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비자가 만드는 신문/컨슈머파이낸스=임민희 기자] 최근 은행권에서 부실경영과 부동산 프로젝트파이낸싱(PF) 대출 비리 등의 금융사고가 발생해 금융당국으로부터 중징계를 받는 일이 속출하면서 은행 내부의 감사시스템이 허술한 게 아니냐는 지적이 일고 있다.
또한 대형 사건이나 비리가 적발된 금융회사의 경영진을 징계할 때 유독 감사위원 등에 대해선 솜방망이 징계에 그쳐 문제가 되고 있다.
다른 경영진 처벌에 앞서 부실감사 책임부터 먼저 물어야 하는데 그게 안되고 있는 것이다.
이런 가운데 주요 금융권 감사위원중 60%이상이 금융당국 또는 감사원 출신이라는 점에서 감독원이 '제식구 감싸기'를 하는 게 아니냐는 지적이 일고 있다.
금융권에 따르면 국민은행(은행장 민병덕)과 우리은행(은행장 이종휘), 신한은행(은행장 이백순), 경남은행(은행장 문동성) 등 주요 은행권의 전․현직 임직원들의 경영부실과 비리관련 문제는 이미 내부 감사를 통해 밝혀진 사항이지만 당시에는 파장을 우려해 덮었다가 신․구 경영진 교체와 내부권력간 다툼, 내부고발 등을 통해 외부로 공개된 뒤에나 뒤늦게 금융감독원(원장 김종창)이 조사에 착수하는 경우가 많다.
일각에서는 감독당국이 은행권의 비리와 관련해 내부 자체감사에 의존한 나머지 감시․감독을 소홀히 한 게 아니냐는 지적이 일고 있다.
특히, 은행권에 대한 제재시 '감사인력'에 대한 징계가 솜방망이에 그치고 있다는 점에서 금융회사에 포진해 있는 상당수의 감사위원이 감사원과 금융위원회, 금융감독원 출신이라는 점 때문에 사고 방지 책임이 큰 감사위원들에 대해 지나치게 관대한 대접을 해 주고 있는 게아니냐는 의혹이 제기되고 있다.
은행권 비리 속출, 내부감사는 형식?
은행권의 부실경영에 따른 임직원 징계사례는 강정원 전 국민은행장과 황영기 전 우리금융지주 회장 사례에서 찾아볼 수 있다. 국민은행은 지난 8월 19일 금감원 제재심의위원회에서 강정원 전 행장을 비롯한 은행 전․현직 임직원 88명이 무더기 징계를 받았다.
금감원은 종합검사 결과를 토대로 강 전 행장이 카자흐스탄 센터크레디트은행(BCC) 지분 매입 과정에서 4천억원, 10억 달러 규모의 커버드본드 발행 과정에서 1천300억원 등 모두 5천300억원의 손실이 발생했다며 ‘문책경고’ 상당의 중징계를 내렸다.
황영기 전 우리금융지주 회장 역시 우리은행장 재직시절 파생상품 투자 등으로 약 1조원 이상의 대규모 손실을 낸 데 대해 대주주인 예금보험공사로부터 직무정지 상당의 중징계를 받은 바 있다.
최근에는 부동산 PF대출 비리 등 금융사고로 우리은행과 경남은행이 금감원과 사법당국의 집중 조사를 받았다.
우리은행은 지난해 6월 금감원의 정기검사에서 우리은행 신탁사업단 직원들이 여신협의회를 열지 않고 이면계약으로 4조2천335억원의 지급보증을 서 1천947억원의 부실을 초래한 사실이 적발됐다.
금감원은 관련 임직원들을 중징계하고 담당 팀장 2명을 수재 및 횡령 등 개인비리 혐의로 경찰에 고발했다. 또 이에 경찰청 특수수사과는 지난 7월 23일 우리은행 본점을 압수수색했다.
경남은행의 경우 4천400억원의 PF대출 비리가 발생한 것과 관련, 지난 9월 16일 금감원으로부터 문동성 행장은 문책경고를, 은행은 영업일부 정지 이상의 중징계를 받았다.
금융사의 비리는 간혹 내부권력간 다툼으로 인해 드러나기도 했다. 지난 9월 2일 신한은행이 전임 행장인 신상훈 신한금융지주 사장을 배임 및 횡령혐의로 검찰에 고소하면서 첨예한 갈등을 빚고 있다. '신한금융 내분사태'는 급기야 양측간의 폭로전으로 이어졌다.
