절도죄로 구속기소된 한 청년에게 어린 시절 머리를 다쳐 `정신질환적 도벽'이 생긴 점을 딱히 여기고 석방 판결을 내렸던 일선 판사의 사연이 법원 인터넷 홈페이지에 올랐다.
서울중앙지법 민사2단독 이완희 판사는 24일 이 법원 홈페이지에 올린 `강원도 감자'라는 제목의 글에서 한번 집행유예 판결을 내렸던 절도 사건 피고인을 또 재판하게 된 사연을 소개했다.
편의점에서 물품을 훔쳐 구속됐던 청년을 집행유예로 석방해줬는데 집유 기간 중 또 편의점에서 물건을 훔치다 구속기소됐고 어찌된 인연인지 다른 판사도 아닌 자신에게 사건이 배당됐다는 것.
이 판사는 "그 청년은 가정 환경이 불우했고 고교시절 교통사고로 머리를 크게 다쳐 일자리도 구할 수 없는 형편이었다"면서 "첫 재판때는 선처가 가능했지만 집유 기간에 또 범행을 해 실형을 선고할 수 밖에 없는 상황이었다"고 떠올렸다.
그런데 이 판사는 그 청년이 절도를 벌였던 편의점을 범행 다음날 찾아가 물건을 사려다가 체포된 사실을 알게 됐고 `범행장소에 무슨 배짱으로 다시 찾아갔을까'하는 생각에 직권으로 피고인의 정신감정을 의뢰했다.
그 결과 교통사고로 머리를 다치면서 충동적인 도벽 성향을 보이는 정신장애가 있다는 점을 밝혀냈고 이 판사는 이런 `특별한 사정'을 들어 이례적으로 청년에게 벌금형을 선고했다.
이 청년은 "고향인 강원도에 가서 죄짓지 않고 열심히 농사를 짓겠다"고 다짐 한 뒤 "첫 수확한 감자를 판사님께 보내드리겠다"고 말했다.
이 판사는 "아직까지 감자를 받지 못했지만 이따금씩 법정에 들어서면서 그 청년이 시린 땀을 흘리며 감자를 한 박스 메고 오는 것을 상상해 본다면 너무 큰 대가를 바라는 것일까?"라는 말로 글을 마쳤다.
서울중앙지법은 이 판사의 글처럼 다양화된 사회의 갈등과 분쟁을 안고 고민하는 판사들의 솔직한 글이나 알아두면 좋은 법률상식 등을 고정적으로 싣는 `법원 칼럼'란을 홈페이지에 개설했다.
법원칼럼에는 생활 속에서 계약서와 차용증 작성 습관이 필요하다는 이 법원 황병하 부장판사의 글과 재산을 놓고 법적다툼을 벌이던 자매를 화해시켜 조정을 성사시킨 사연을 소개한 신태길 부장판사의 글도 올라와 있다.
이주흥 서울중앙지법원장은 법원칼럼을 소개한 글에서 "`판사는 판결로만 말한다'는 격언에 안주하기 보다 법원의 실상과 법원 구성원들의 생각을 진솔하게 고백해 국민과 법원 사이의 간격이 좁혀질 수 있기를 기대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