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드라마로 대중에게 익숙한 임원희, 이종혁의 6년 만의 연극 복귀작으로 눈길을 끌었던 연극 ‘레인맨’이 지난 2일부터 김성기, 김영민이라는 새로운 캐스트로 앙코르 공연에 돌입했다. 잘 알려져 있듯이 ‘레인맨’은 더스틴 호프만, 톰 크루즈 주연의 동명 영화를 원작으로 한 작품으로, 자폐증을 앓는 천재 레이몬드와 냉소적인 인터넷 주식중개인 찰리가 형제애를 깨달아가는 과정을 그린 휴먼 드라마다.
뮤지컬에서 코믹한 연기에 관한 한 타의추종을 불허하는 김성기는 ‘레인맨’을 통해 연기 경력 20년 만에 첫 정극(正極) 연기에 도전했다. 뮤지컬 무대에서 웃음을 주는 연기로 사랑받는 김성기이지만 2005년 뮤지컬 ‘맨 오브 라만차’에서 보여주었듯 그는 관객을 울리는데도 일가견이 있는 배우다.
여기에 연극, 영화, 드라마를 오가며 맹활약하고 있는 김영민이 가세했다. 지난해 드라마 ‘베토벤 바이러스’에서 강마에의 라이벌 정명환으로 분해 많은 사랑을 받았던 그가 ‘줄리에게 박수를’ 이후 1년여 만에 연극 무대에 돌아온 것. 김성기와 김영민. 앞선 캐스트만큼이나 기대가 되는 조합이 아닐 수 없다.

김성기는 암기 천재인 레이몬드를 연기하기 위해 스트레스가 무척 심했다고. 자다가도 일어나 원주율을 외우며 도를 닦는 심정으로 연습에 임했다. 또 작품을 위해 17년 동안 길러 왔던 수염도 밀고 덥수룩한 머리도 짧게 정리했다. 흡사 영화 속 더스틴 호프만을 보는 듯하다. 삐딱한 고개, 불안한 눈빛, 소심한 걸음걸이……. 웃기는 배우 김성기는 없다. 무대 위에 선 그는 오롯이 레이몬드 그 자체였다.
김영민의 눈빛 연기도 일품이다. 믿는 것은 돈과 자신뿐이던 찰리의 차가운 눈빛이 형 레이몬드로 인해 따스하게 변해가는 과정을 지켜보는 것은 ‘레인맨’의 관람 포인트 중 하나.
‘레인맨’ 앙코르 공연은 드라마가 보다 강화된 느낌이다. 앞선 캐스트가 캐릭터의 특징을 극명하게 보여주었다면 뉴 캐스트는 형제간의 관계 변화가 돋보인다.
영화에서 형제가 가까워지는 결정적 계기가 되었던 카지노씬은 축구공 주고받기로 대체되었다. 공을 떨어뜨리지 않고 20번을 리프팅하는데, 성공할 때까지 계속해야 한다. 하나, 둘 셋, 넷……. 실수로 공을 떨어뜨릴 때마다 객석에서도 아쉬움의 탄식이 흘러나온다. 두 사람을 응원하면서 관객 역시 형제와 훨씬 가까워지는 느낌을 받는다.
수시로 객석에 던져지는 조명 역시 무대와 객석의 일체감에 한 몫 하고 있다. 그런 점에서 때때로 몰입을 방해하는 회전 무대의 소음은 여전히 아쉬운 부분이다.
결국 ‘레인맨’은 ‘소통’의 이야기가 아닐까 싶다. 자폐증으로 혼자만의 세상에 갇혀 살던 레이몬드, 아버지와 관계 단절로 사람을 믿지 못하는 찰리. 레이몬드는 불길한 징조 리스트, 치명적 상해 리스트 등 각종 리스트를 만들어 자신을 보호하고, 찰리는 돈을 방어 수단으로 삼는다. 그런 두 사람이 만나 오해를 풀고 마음의 문을 열면서 세상에 화해의 손길을 내민다. 서로가 서로에게 세상과 소통하게 하는 징검다리가 되는 셈.
소통의 부재가 시대의 화두로 떠오른 요즘, ‘레인맨’이 더욱 각별하게 다가오는 이유다.
[뉴스테이지=조수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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