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비자가 만드는 신문=윤주애 기자] 삼진제약(대표 이성우)이 국내 두통약 1위인 '게보린'에 대한 안전성 논란으로 홍역을 치르고 있다.
게보린의 주성분인 이소프로필안티피린(IPA)은 의식장애 등 치명적인 부작용을 일으킨다는 이유로 일부 국가에서 판매금지된 물질이다. 반면, 국내에서는 IPA제제가 일반의약품으로 판매되고 있어 문제가 심각하다는 지적이다.소비자들이 '게보린'의 안전성 실험대상이냐는 원성까지 나오고 있다.식품의약품안전청(식약청)이 소비자들의 이 같은 불안은 무시해 왔다는 비판까지 쏟아지고 있다.
이 문제는 최근 국정감사로 번져 의원들로부터 따가운 질타를 받았고, 급기야 노연홍 식품의약품안전청 청장이 "IPA제제의 안전성을 재검토하겠다"는 발언을 내놓기도 했다.
이로 인해 게보린을 주력으로 하는 삼진제약은 주가가 곤두박질 치는 등 위기를 맞고 있지만, 정작 게보린에서 IPA성분을 빼겠다는 움직임은 전혀 보이지 않고 있어 그 배경에 의문이 제기되고 있다.
건강사회를 위한 약사회(이하 건약)는 2008년부터 해외에서는 시판을 금지한 성분이 국내에서는 소비자들이 손쉽게 구입할 수 있는 일반의약품으로 판매되고 문제점을 지적했다. 건약에 따르면 게보린 등 이소프로필안티피린(IPA) 계열의 약물은 골수억제작용에 의한 과립구감소증과 재생불량성빈혈 등의 혈액질환과 의식장애, 혼수 등의 부작용이 나타날 수 있다고 한다.
독일의 한 연구자료에 따르면 이러한 부작용이 나타나는 양상은 IPA제제와 이미 퇴출된 약물들 사이에 비슷한 비율로 보고됐다는 것. 오히려 심각한 부작용을 나타내는 확률은 IPA제제를 복용한 환자들에게서 더 높게 나타났다고 알려져 있다. 특히 의식장애 과정은 기면, 혼수, 경련의 순서로 나타날 수 있어 치명적인 부작용으로 통한다.
때문에 캐나다, 미국, 뉴질랜드 등에서는 IPA제제가 시판되지 않고 있으며, 아일랜드와 터키에서는 치명적인 재생불량성빈혈 등이 발생한다는 이유로 시판을 금지한 바 있다. 이탈리아 역시 이 의약품을 장기간 사용했을 때 나타나는 부작용 때문에 심각한 통증이나 발열의 단기 치료제로만 승인이 된 상태다.
'게보린' 타격 얼마나?
게보린은 중소기업에 불과하던 삼진제약을 중견 제약사의 반열로 끌어올린 공전의 히트상품이다.
삼진제약은 2006년만 하더라도 게보린 매출로만 164억원 이상을 벌어들였다.
그러나 국내에서 게보린을 비롯한 IPA제제의 안전성 논란이 불거진 2008년 사업보고서부터는 게보린 매출액을 밝히지 않고 있다. 다만 제약업계에 알려지기로는 안전성 논란으로 매출이 떨어지기 시작했고, 지난해 3월 15세 미만에게 사용금지 조치가 내려진 뒤에는 상당한 타격을 입은 것으로 알려졌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삼진제약의 매출에서 게보린이 차지하는 비중은 아직도 높은 편이다.
삼진제약은 지난해 매출 1653억원, 영업이익 120억원을 기록했다. 게보린을 포함해 정제 의약품의 매출액은 911억 5천200만원으로 절반 이상(55.11%)을 차지했다. 특히 정제 약품의 경우 수출액 1억 3천400만원을 제외한 910억원어치가 국내에서 판매돼 내수시장 의존도가 지대했다.
무엇보다 게보린은 일반 소비자에게 인지도가 높은 삼진제약의 대표제품으로 기업 이미지를 좌우하고 있어서 매출비중 이상의 의미를 지니고 있다.
이처럼 회사의 명운을 좌우할 간판제품이 2년 동안이나 안전성 논란을 빚고 있는데도 삼진제약은 아무런 대응을 하지 않고 있다. 국내 3위의 두통약인 '펜잘'을 생산하는 종근당과 '암씨롱'의 동아제약 등 경쟁사들이 제품 리뉴얼을 통해 IPA를 다른 성분으로 대체한 것과는 상반된 행보다.
최근 IPA제제의 안전성 논란이 다시 불거지면서 삼진제약은 엎친데 덮친 격으로 잇따른 위기상황을 맞고 있다.
