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자동차의 에어백이 무용지물이 되고 있다.
그것도 국산 고급 RV차량이나 가격이 억대가 넘는 외제승용차가 휴지조각이 될 만큼 큰 사고를 당했는데도 이런 어처구니없는 일이 종종 발생하고 있어 충격과 불안감을 더해주고 있다.
에어백은 사고가 날 경우 운전석과 조수석, 측면에서 공기주머니가 부풀어오르며 운전자와 탑승자의 안전을 지켜주는 고가의 첨단 안전장치다.
때문에 소비자들은 비싼 돈을 주고 에어백을 달거나, 에어백시스템이 잘 장착된 고급 차들을 구매하는 것이다.
그러나 이런 에어백이 결정적일 때 터지지 않는다면 어떻게 될까.
자동차 사고로 목숨을 잃을 뻔한 피해 소비자들이 해당 회사에 강한 불만을 제기하지만 회사측은 “에어백 자체에는 문제가 없다”는 식으로 대부분 책임을 회피하고 있다.
또 에어백 터지는 조건이 지나치게 까다로운 것이 아니냐는 지적도 나오고 있다.
소비자가 만드는 신문에 올라온 대표적인 에어백 관련 피해사례들을 모아봤다.
#사례1=소비자 최재찬(56·광주시 북구 용봉동)씨는 지난해 12월 15일 쌍용차 ‘뉴렉스턴’을 타고 가던중 광산구 삼거동 노상에서 고압전신주와 충돌해 차량이 전복되는 교통사고를 당했다.
이 사고로 운전자를 포함해 2명은 안전벨트에 의한 가슴압박 타박상, 복벽 타박상, 허리뼈 염좌 및 긴장, 발목 염좌 및 긴장, 뇌진탕 등 진단을 받았다.
최 씨는 좌측 어깨 관절의 탈구, 좌측 상완골 대결절 및 견열골절(분쇄상), 안면타박 치아손상 등 전치 12주의 중상을 입었다. 현재 입원치료를 받고 있는 중이다.
차량의 앞부분은 충돌에 의한 충격으로 범퍼의 3분의 2가 파손됐다. 그럼에도 뉴렉스턴 차량은 단 한 개의 에어백도 터지지 않았다.
이에 대해 쌍용차측은 “전신주와 같은 딱딱한 물체와 충돌할 경우 에어백이 전개되지 않을 수 있다”고 말했다고 최 씨는 전했다.
최 씨는 “우리의 귀중한 생명을 보호하는 차원에서 판매를 중단하고 즉시 리콜에 임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사례2=회사원 임성규(경남 마산시)씨는 지난해 10월 26일 오전 5시40분쯤 경남 마산에서 거제시 신현읍 건설현장으로 출근하기 위해 쌍용차 ‘액티언’(2006년 5월식)을 몰고 가다가 진동면 4거리 앞에서 좌회전하는 스타렉스 차량을 정면으로 들이받았다. 잠이 덜 깬 상태에서 잠깐 졸았던 것이다.
시속 80km 이상의 속도로 정면추돌했는데도 자동차 에어백은 터지지 않았다. 이 바람에 임씨는 얼굴과 머리에 유리조각이 박히고 긁히는 전치 6주의 부상을 입었다. 차량도 충격에 운전석 범퍼와 펜더가 심하게 찌그러졌다.
너무 어이가 없고 어찌해야 될지를 몰라 쌍용자동차 고객지원팀에 전화를 했다. 경남지역 직원이 나와서 차량및 에어백 상태 등을 검사했다. "측면 충돌이어서 센서가 에어백이 터지는 충격에 도달하지 않아 안터졌다"며 에어백 자체는 이상이 없다고 했다.
더구나 검사를 나온 직원은 "에어백이 터질 수 있는 조건이 안된 것 같다. 안전벨트 보조장치이기 때문에 시속 100km로 사고가 나도 정면이 아니면 안터질 수 있다. 센서는 이상이 없다"고 말했다고 그는 전했다.
