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에 국회는 국정조사를 통해 저축은행 사태의 본질과 비리 실체를 규명하겠다는 방침이지만 돌아가는 양상을 보면 지난번 저축은행 청문회처럼 전․현 정부의 책임소재를 놓고 정치공방만 벌이다 끝나는 게 아니냐는 우려가 적지 않다.
이번 국정조사가 소기의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서는 성역없이 전 정부의 저축은행 규제완화 정책과 현 정부의 감독소홀 책임을 함께 추궁하고 저축은행과의 검은 커넥션 등 게이트의 실상을 밝히는 데 주력해야 한다는 게 금융계 관계자들의 일치된 주문이다.
1일 정치권과 금융계에 따르면 여야 의원들은 6월 임시국회에서 국정조사 특별위원회를 구성하기로 전격 합의하고 증인채택, 활동기간 등 세부사항을 놓고 논의 중이다. 국정조사 특위는 본회의가 열리는 23일 이후 가동될 전망이며 이때쯤 검찰 수사도 발표될 것으로 보인다.
이번 국정조사의 핵심은 8개 저축은행 영업정지 과정과 부당예금 인출 내막, 정관계 로비 의혹, 저축은행 정책실패 및 부실감독 책임, 후속대책 등이다.
특히, 국정조사 대상을 놓고 한나라당은 선 검찰조사, 후 국정조사로 검찰에 기소 또는 불기소된 사람만 증인으로 불러야 한다는 입장인 반면 민주당은 검찰조사와 국정조사를 같이 병행해 규명대상을 수사선상에 오른 사람은 물론 그 윗선(청와대 관련 인사)까지 해야한다고 팽팽히 맞서고 있다.
이와 관련, 국회 정무위원회 우제창 민주당 의원실 측은 "현재 비리의 중심에 서 있는 은진수 전 감사위원과 김황식 국무총리, 정진석 정무수석 등 청와대 실세, 로비 의혹을 받고 있는 김종창 전 원장 등 검찰 수사 여부를 떠나 폭넓게 조사하자는 게 민주당의 입장"이라며 "검찰이 저축은행 수사를 잘 해 왔는데 현 권력의 개입 가능성이 제기되는 이 시점에서 국정조사를 빨리 하는 게 검찰의 독립성을 보장해 줄 수 있는 최선의 방법"이라고 지적했다.
우제창 의원은 지난 27일 국회 정무위 회의에서 은진수 전 감사위원이 청와대 지시에 따라 감사원의 저축은행 감사결과 보고서를 은폐하는 역할을 했다고 의혹을 제기한 바 있다.
우 의원실 관계자는 "전 정권이든 현 정권이든 이 얘기를 하지 말고 국정조사에서 윗선 개입 의혹을 모두 밝히자는 게 이번 국정조사의 목적"이라고 강조했다.
금융계는 저축은행 비리에 금감원은 물론 감사원 고위 간부와 금융정책당국 전직 수장까지 연루 의혹이 불거지는 상황에서 이번 국회 국정조사가 얼마만큼 실효성있는 결과물을 내놓을지 주목하고 있다.
경제개혁연대 김상조 소장(한성대 교수)은 "외환위기 이후 지금까지 저축은행 관련 정책 모두가 국정조사의 대상이 돼야 한다고 본다"면서 "굳이 어느 정부의 책임이라고 할 수 없을 만큼 저축은행 부실은 구조적인, 오랜 개혁과제"라고 지적했다.
사실 저축은행 부실문제는 전․현 정권의 잘못된 정책과 관리 소홀에 있음이 여러 차례 지적돼왔다. 2001년과 2002년 김대중 정부시절 예금자보호 한도 확대와 '상호신용금고'를 지금의 ‘상호저축은행’으로 명칭 변경을 허용하면서 저축은행의 부실운영을 초래했다.
또 노무현 정부시절인 2005년 고정이하 여신비율 8% 미만, 국제결제은행(BIS) 자기자본비율 8% 이상으로 재무구조가 양호한 우량 저축은행, 즉 8․8클럽에 가입한 저축은행에 여신한도를 완화해 주면서 저축은행들이 BIS 비율을 허위로 조작해 대출에 나서는 등 프로젝트파이낸싱(PF) 부실의 단초를 제공한 바 있다.
