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일 연합뉴스가 입수한 국내 굴지의 영화제작사 A사 문건에 따르면 이 제작사의 프로듀서 B씨는 2005~2006년 5~6편의 영화를 제작하면서 각종 인건비와 제작비를 과다계상하고 제작업체를 선정하면서 리베이트를 받는 수법 등으로 30여 차례에 걸쳐 2억여 원을 횡령했다는 의혹이 제기됐다.
B씨는 2005년 12월 영화감독 C씨로부터 500만 원을 받은 것을 비롯해 지난해 1월에는 보조출연업체 대표 D씨로부터 300만 원, 필름업체 대표 E씨로부터 300만 원, 영화 무술감독 F씨로부터 200만 원, 영화촬영기사 G씨로부터 450만 원 등을 받은 것으로 기재돼 있다.
또 같은 해 3월에는 영화 촬영감독 H씨로부터 1천만 원, 카메라대여업체 대표 I씨로부터 500만 원, 특수효과업체로부터 200만 원, 영화감독 J씨로부터 100만 원, 6월에는 세트시공업체로부터 1천만 원, 7월에는 영화 음악감독 K씨로부터 300만 원, 9월에는 믹싱기사 L씨로부터 500만 원을 받는 등 총 30여 차례에 걸쳐 2억여 원을 수수한 것으로 알려졌다.
B씨는 영화제작에 필요한 인건비와 제작비를 과다계상해 빼돌리거나 세트시공업체와 특수효과업체, 필름업체 등을 선정하는 과정에서 특정업체를 선정해주는 대가로 리베이트를 받는 등의 수법을 사용해 공금을 횡령했다는 의혹을 받고 있다.
이에 대해 A사 대표 M씨는 "최근 불미스러운 일로 해고를 당한 직원이 앙심을 품고 B씨를 음해한 것으로 알고 있다"면서 "문건에 나타난 금전거래 관계는 빌려준 돈을 돌려받았다거나 은행 신용거래가 어려운 사람을 대신해 돈을 받은 뒤 전해준 것이라서 제작비 과다계상이나 리베이트와는 거리가 멀다"고 해명했다.
한편 A사 프로듀서의 공금횡령 의혹에 대해 상당수 영화전문가들은 그동안 영화계 내부에서 소문으로만 떠돌던 구조적 비리가 수면 위로 드러난 것일지 모른다는 반응을 보였다.
CJ엔터테인먼트 관계자는 "지난해 영화계로 투자자금이 대거 몰리면서 일부 제작자들 사이에 '모럴 헤저드'가 일어났을 수도 있을 것"이라며 "A사 사건의 정확한 진상은 모르겠지만 제작자가 나쁜 마음을 먹을 경우 제작비를 빼돌리는 일이 불가능하지는 않을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또 "영화제작자가 작품의 완성도를 높이기 위해 제작비를 쓸 생각은 하지 않고 이런저런 편법수단을 동원해 개인착복이나 할 궁리나 한다면 작품의 질이 떨어지는 것은 당연하다"면서 "지난해 한국 영화계에 졸속작이 양산된 것도 이런 현상과 관계가 없는지 궁금한 부분"이라고 지적했다.
A사와 공동작업을 많이 해온 쇼박스㈜미디어플렉스는 B씨의 공금횡령 의혹 소식을 접하고 진상 파악에 나섰다. 쇼박스 관계자는 "최근 회계감사가 강화돼 제작비 횡령은 과거의 관행으로만 알고 있었는데 이런 의혹이 불거져 당황스럽다"면서 "일단 정확한 진상을 파악해봐야 할 것 같다"고 말했다(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