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비자가만드는신문=정기수 기자] 안정성 위주의 보수적인 경영으로 일관해온 일동제약(대표 이정치.설성화)이 성장동력 부재로 골머리를 앓고 있다.
대규모 투자가 수반되는 신약개발보다는 도입신약, 제네릭, 일반의약품 등에 의존하는 보수적인 사업 구조를 유지해왔지만, 기존 사업이 성장성에 한계를 드러내며 사업 전망에 빨간 불이 켜진 상태다.
특히 경영권 분쟁이 일단락되며 지난 6월 이금기 회장(첫번째 사진)이 일동제약 경영 일선에서 물러났지만, 현재 2인 대표 체계를 구축하고 있는 이정치 사장과 설성화 사장 역시 이 회장을 수십 년간 보좌하며 보수적인 경영체계를 함께 구축해 온 CEO들이어서 공격적인 경영을 펼치기에는 어렵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일동제약의 위기는 최근의 실적부진으로 나타나고 있다.
올해 4월부터 12월 결산법으로 전환한 일동제약이 지난 7월 28일 공시를 통해 밝힌 올해 1분기(2010년 4월~6월) 매출은 760억원으로 전년 동기대비 8.15% 증가한 수치지만, 전분기(2009년 4분기, 2010년 1월~3월)보다는 11.52% 감소한 것으로 나타났다.
영업이익은 59억7천만원으로 전년 동기 대비 1.39% 증가했고, 지난 4분기 영업이익 52억원보다는 14.52% 늘어났다.
하지만 지난 2009년 일동제약의 전체 영업이익이 379억원이었던 점을 감안하면, 올 1분기 실적은 실망스러운 수준이다.
또 올 1분기 당기순이익은 38억원으로 전년 같은 기간보다 11.59% 줄었으며, 4분기와 비교하면 무려 62.62%나 감소해 일동제약 임직원과 투자자들을 긴장시키고 있다.
■ 식약청 승인 신약 한 품목도 없는 '무늬만 제약사'
문제는 이 같은 실적 악화가 일시적인 영업부진이라기 보다는 구조적인 한계를 드러낸 것이라는 우려가 일고 있다는 점이다.
일동제약은 현재 ‘아로나민’으로 국내 종합비타민제 시장에서 부동의 1위를 달리고 있다. ‘아로나민’의 지난해 매출은 329억원으로 일동제약 전체매출의 10.4%를 차지한다.
또 국내 최초의 유산균제 비오비타와 위·십이지장궤양치료제 큐란,뇌순환대사개선제 사미온,항생제 후루마린,당뇨치료제 파스틱 등 시장을 주도하는 전문의약품을 다수 보유하고 있다.
하지만 대부분 외국에서 도입한 약물이거나 타사 신약을 모방한 제네릭 약품이다. ‘비오비타’의 경우는 자체 개발했지만, 식약청에서 국산신약으로 승인받은 품목은 아니다.
일동제약의 지난해 2분기 누계 매출액은 1495억원이다.
이 가운데 주력 품목인 ‘후루마린’(항생제, 124억), ‘사미온’(뇌순환대사개선제, 88억), ‘후로목스’(항생제, 30억), ‘파스틱’(당뇨병치료제, 33억), ‘큐란’(위궤양치료제, 132억), ‘라비에트’(소화성궤양용제, 37억), ‘비오비타’(정장제, 35억), ‘싸이신’(항생제, 35억), ‘로자탐’(고혈압치료제, 29억)의 매출이 36.32%(543억원)에 달한다.
이 같은 사정은 올해도 크게 다르지 않다. 최근 신한금융투자에 따르면 일동제약은 올 1분기 ‘큐란’, ‘아로나민’ 등 주력 품목의 호조와 ‘라비에트’와 ‘로자탐’등 신규 제네릭 품목효과로 전문의약품 부문은 전년 동기 대비 8.8% 증가한 570억원을 기록했으며, 일반의약품 부문은 전년 동기 대비 11.6% 증가한 146억원의 매출을 올렸다.
국내 상위권 제약사들이 국산 신약을 개발해 매출에 기여하고 있는 것과 달리, 일동제약은 도입신약이나 복제약으로 처방약 시장을 방어해 오고 있는 셈이다.
■ 보수경영 한계.."성장동력이 없네"
일동제약은 특히 미래를 위한 투자에 인색하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실제로 일동제약은 식약청 승인 신약을 단 한 품목도 갖고 있지 않다. 제네릭과 일반의약품, 타사 수입품목 등에 의존하는 보수적 사업 구조가 무너질 경우 이를 받쳐줄 성장동력이 전무하다는 이야기다.
이에 대해 한 제약업계 관계자는 “일동제약이 전문약 시장의 내공을 쌓지 못하고 있는 것은 무엇보다 보수적인 기업문화가 가장 큰 걸림돌”이라며 “대부분의 제약회사들이 의약분업과 동시에 자체 처방약 개발에 주력할 때 일동제약은 여전히 비타민제 일반의약품인 ‘아로나민’에 대한 미련을 버리지 못하는 것 같다”고 설명했다.
이어 “기존의 타사 도입신약이나 제네릭에 대한 의존도를 탈피해 신약 등 새로운 제품개발로 변화하는 제약환경을 따라잡지 못하면 상위권을 유지하기 어려울 것”이라고 지적했다.
제약업계에서는 일동제약의 보수적인 경영풍토를 CEO의 장기집권에서 비롯된 부작용으로 보고 있다.
1960년 일동제약에 입사해 막강한 실권을 행사해 온 이금기 일동제약 회장은 올해 6월에야 경영 일선에서 물러났다. 이 회장은 물러나면서 “일동제약이 면모를 일신해 새로운 도약의 기틀을 마련하기 위해서는 나의 용퇴가 필요했다”며 일동제약이 타성에 젖은 보수경영에 빠져 있음을 자인하기도 했다.
보수적으로 회사를 운영해왔던 이 회장의 퇴진으로 일동제약이 향후 신약 개발과 같은 핵심사업 추진에 보다 적극적으로 나설 수도 있는 풍토가 마련되는 듯했지만, 그 이후 별 다른 변화는 보이지 않고 있다.이 회장이 물러난 뒤 일동제약은 기존 이금기 대표이사 회장, 이정치 대표이사 사장, 설성화 대표이사 사장 ‘3인 체제’에서 이정치(좌측 사진 왼쪽), 설성화 대표이사 사장의 ‘2인 체제’로 운영되고 있다.
문제는 이정치 사장과 설성화 사장이 각각 1967년과 1968년에 입사한 일동맨으로 이금기 회장과 오랜동안 손발을 맞춰온 인물들이라는 점이다.
또 주력제품의 노후화와 이에 따른 신규품목으로 돌파구가 필요한 시점에서 '이금기 체제'를 대표하는 CEO가 회사를 이끌고 있는 실정이다.
일동제약 안팎에서는 일동제약이 제약사로서 위기국면에 접어들었다는 경고가 계속 나오고 있다.
심지어 지난해 6월 정기주주총회에서 일동제약의 2대 주주인 안희태 씨는 “신약개발 프로젝트조차 없는 일동제약은 변해야 한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상위 제약사 중 드물게 신약개발 경험이 없는 일동제약이 변화무쌍한 제약환경에 적응하지 못하고 있다는 반증이다.
한 제약사 관계자는 “일동제약은 주력제품의 노후화와 자체개발 신약의 부재로 미래 성장 동력을 파악하기 힘들다”며 “경영진의 보수적인 분위기가 공격적인 경영을 가로막고 현실안주적인 성향을 띄고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