현재 검찰은 신 사장 비리 의혹과 관련해 관계자 소환 조사 등을 진행 중이며 라응찬 신한금융지주 회장 ‘차명계좌’ 의혹에 대한 수사도 벌이고 있다.
은행권, 감사원․금감원 출신 대거 포진
은행권의 내부비리는 언론에 자체적으로 공표하거나 금융당국의 종합검사에서 밝혀지기 전까지는 한낱 금융가에 나도는 풍문에 불과할 뿐이다.
보통 은행권의 감사위원은 1명의 상근이사와 3명의 사외이사로 구성되어 있다. 세부적으로 보면 최고경영자(CEO) 등 경영진을 감시하는 경영감사부와 현장업무를 감시하는 영업감사부로 나뉜다.
현재 은행권의 상근 감사위원으로는 전직 감사원이나 금융위, 금감원 출신이 대다수 포진하고 있다. 특히, 시중은행들의 경우 상근감사위원 대부분이 금감원 출신이며 보험과 증권까지 합하면 전체 감사위원중 60% 이상이 금감원 출신인 것으로 드러났다.
일례로 국민은행의 상근감사 위원은 정용화 씨로 금감원 검사총괄국장과 은행담당 부원장보 출신이며 우리은행 조현명 상근감사위원은 감사원 제1사무차장 출신이다.
금감원 등의 출신 인사들이 금융기관의 감사로 임용되는 사례가 늘면서 이를 감시해야할 금융당국이 '전관예우' 차원에서 금융회사들의 비리를 눈감아 주거나 축소하는 등의 문제가 발생하고 있다는 우려가 적지 않았다.
금융사들이 앞 다퉈 금융당국의 인사들을 모셔가는 것 역시 겉으로는 '전문성'을 내세우지만 이러한 '바람막이 역할'을 바라기 때문이란 지적이 나오고 있다.
금융당국과 은행권에서는 이를 부인하고 있지만 최근 드러난 금융사들의 비리 문제와 관련, 징계가 당초보다 축소되고 은행권 감사인력에 대해서도 별다른 제재가 이뤄지지 않고 있다는 점은 이를 방증하고 있다.
금감원․은행 "내부감사 시스템 문제없어"..실상은?
금감원 제재심의위원회 황동하 팀장은 "각 은행별로 자체 감사시스템을 통해 경영진 등을 상시적으로 감시․견제하고 있다"며 "정기검사 등에서 사안별로 면밀히 살펴 감사위원이나 감사실직원에 문제가 있다면 적절한 징계를 취하고 있다"고 의혹을 일축했다.
황 팀장은 국민은행에 대한 징계 내용에 감사진에 대한 제재가 포함됐느냐는 지적에 대해 “관련업무를 맡았던 감사직원도 포함돼 있다”고 말했지만 구체적인 범위와 대상이 누구인지에 대해서는 밝히지 않았다.
우리은행 관계자는 "감사위원은 경영진을 견제하는 동시에 상호협력하는 관계로서 일상적인 감사업무를 수행하고 있다"며 "내부적으로 검사시스템이 잘 구축돼있어 내부 직원비리 등을 99% 이상 적발하고 있고 금감원 조사에서도 그 이상의 내용이 나오는 경우는 드물다"고 말했다.
하지만 은행 내부시스템에서 적발된 비리들이 모두 금감원 조사나 검찰 수사로 이어지는 것은 아니라는 점은 인정했다.
한 시중은행 관계자는 "은행에서 볼 때는 심각한 비리문제로 보기 어려워 넘어갔는데 이후 사회적 분위기나 입장변화 등으로 크게 이슈화 되는 사례가 많다"며 "신한금융지주사태 역시 이미 내부고발과 외부진정 등으로 수사당국이 내사에 들어갔다가 무혐의 처리한 사안인데 최근에서야 불거진 점은 바로 이러한 이유 때문이다"고 말했다.
금융당국은 모든 은행의 경영에 일일이 간섭할 경우 '관치’ 우려와 인력문제가 발생할 수 있다는 점에서 금융권 자체감사에 맡기는 경우가 많을 수 밖에 없다는 입장이다.
그러나 금융권의 감사위원자리가 금감원 등의 출신으로 채워지고 비리를 안고 있는 금융사와 임직원, 감사위원들에 대한 적절한 징계가 취해지지 않고 있는 상황에서 '제 식구 봐주기' 의혹은 더욱 증폭될 수 밖에 없는 상황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