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보하기 
기획 & 캠페인
[리뷰] 야메의사의 좌우충돌 환자 찾아 삼만 리
상태바
[리뷰] 야메의사의 좌우충돌 환자 찾아 삼만 리
연극 ‘야메의사’
  • 뉴스관리자 csnews@csnews.co.kr
  • 승인 2009.09.14 11:49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극단 백수 광부의 ‘야메의사’는 프란츠 카프카의 소설 ‘시골의사’를 재구성한 작품으로, 우리 사회의 어두운 면, 숨겨진 부분들을 무대 위에 터트린다. 관객이 직면하는 연극 속 현실의 문제들은 막연한 것이 아닌 몇 주 전, 몇 달 전 신문에서 봤던 사건들이다. 신문 속의 활자들이 무대 위에서 광경이 되어 펼쳐진다. 생각보다 날카롭고 쓰린 현실은 피부에 느껴질 정도로 가까운 곳에서 퍼덕대고 있었다. 연극 ‘야메의사’가 건네는 현실을 덥석 베어 물고도 아프거나 눈물짓지 않아도 되는 이유는 도처의 코믹적인 요소들이 소화제의 작용을 하기 때문이다.

- 이상한 나라의 ‘야메의사’

이상한 나라의 엘리스가 아니라 이상한 나라의 ‘야메의사‘다. 환자를 찾기 위한 야메의사의 기나긴 여정은 끊임없는 공간전환을 요구한다. 첫 장면과 마지막 장면의 포장마차와 길거리, 화장실, 쓰레기장, 영화관, 시베리아 벌판 등 암전이 될 때마다 주인공은 새로운 공간에 도착해 있다. 주인공의 행로는 그의 의사와는 전혀 상관없는 것이다. 기묘한 질서를 가진 공간에서 주인공은 불청객 같은 존재다.

또한 주인공은 끊임없는 만남을 계속한다. 군중들, 영화관의 사람들, 할머니들, 쓰레기봉투안의 여자아이, 도끼를 든 중절모의 사내, 크레온과 안티고네등이 그들이다. 그들과의 만남은 순간적일 뿐, 주인공은 결코 그들과 소통하거나 이해의 순간을 갖지 못한다. 다만 당연하다는 듯 행동하는 것은 그들이고 난감하고 당황하는 쪽은 언제나 주인공이다. 엘리스가 경험한 어지럽고 뒤틀린 세계가 토끼 굴에서 나온 그녀를 성장하게 했다면, 야메의사가 경험한 환상적이고 부조리한 세계는 포장마차로 돌아왔음에도 계속 되기에 그는 멈추지 않는 악순환의 고리 속에 있다.

- 야메의사, 사회를 구해줘!

주인공인 야메의사는 별다른 삶의 의욕도 없이 아내의 포장마차에서 술이나 퍼마시고 진상을 부리는 사회의 잉여적 존재다. 그가 가진 유일한 기술도 ‘야메’라는 이름을 지닌 가짜이다. 그의 의학적 지식은 술자리의 안주거리나 아주 가끔씩 그를 호출하는 사람들을 달래주기 위해서 쓰일 뿐이다. 연극 러닝타임 내내 그의 행적을 따라가는 관객이 질리거나 짜증나지 않는 것은 그가 결코 ‘밉지 않은’ 밉상 캐릭터이기 때문이다. 맹한 표정으로 ‘나 야메야’‘집에 갈래’ 등 난처한 상황에 당황하여 내뱉는 솔직한 발화들에 웃음이 터진다. 사회의 잉여자, 혹은 소외자로 보이는 주인공을 재촉하듯 울리던 호출의 출처는 의외로 상처 입은 사회 그 자신이다. 그것이 거짓말이든 사기든 야메든 어떠한 임시방편책으로도 사회의 커다랗고 깊은 상처를 치료하기엔 역부족이다. 그래서 야메의사의 말들은 공허하게 흩어지고, 그는 더없이 무력해진다.

결국 주인공은 아내의 포장마차라는 처음의 공간으로 돌아오지만 그 짧은 순간에 모든 것이 바뀌어 있다. 자신과 같은 곳에 살던 포장마차 손님이 아내의 남편이 되어 있고, 아내는 임신 중이다. 그는 포장마차 안에서도 자신의 설 자리를 잃은, 사회에서 튕겨 나가버린 존재가 돼버렸다. 누적된 소외와 박탈의 감정들이 그의 얼굴에 차오르는 마지막 장면에서, 사회 부조리의 무한한 악순환과 막다른 골목이 오버랩 된다. 결국 사회의 부조리는 개인에게로 파고들어 개인 안에 부조리를 낳는다.

- 가장 가까이에 있는 현실을 고발하다

포장마차를 시작점과 도착점으로 떠나고도 돌아와야 하는 구성방식이 막다른 골목 같은 사회 현실을 암시한다면, 포장마차 밖의 좌우충돌 여행기는 기묘하고 뒤틀린 사회의 구체적인 모습들을 보여준다. 연극 ‘야메의사’의 설득력은 이 모습들을 올해의 여러 사회적 이슈들에 연결시킬 수 있다는 데 있다. 사회의 부조리함이야 늘 존재하는 저편의 문제 같은 느낌이 크지만 우리가 경험한 사건들은 피부로 느낄 수 있는 문제기에 현실감이 있다. 화장실을 지키는 우산 가진 할머니는 조․중․동과 진중권의 싸움을, 시베리아에서 방황하는 5구의 시체는 용산참사의 희생자들을 연상시킨다. 그런가 하면 촛불을 든 시민들과 전경들이 대치하는 장면은 보이는 그대로 촛불시위고, 영화관에서 무턱내고 소리 지르는 한남자의 ‘미워해라! 부디 원망해라!’는 고(故)노무현 대통령 유서의 패러디다.

연극 ‘야메의사’는 쓰디쓴 현실을 맛본 관객에게 어떤 돌파구도 희망도 제시하지 않는다. 그렇다고 관객에게 어떤 행동을 촉구하는 것도 아니다. 야메의사가 겪었던 방랑기처럼 우리도 그냥 기묘하고 부조리한 현실을 걸어가고 있는 것일 뿐이다. 하지만 관객으로서 연극 ‘야메의사’가 내포하는 진실들을 알아내려고 애를 쓰다보면 자신도 모르게 올해 벌어졌던 일들에 대해 한번쯤 다시 생각해보게 되지 않을까. 무관심 속에 잊히고 사라지는 여러 가지 일들이 있다. 조금의 관심과 이야기하려는 노력으로도 변화가 일어날 수 있다. 연극 ‘야메의사’도 그러한 관심과 노력의 한 가지 예이지 않을까한다. 

[뉴스테이지=강민경 기자]

주요기사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