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들어 보기 드문 혼전이 펼쳐지고 있는 프로야구판과 경제침체로 한 치 앞을 예측할 수 없는 기업실적이 비슷한 양상으로 전개돼 눈길을 끈다.
흔히 재벌 기업의 이미지 제고 수단으로 거론되는 프로야구 구단의 성적표가 모기업의 실적과 비슷한 행보를 보이고 있는 것이다.
재계에서 가장 잘 나가는 삼성은 야구판에서도 압도적 1위를 기록하며 승승장구하고 있다.
스마트폰에서 매년 희망만 엿보는 LG는 야구에서도 상반기 치고 올랐다 하반기에 무너지며 다음 번을 기약해야 하는 상황이다.
한화는 미래에 올인한 태양광 사업의 부진이 마치 거금을 들여 해외파를 적극 영입하고도 꼴찌를 면하지 못하고 한화이글스와 닮아 있어 울상이다.
SK는 5년 연속 성장을 거듭했지만 올해는 실적 하락이 예상되고 있다. 해마다 한국시리즈에 진출하다가 감독 교체 후 성적이 오락가락하는 SK와이번스와 닮은 꼴이다.
삼성구단은 작년 정규시즌, 포스트시즌, 아시안시리즈 등에서 모두 우승을 거머쥐었다. 올해 전망 역시 독보적 1위로 예상됐다.
하지만 시즌 초반 삼성은 5할 승률에도 미치지 못하며 하위권을 맴돌았다.
공교롭게도 삼성 이건희 회장은 연초 위기론을 화두로 제시했다. 삼성전자가 작년 글로벌 스마트폰 시장 1위를 기록하고 사상 최대실적을 기록하는 등 잘 나가는 상태에서였다.
올 들어 삼성은 유럽발 경기침체로 주가가 곤두박질치는 등 위기를 겪었다. 한 달 만에 이건희 회장의 지분가치가 1조원 이상 증발키도 했을 정도다.
하지만 삼성그룹의 에이스인 삼성전자는 이같은 위기론을 상반기 사상최대 실적으로 돌파했다. 글로벌시장에서 스마트폰 판매량도 애플을 앞질렀다.
삼성구단 역시 현재는 독보적인 1위에 올라 2위권과 4~5게임 차이로 줄곧 앞서나가고 있다.
LG는 항상 희망만 엿본다는 점에서 구단이나 모기업이나 비슷하다.
매년 LG구단은 초반 기세를 올리며 팬들에게 가을야구의 꿈을 꾸게 만든다. 작년과 올해 LG는 상반기 2위까지 오르며 상위권을 유지했다.
문제는 중반기를 지나면서 부터다.
올해도 역시 무너졌다. LG트윈스는 어느덧 5할 승률이 무너지고 이제는 6위에 4게임차나 벌어진 7위다. 작년 시즌 막판과 마찬가지로 한화와 꼴지 다툼을 벌이게 됐다.
LG그룹의 핵심 계열사인 LG전자도 희망고문이라는 점에서는 비슷한 아픔을 겪고 있다. 최근 휴대폰 사업에서 돈을 까먹었던 LG전자는 1분기에 휴대폰사업에서 흑자를 기록하며 부진을 탈출하는 듯했다.
하지만 2분기에 휴대폰 사업이 고꾸라졌다. 휴대폰 사업부문은 567억원의 영업손실을 기록했다. 이번에는 스마트폰 판매 부진이 아니라, 피처폰이 잘 팔리지 않은 게 적자의 이유다.
휴대폰이 전체 영업이익을 갉아먹은 탓에 TV와 가전을 합친 LG전자 상반기 영업이익률은 3.1%에 불과하다. 가전 맞수 삼성전자의 영업이익률이 13%에 달하는 것에 비춰 너무나 초라할 정도다. LG전자는 상반기 25조원의 매출을 올렸고 7천970억원의 영업이익을 기록했다.
5월16일 잠실구장을 찾은 한화 김승연 회장
한화 이글스는 올해 기대가 컸다.
해외파 박찬호와 김태균이 가세하며 4강 진입이 점쳐지기도 했다. 하지만 한화는 꼴찌다. 순위 뿐 아니라 4할을 밑도는 승률면에서도 작년과 다를 것 없다.
한화그룹이 태양광 사업을 미래 성장동력으로 정하고 투자를 집중했지만 고전을 면치 못하고 있는 것과 흡사한 모습이다.
한화는 폴리실리콘-잉곳-웨이퍼-태양전지(셀)-모듈-태양광발전에 이르기까지 태양광 사업의 전 분야에 걸쳐 수직계열화를 갖추고 글로벌 시장 공략에 박차를 가하고 있지만 중국 업체들의 저가 공세 등으로 뚜렷한 수익적 성과는 내지 못하는 처지다.
한화가 태양광 사업을 위한 자금을 마련하기 위해 계열사 매각을 추진 중이라는 구설수마저 해외진출 가시권에 다다른 에이스 류현진 행보와 맞물려 관심을 끈다.
SK그룹은 2007년 지주회사 전환 뒤 작년 121조원의 매출을 올려 사상최대 실적을 냈다. 2006년 68조 대비 2배 가까이 늘어난 수치다. 영업이익도 같은 기간 5조원에서 8조원으로 76% 크게 늘었다.
그러나 올 상반기에는 매출은 작년 동기보다 8% 늘어나는데 그치고, 영업이익은 22%나 줄어들 것으로 추산된다. 오너의 불법자금 횡령의혹 등 구설수에 휘말리는 바람에 이미지도 많이 훼손됐다.
SK구단은 공교롭게도 그룹이 지주회사체제를 갖춘 2007년 김성근 감독을 사령탑으로 맞았다. 만년 하위권이던 SK는 이후 한국시리즈 단골손님이 됐고 3번의 우승을 거머쥐었다.
그런 김 감독이 작년 시즌 중 구단과의 불협화음으로 돌연 사퇴했고 팬들은 SK를 향해 돌을 던졌다. 신임 이만수 감독 체제에서 올해 SK는 겨우 승률 5할을 오가며 4위에 머물러 있다.
사실 프로야구는 재계 오너들에게 가장 사랑을 받는 스포츠로 알려져 있다.
SK 최태원 회장이나 한화 김승연 회장, LG전자 구본준 부회장 등이 재계서 소문난 야구광이다. 해설가 뺨칠 정도의 해박한 지식을 지니고 사회인 야구를 직접 즐길 정도다.
응원을 위해 야구장을 직접 찾고, 구단 점퍼를 입고 일반석에 앉아 관중과 호흡하기도 한다.
올해는 한화 김승연 회장을 비롯해 두산 박용만 회장이 잇달아 야구장을 찾았고, 삼성전자 이재용 사장도 모습을 드러냈다.
물론 우연의 일치겠지만 기업실적과 구단성적이 따로 놀지 않는 모습이 흥미롭다.(사진-연합뉴스)
[마이경제 뉴스팀/소비자가 만드는 신문=유성용 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