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건 마치 무슨 이데올로기 전쟁을 보는 것 같아요. ‘디 워’와 심형래의 지지자와 반대자가 양편으로 갈려 서로 ‘사상 검증’과 ‘마녀사냥’을 하겠다고 덤비는 판이니…. 평론가와 네티즌이 등을 돌리고 한국 영화 주류와 비주류가 대결하며, 충무로와 비(非)충무로가 부딪치면서 다들 ‘내 편, 네 편’ ‘아군, 적군’으로 편 가르기를 하고 있어요.”
국내 한 유력 영화사 관계자가 한숨 섞어 털어놓은 말이다. 그의 말처럼 ‘디 워’ 영화 한 편을 둘러싸고 전례 없던 희한한 광경이 펼쳐지고 있다. 영화의 재미나 예술성에 대한 갑론을박 수준을 넘어선 지는 이미 한참이다. ‘디 워’에 대한 지지 여부를 두고 ‘이념 대결’을 벌이는 형국이다. 평단과 객석, 언론과 네티즌, 주류 영화계를 상징하는 충무로와 자의 반, 타의 반 비주류 영화인의 대표가 된 심형래 등 대중문화 ‘생산-유통-소비’의 각 주체가 우위권을 확보하기 위해 일종의 ‘권력투쟁’을 치르는 양상이다. ‘디 워’는 ‘드래곤 워(Dragon War)’라기보다는 차라리 담론(Discourse)의 전쟁이라고 할 만하다.
▶평론가들이 욕하면 뜨고, 칭찬하면 망한다
평단과 객석의 온도 차는 갈수록 커지고 있다. 평단의 호평을 받았던 ‘다세포소녀’ ‘싸이보그지만 괜찮아’ ‘좋지 아니한가’ 등은 관객들의 악평 속에 흥행에 실패했다. 반면 ‘디 워’는 평단의 차가운 반응에 아랑곳하지 않는 네티즌의 뜨거운 지지를 얻고 있다. “특수효과는 봐줄 만하지만 이야기가 엉성하다”는 요지의 평이 대세를 이뤘고, 심지어 “아동용” “영화 기본의 망각”이라는 극단적인 평가도 적지 않았지만 관객들은 평론가를 비웃는 결과를 만들었다. 일부 관객은 흥행실패작에 보낸 평론가들의 호평과 ‘디 워’의 혹평을 비교해가며 평가 기준에 의문과 비판을 제기하고 있다.
▶반(反)충무로 정서도 득세
이송희일 감독과 영화제작자 김조광수의 ‘디 워’ 비판이나 ‘디 워’를 염두에 둔 듯한 봉준호 감독의 발언은 마치 주류 영화계 전체의 기류를 대변하는 듯 받아들여지며 심형래 팬과 ‘디 워’ 지지자들이 가진 ‘반충무로 정서’를 부채질했다. 심 감독은 영화 개봉 전부터 줄곧 “충무로에서 나에게 해준 게 뭐가 있느냐”며 주류 영화계에 대한 반감을 표해왔다. 자신은 충무로의 제작 시스템에서 작품을 만들지도 않아 왔을 뿐더러 ‘우뢰매’ ‘용가리’ 등은 전문 영화관이 아닌 각 지역 시민회관 등에서 개봉해왔다는 것이다. 심 감독은 TV에서도 주류 영화계에서 무시당했던 경험을 토로하며 ‘약자’임을 강조해왔다. 여기에 스크린쿼터 축소 반대투쟁이나 배우 출연료 논쟁 등으로 불거졌던 영화인들에 대한 대중적 불신이 더해져 팬들 사이에 ‘반충무로 정서’를 키우고 있다.
▶네티즌, 대중문화의 새로운 권력집단이 주도하는 ‘디 워’ 열풍
‘디 워’ 열풍은 평론가로 상징되는 지식권력이나 충무로로 대표되는 문화권력에 대항해서 네티즌이 대중문화의 새로운 권력 주체로서 자신을 정립하며 거대한 현상을 만들어낸 본격적인 사례다. ‘괴물’ ‘왕의 남자’ ‘실미도’ ‘태극기 휘날리며’ 등의 흥행에는 평단.언론.영화계.관객 사이에 어느 정도의 ‘공감대’가 존재했으나 ‘디 워’에서는 오히려 각 주체 간의 ‘적대감’이 더 크다. 여기에는 관객들의 ‘자발성’뿐 아니라 할리우드 콤플렉스와 애국주의.민족주의를 자극한 영화사의 마케팅 전략이 결합돼 있다. 심 감독에게는 역경과 차별을 딛고 꿈을 이룬 ‘영웅’의 이미지가 덧붙여지고 ‘약자’에 대한 온정주의와 ‘이것이 대세’라는 주류 지향의 사회 분위기가 더해져 흥행 행진을 가속화시켰다. 이처럼 ‘디 워’는 한국 영화계에 희망과 우려를 동시에 던졌다. 1000만 고지를 향해 용틀임을 하고 있는 ‘디 워’가 물게 될 여의주는 독이 될까, 약이 될까.
이형석 기자(suk@heraldm.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