사용해왔다.
김 씨는 지난 4월 중순 청소를 하던 중 “불이 났다”는 딸의 말에 깜짝 놀라 전원이 꼽힌 부엌으로 달려 가보니 청소기 플러그 부분에서 불이 나 검은 연기를 뿜어내고 있었다. 화재 중에도 계속 작동되는 청소기는 마치 화염방사기 같았다.
김 씨의 남편이 급히 차단기를 내리고 플러그를 뺐지만 이미 벽지 일부가 타고 옆에 놓아둔 어학용 카세트의 플러그도 녹아있었다. 딸아이가 빨리 발견하지 못했다면 큰 화재로 번질 뻔한 아찔한 사고였다.
화재사건임을 되짚자 AS센터 책임자에게 책임을 미뤘고 책임자는 ‘사용자 잘못에 의한 고장’이라며 “청소기도 가전제품이니 끌거나 당겨서는 안 된다”는 기막힌 설명을 했다.
김 씨는 구입처인 마트로 연락해 도움을 요청했고 중재를 약속받지만 마트 측 담당자마저 ‘소비자가 플러그 피복이 벗겨진 상태에서 사용했고 화재 전 스파크가 튀었음에도 무시하고 계속 사용해 생긴 사고’라고 업체 측 주장을 그대로 전했다.
김 씨는 “전기제품을 피복이 벗겨진 상태로 쓸 만큼 무지하거나 경제적으로 어렵지 않다. 또 화재 전 청소기 돌아가는 소리가 잠시 불안정하게 들린 부분을 이야기한 게 전부인 데 스파크라니 터무니없는 소리”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중국산 비품이라 보상 NO~
서울 북아현동의 임 모(여.32세)씨는 지난해 7월 조카의 생일을 맞아 4년 전 구입한 파나소닉 디지털 캠코더의 배터리 충전을 했다.
전원을 꽂은 30여분 후 방에서 갑자기 '펑' 하는 소리와 함께 배터리가 폭발, 파편이 이 곳 저곳으로 튀어 방바닥과 침대 등에 불이 붙었다. 가족들이 담요와 수건, 걸레 등을 이용해 바로 불을 꺼 진정이 되는 듯 했지만 곧이어 배터리가 첫 폭발에 비해 더 큰 소리를 내며 폭발해 크게 불이 번졌다.
황급히 불길을 진압했지만 놀란 가족들은 청심환 등 신경안정제를 복용해야 할만큼 충격을 받았다.
다음날 방문한 파나소닉 AS센터 직원은 "배터리에 'For Panasonic'이라고 적힌 것은 정품이 아닌 중국산 비품이기 때문에 보상이 어렵다"는 뜻밖의 안내를 던졌다. 제품을 수거해간 며칠 뒤 직원은 "업체 측이 책임질 문제가 아닌 것 같으니 회수한 제품을 바로 택배로 보내 주겠다"고 전했다.
임 씨는 "브랜드를 믿고 제품을 구매한 것인데 사고가 발생하니까 발뺌하려는 것으로 밖에 안 느껴진다"며 "적절한 조치가 하루빨리 이뤄지길 바란다"고 강조했다.
이에 대해 파나소닉 관계자는 "정품이 아닌 비품에 대해서는 책임이 없다"며 "이 배터리가 어떻게 유통됐는지에 대해서 역추적을 하고 있지만 일일이 다 확인은 어려운 실정"이라고 말했다.
▶TV누전 추정 화재로 하루아침에 잿더미
경남 함안군의 박 모(남.28세)씨의 가족은 지난 2월 중순경 갑작스런 화재로 인해 하마터면 모든 것을 잃어버릴 뻔 한 끔찍한 사고를 겪었다.
사고현장은 부모님 소유의 2층 건물. 1층과 2층 일부가 영업점이고 박 씨 가족은 2층 일부를 주택으로 개조해 생활하고 있다. 화재사고는 전세로 임대를 내준 2층 노래방에서 발생했다. 다행히 인명 피해는 없었지만 노래방 내부는 모두 불타 재만 남은 상태.
조사 나온 경찰 관계자는 노래방에 설치된 오래된 대우TV(제조일자 1997년)중 2대가 폭발해 화재가 발생한 것 같다"고 말해 즉각 대우일렉트로닉스로 문의했다.
박 씨는 “화재로 건물 일부가 완전히 무너져 버린 상태인데 파산을 이유로 아무 책임도 질 수 없다는게 말이 되느냐. 오래된 대우전자 제품은 모두 폐기처분해야 하는 것 아니냐”며 분개했다.
결국 노래방은 아무런 사후처리도 못한 채 잿더미 상태로 방치되어 있다.
이에 대해 대우 일렉트로닉스 관계자는 “‘화재발생증명원’에는 작동기기에서 연기가 난 것 같다는 추정만 있을 뿐 ‘전기누전’등의 구체적인 화재원인에 대해 밝혀진 것이 없다”며 “대우전자가 2002년 10월 파산했고 대우일렉트로닉스와는 엄연히 다른 회사여서 화재 보상에대한 책임이 없다”고 설명했다.
▶"보일러 폭발로 주변 박살"
서울 황학동의 유 모(남.32)씨는 지난 2월 16일 새벽 경기도 고양시에 거주하는 부모님으로부터 "집에서 보일러가 수차례 '펑'소리를 내며 폭발, 화재가 발생했다"는 전화를 받고 깜짝 놀랐다. 당황한 유 씨는 우선 119에 신고를 하고 곧바로 부모님이 거주하시는 집으로 향했다.
유 씨는 당연히 피해 보상처리를 믿고 AS센터로 연락했지만 린나이 측은 "제품에 전문지식도 없는 소방서 결과를 믿을 수 없다"며 "국립과학수사연구원에서도 같은 결과가 나오지 않는 이상 보상이 힘들다"고 통보했다.
유 씨는 결국 지역 지구대를 통해 국립과학수사연구원에 화재 원인 감식을 의뢰를 했지만 최소 한 달 이상은 걸려 그 때까지는 아무런 보상을 받지 못하게 된 상황이라고 하소연했다.
유 씨는 "작년 11월 보일러에서 이상한 소리가 나 AS를 받았을 당시 아무 이상이 없다고 했는데 이렇게 폭발하다니... 과연 당시에 제대로 점검을 했는지 의문스럽다"며 의구심을 표했다.
이에 대해 린나이 관계자는 “만약 보일러에서 화재가 발생했다면, 윗부분에 그을림이 있어야 하는데 아래쪽에만 그을림이 있었다. 화재 원인이 보일러가 아니고 보일러 아래에 있는 전선이 누전되면서 발생한 것 같다”고 답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