지난해 8월 에이즈치료제(SJ-3366)의 미국내 임상승인이 좌절덴 데 이어, 최근에는 국내 유일의 글루코사민 성분 의약품인 '오스테민'마저 효능논란에 휩싸여 있는 상황이다.
식약청이 최근 글루코사민에 대해 '퇴행성관절염 증상완화'에 초점을 맞춰 효능을 인정키로 한 것으로 알려졌지만, 한번 나빠졌던 이미지가 얼마나 회복될지는 미지수다.
그나마 항혈전제 '플래리스'의 선전을 위안으로 삼고 있지만, 연일 계속되는 '게보린'의 안전성 논란에는 상황만 주시하고 있는 형편이다.
리뉴얼 안하나, 못하나?
경쟁사들이 IPA를 다른 성분으로 대체한 것과 달리, 삼진제약과 다국적제약사인 바이엘코리아(사리돈에이)는 IPA제제를 계속 판매하고 있다. 국내에서 아직까지 치명적인 부작용이 보고된 적이 없다는 이유에서다.
삼진제약 관계자는 종근당과 동아제약이 IPA성분을 뺀 리뉴얼 제품을 출시한 것에 대해 "회사마다 정책이 다른 것일뿐 식품의약품안전청의 허가사항에 따라 (게보린을) 제조.판매하고 있다"고 해명했다. 이 관계자는 "게보린 등에 사용된 IPA 성분은 40여개 국가에서 사용되고 있다"면서 "시판 후 어떤 문제점이 발생했느냐에 따라 상황이 달라질텐데, 아직까지 경미한 부작용밖에 보고되지 않았다"고 말했다.
바이엘코리아 측은 "1981년 '사리돈에이'를 국내에서 출시한 이후 의식장애 등 치명적인 부작용이 발생한 사례는 보고되지 않은 것으로 알고 있다"며 "일부 국내에 시판중인 IPA제제에 대해 경미한 부작용이 보고됐지만 모두 주의사항에 포함됐다"고 입장을 밝혔다.
제약업계에서는 삼진제약이 섣불리 성분대체에 나서지 못하는 이유를 기술이나 비용문제 보다는 명분싸움에 있는 것으로 보고 있다.
IPA 대신 다른 성분으로 약을 제조하는 데 별다른 비용이 들지 않고, 기술적으로도 큰 문제가 없다는 것이 종근당과 동아제약을 비롯한 제약업계 관계자들의 설명이다.
반면, 삼진제약의 경우 게보린 한 품목에 대한 의존도가 너무 커서 섣불리 결정을 내리지 못하고 있는 것으로 분석된다.
IPA를 다른 성분으로 대체할 경우 스스로 게보린의 안전성에 문제가 있다는 점을 인정하는 꼴이 되기 때문에 그로 인한 이미지 타격이 불가피하다는 계산에서다.
제약업계의 한 관계자는 "최근 삼진제약의 경영상황을 보면 게보린이 잘못될 경우 회사의 존립자체가 흔들릴 정도로 타격을 입을 가능성이 높다"며 "그래서 끝까지 버티기에 나선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고 말했다.
식약청 이번에는 다를까?
결국 삼진제약이 스스로 입장을 바꾸지 않는 한, 게보린은 식약청의 안전성 검토 결과에 따라 그 명운이 갈릴 전망이다.
식약청은 그동안 줄곧 IPA제제의 일반판매를 옹호하는 입장을 견지해왔고, 이로 인해 특정 업체를 비호한다는 비판까지 받아왔다.
뜨거운 논란에도 불구하고 식약청 내부에서는 여전히 보수적인 분위기가 우세한 편이다.
식약청 관계자는 "몇 년간 논란이 된 게보린의 안전성 검토는 '의약품의 재판'에 해당된다. 여론에 의한 재판이 아니라 명확한 증거가 있어야 하는데, 지난해 3월 '15세 미만 사용금지' 조치 이후 새로운 안전성 근거가 나오지 않았다. '사리돈에이'의 경우 지난해 기준으로 40여개국에서 시판되고 있으며, 사리돈에이 등 IPA제제는 190여개 국가에서 사용되고 있다"고 설명했다.
이 관계자는 또 "게보린을 전문의약품으로 전환시켜야 한다는 의견도 있지만, 파키스탄을 제외한 나머지 국가들은 일반의약품으로 허가하고 있다"며 "의약분업 이후 전문의약품 구분은 안전성 문제 뿐 아니라 편의성, 보험재정 등도 고려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하지만 국정감사를 통해 정치권의 집중 성토를 받은 데다가, 노 청장이 공식적으로 재검토를 공언한만큼 이번에는 다른 결론이 내려질 가능성도 적지 않은 것으로 전망된다.
식약청의 여론의 질타 속에서 어떤 결론에 도달할지, 삼진제약이 게보린의 운명을 걸고 버티기를 계속할 수 있을지 귀추가 주목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