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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정은과 장영신의 DNA가 바뀐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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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정은과 장영신의 DNA가 바뀐 이유
  • 뉴스관리자 csnews@csnews.co.kr
  • 승인 2010.11.18 08: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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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건설을 품에 안은 현정은 회장의 뚝심 리더쉽이 장안의 화제다.

 

모두가 가망없는 도전이라고 냉소하던 전쟁에서 골리앗 현대차그룹을 물리치고 트로피를 거머쥔 뚝심은 누가 뭐래도 그녀만이 해낼 수있는 리더십이었다.

 

어렷을 적부터 쳬계적인 경영수업을 받거나 아니면 사람들 사이에서 부딪치며 자수성가한 남성 기업인들도 돌파해내기 힘든 위기를 건너온 것이다.

 

물론 ‘승자의 저주’라는 더 큰 위기가 남아 있긴 하지만 평범한 주부에서 대기업 총수로 변신한 8년간 그녀가 보여준 뚝심 리더십은 괄목하기에 충분하다.

 

현회장은 지난 2003년 10월, 남편과 사별한 지 채 100일도 되지 않은 상황에서 위기의 현대그룹 수장이 됐다. 당시 나이 47살이었다.

 

47세 이전 현회장의 생활은 어땠을까?

 

역시 거대기업인 현대상선 오너(현영원) 딸이었으며 남편이 현대그룹 회장이었으니 무슨 걱정이 있었을까? 아무 걱정없이 살림하고 아이 낳아 기르고 또래의 재계 ‘안방마님’들과 사교모임을 즐기지 않았을까?

 

재계에 또 한사람의 치열한 미망인 경영인이 있다.

 

바로 장영신 애경그룹 회장이다.

 

장회장 역시 현회장과 비슷한 길을 걸어왔다.

 

장회장의 남편인 고 채몽인 창업주는 1954년 애경유지공업주식회사를 설립해 세탁비누를 만들기 시작했다. 당시 겨비누나 양잿물로 세탁을 하던 시절이라 편하고 세척력 좋은 세탁비누는 날개 돋친 듯 팔렸고 2년후엔 국내 최초 화장비누인 ‘미향비누’를 생산해 사업은 일취월장햇다.

 

그러나 창업주는 1970년 심장마비로 갑작스럽게 타계했다. 당시 막내아들을 낳고 병원에 누워있던 장 회장은 몸조리 겨를도 없이 생계에 내몰렸다. 당시 34살이었다.

 

장 회장 역시 그때까지 평범한 주부로 살림하고 3남 1녀를 키우는 아이 엄마로 살아왔다.

 

갑자기 생계에 내몰린 ‘왕 초보’CEO 장영신은 먼저 경리학원에 등록해 장부 정리하는 법부터 배웠다. ‘숫자 까막눈’을 극복하기 위해서였다.

 

시작은 어설프기 짝이 없는 CEO였으나 그녀는 30여년만에 비누회사 애경을 20여개 계열사, 매출액 3조7000억원대(2009년) 규모의 그룹으로 키워냈다.

 

이 두 여장부 경영인들이 주부에서 굴지의 CEO로 일약 변신한 배경은 무엇일까?

 

예전 장영신 회장을 두어시간동안 단독 인터뷰한 적이 있다.

 

그때 장회장은 이같은 질문에 “네아이의 엄마 장영신이었기 때문에 가능했던 일”이라고 망설임없이 말했다.

 

벼랑끝이었다. 남편이 사업이 시작해 놓긴 했지만 조그만 중소기업이었기에 오너가 챙기지 않으면 쓰러지는 상황이었다.

 

아이들을 양육해야 하고 더욱이 아버지없는 아이들을 번듯하게 키우기 위해선 기필코 사업을 지켜야 했다.

 

현회장도 2녀1남의 엄마다.

 

정몽헌 회장 작고 후 3남매를 키워내야 한다는 절박함, 억울하게 타계한 남편의 한을 풀어줘야 한다는 책임감이 주부 현정은을 승부사 현정은으로 DNA를 바꾼 것은 아닐까? [소비자가 만드는 신문=최현숙 주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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