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통춤으로 이룬 액션블랙버스터’라는 카피에 전혀 손색없는 무대를 선사했던 ‘축제의 땅’의 ‘왕의 춤’은 그야말로 노름마치들의 향연이였다. 이번 공연에는 전통공연 연출가 진옥섭을 비롯해 인간문화재 하용부와 채상소고춤 명수 김운태, 이매방류의 승무와 살풀이춤 이수자 진유림, 봉산탈춤의 백미인 ‘노장춤’과 ‘첫목춤’의 명수 박영수 등이 출연, 무대를 신명으로 몰아갔다.
객석 뒤로부터 상복을 입은 이들이 목청껏 노래하며 차례대로 무대로 들어선다. 이윽고 굿이 시작되고, 아낙들은 파란 천위에 처용의 얼굴을 몸짓으로 그려낸다. 이어지는 촌장의 춤사위는 북의 장단과 함께 끊어질 듯 휘어 감긴다. 나아갈 듯 나아가지 않는 발끝에서부터 휘몰아치는 발끝의 경쾌함까지 대가의 노련함이 전해진다. 모든 것을 훌훌 털어버리듯 휘적휘적 거니는 발걸음은 중력의 무게를 잊은 듯하다.
뒤이어 곤룡포를 입은 연산이 등장하고, 사약을 받고 쓰러지는 폐비 윤씨를 보고는 통제할 수 없는 광기에 휩싸인다. 여인들이 받쳐 든 하얀 천 자락에서 헤어날 듯 헤어 나오지 못하는 연산은 이내 흰 천을 두 동강 내버리고, 월도(月刀)를 찾아 복수를 시작한다. 여인들의 손사위에 걸쳐진 까만 옷과 갓의 여백을 쳐내며 스쳐지나가는 월도의 번뜩임은 연산의 광기를 한층 배가시킨다.
이러한 왕에게 직언하는 풍무는 죽을 위험에 처하나, 녹수의 만류로 죽음을 담보로 한 춤사위를 풀어낸다. 점점 빨라지는 소고의 손놀림과 상모돌리기는 관객들의 입을 절로 벌어지게 한다. 넘어질 듯 솟구쳐 오르는 춤사위와 멈출 줄 모르고 돌아가는 상모의 꼬리는 명수라는 말을 실감케 한다. 그의 춤사위는 굿판을 신명의 저 끝까지 몰고 간다.
춤의 기량으로 죽을 위험에서 벗어난 풍무에 이어 녹수의 섬세한 춤사위가 이어진다. 손에 휘감기듯 벗어나는 너울의 흐름은 애절한 춤사위와 함께 어우러진다. 극도로 절제된 몸짓과 발끝의 움직임이 점점 열리고, 이내 쏟아지는 북소리의 울림은 저 끝까지 몰고 간 신명을 한껏 달아오르게 한다.
마침내 등장하는 판굿의 춤사위는 달아오를 대로 오른 신명을 저 높이 솟구쳐 올린다. 흥으로 잔뜩 차오른 관객들은 무대를 가득 메운 군무 단원들의 춤사위에 절로 추임새를 연발한다. 관객들의 박수는 어느덧 악단의 노랫가락과 어우러져 굿판의 신명을 더한다. 혼연일체, 무아지경의 판굿은 이내 신명으로 승화된다.
연이은 관객들의 박수에 춤사위는 계속해서 이어졌다. 익을 대로 농익은 굿판은 신명의 자태를 고스란히 전했다. 신명의 열기가 미처 사그라지지 않았던 무대를 뒤로 한 채 발걸음을 돌리려던 찰나, “안무보다는 명무를, 작곡보다는 명곡을, 연극보다는 묵극을 선택해 전통의 ‘있었던 그대로의 힘’을 위력적으로 활용하고자 했다”는 진옥섭 연출가의 말이 불현듯 떠올랐다.
[뉴스테이지=박소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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