저축은행에 규제를 완화해 주면 어떤 위험이 뒤따를 지를 잘 아는 당시의 금융당국자들이 저축은행에 이토록 관대한 정책을 편 배경이 무엇인지를 국회와 검찰은 반드시 규명해야할 책임이 있다.
당시 정권 실세들이 금융당국자들에게 저축은행 규제완화를 종용했는지, 또 감독당국이 조작된 자기자본 비율 및 부실여신비율만 믿고 확인도 하지 않은 채 규제환화를 허용함으로써 감독책임까지 소홀히한 배경은 무엇인지를 속속 파헤쳐야 할 때가 된 것이다.
이는 전정권의 금융당국수장들을 철저히 추궁해야 얻을 수 있는 사안들이다.
2008년 투자은행인 리먼브라더스 파산으로 글로벌 금융위기를 맞으면서 세계적으로 금융기관에 대한 감독을 강화해 나갔지만 현 정부는 감독강화는 커녕 리스크 부담을 안고 있는 저축은행 PF에 대한 관리소홀 및 구조조정 실패로 부실피해를 키웠다.
심지어는 저축은행간 인수․합병(M&A)으로 우량 저축은행까지 흔들리게 만들었다. 이는 김종창 전 금감원장과 진동수.전광우 전금융위원장 등 현 정부 금융당국 전직 수장들이 책임추궁을 받아야 하는 이유다.
이처럼 저축은행 게이트와 관련해서는 전 정부의 저축은행 정책실패와 현 정권의 부실감독문제를 동시에 규명해야 하는 묘한 상황에 놓여있다.
일각에서는 김석동 금융위원장이 취임하기 이전 전직 금융당국 수장이 청와대에 공적자금 투입을 통해 구조조정에 나서야 한다고 진언했으나 현실화 되지 못한 것으로 알려져 이의 진위여부에도 촉각이 모아지고 있다.
아울러 저축은행 부실문제 해결을 위해 고군분투 해왔던 김 위원장도 최근 청와대에 공적자금 투입 등을 포함해 저축은행 PF 부실 해소에 적극 대처하는 방안을 건의했으나 관철시키지 못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를 두고 시장에서는 정부 내부에 저축은행 문제를 공론화 시키는 것을 우려해 저축은행 개혁과 관련해 딴지를 거는 배후세력이 있는 게 아니냐는 의혹까지 제기되고 있어 이 또한 국정조사에서 밝혀져야 할 것으로 보인다.
검찰이 저축은행 부실 및 비리 사건에 금감원 현직 임원과 은진수 전 감사원 감사위원 등 고위급의 연루 정황을 포착, 집중 수사 중인 가운데 만약 저축은행 부실의 몸통이 전정권 실세와 현정부 청와대 관련 주요 인사 및 일부 감독장국 수장까지 개입된 것으로 밝혀진다면 이에 대한 사법적 처벌과 국회차원의 책임추궁이 뒤따라야 할 것으로 보인다.
한편, 참여연대 사회경제팀 김진욱 간사는 "최근 검찰 수사 방향이 금융당국 관료들의 비리에 초점이 맞춰져 있는데 저축은행 사태의 본질은 서민금융기관인 저축은행이 어떻게 부동산 PF여신을 확대해 부실화 됐는지를 밝히는 것"이라며 "정부가 부실문제를 적시에 해결하지 못하고 저축은행간 M&A로 인해 부실을 초래한 점, 부실PF를 3년간 캠코에 떠맡긴 점 등에 대한 책임소재를 규명해야 하지만 이번 국정조사에서는 빠져있는 것 같다"고 지적했다.
아울러 김 간사는 "4만명의 저축은행 예금 피해자들에 대한 구제방안도 국정조사에서 함께 논의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마이경제 뉴스팀/소비자가 만드는 신문=임민희 기자]
저작권자 © 소비자가 만드는 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