임씨는 "불의의 사고가 나더라도 생명을 지키기 위해 비싸게 옵션을 추가해서 에어백을 다는데, 안터지면 무슨 소용이 있겠느냐"며 "'PL법이 시행됐는데도 기업은 여전히 소비자를 우롱하고 있다"고 분통을 터뜨렸다.
이에 대해 직접 사고차량 검사를 담당했던 쌍용차 직원은 "사고경위, 차량상태, 각종 센서 등 기계상의 문제를 점검했다. 그러나 센서는 이상이 없었다. 아마 충돌 각도 등 조건이 안돼 안터진 것같다"고 말했다.
쌍용자동차 고객지원팀 관계자는 "에어백이 터지는 조건이 복잡하다"며 "차량의 충돌 각도, 높이 등 세부적인 요소를 고려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사례3=자영업자인 최정희(28·인천시 남동구 간석4동)씨는 아버지(최준성·57)지난해 11월 24일 아우디 ‘A8’를 몰고 서울 구로구 고척2동 파출소 4거리 교차로를 지나던중 우측에서 신호를 위반하고 달려오던 화물트럭과 직각으로 충돌했다.
이 사고로 아버지가 몰던 아우디 승용차의 앞 부문이 심하게 부서졌다. 차량의 앞 범퍼는 날아가 버렸고, 보닛도 구겨질 정도로 충격이 강했다. 수리견적이 웬만한 국산 고급차 1대값인 3000만원이나 나왔다.
다행히 아버지가 크게 다치지는 않았지만, 최첨단의 안전시스템을 자랑한다던 에어백은 단 한 개도 터지지 않았다.
최 씨는 “세계적인 자동차 회사라는 곳에서 차량의 안전성이나 서비스 문제가 이렇게도 허술한지 몰랐다. 어디에 호소를 하고 어디에서 보상을 받아야될 지 모르겠다”고 하소연했다.
이에 대해 아우디 코리아 민원실 관계자는 “정면 충돌이 아니고 옆에서 스쳤다. 때문에 컨트롤 모듈의 에어백 센서가 감지되지 않았다. 일단 에어백 시스템의 문제는 아닌 것으로 보인다”고 밝혔다.
또 성수동 아우디 서비스센터 관계자는 “앞부분 충돌의 경우 에어백이 터질 수 있는 최고 각은 45도 정도다. 90도 충돌일 때는 안 터질 수가 있다. 대개는 차량 프레임의 충격이 운전석까지 미쳐야 에어백이 터지도록 설계되어 있다. 그러나 이것은 일반적인 사항일 뿐 차량상태와 에어백의 정밀 점검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사례4=소비자 김미영(여·33·경기 구리시 수택동)씨는 지난 3월 8일 저녁 기아차 ‘쏘렌토’를 몰고 경기도 청평 부근도로를 건너던 중 빙판에 미끄러지면서 정면 충돌했다. 당시 차량 운행속도는 시속 80km 정도였다.
이 사고로 운전자 김씨는 치아가 핸들에 부딪쳐 흔들리고, 머리에 심한 타박상을 입었다. 차량은 휴지조각처럼 구겨져 폐차 판정을 받았다. 안전벨트를 매지 않았더라면 생명을 보장할 수 없을만큼 큰 사고였다.
그러나 어처구니없게도 차량의 에어백은 터지지 않았다.
김 씨는 “안전벨트를 매지 않았다면 난 죽었을 것”이라며 “만일의 사고에서 안전을 지키기 위해 비싼 돈을 주고 에어백을 장착하는 것이 아니냐. 매일 악몽에 시달리고, 마음도 상처 입고, 생각만 해도 끔찍하다”고 가슴을 쓸어내렸다.
김 씨에 따르면 기아측은 1차조사에서 “배터리가 깨지면서 센서가 미작동한 것같다”고 했고, 2차 조사에서는 “측면 사고”라며 말을 바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