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통령의 입'인 백악관 대변인이 대통령을 헐뜯어도 되나?
조지 부시 대통령 아래서 3년간이나 일했던 스콧 매클렐런 전 백악관 대변인이 '대통령 때문에 거짓말을 해야 했다'는 식의 회고록 출판을 예고하자 그게 과연 온당한 일인지에 여부에 대한 미국 내 논란이 확산되고 있다고 AP통신이 23일 보도했다.
과거에도 백악관 대변인 출신들이 회고록을 쓰는 일은 적지 않았으며, 여기엔 자신이 옹호했던 대통령에 대한 평판이 담기게 마련이었다.
그러나 얼마전까지만 해도 백악관 대변인의 회고록은 자신이 모셨던 대통령이 사망하거나 최소한 퇴임한 이후에나 출간하는게 관례였다.
존 F 케네디 대통령의 대변인이었던 피에르 샐린저는 여러 권의 책을 썼지만 모두 케네디 대통령 사망 이후에 출간했으며, 아이젠하워 대통령의 대변인이었던 제임스 해거티의 일기는 아이젠하워 사후 10여년이 지난 것은 물론 1981년 해거티 스스로가 사망한뒤에야 출판됐다.
린든 존스 대통령의 대변인 조지 크리스티안이 책을 낸 것도 존슨이 퇴임한 이후였다.
그러나 "합당한 것으로 보이는 이런 오랜 규칙과 기준들은 갈수록 지켜지지 않는 것 같다"고 지미 카터 대통령의 대변인을 지낸 조디 파웰은 개탄했다.
자신이 모셨던 대통령을 비판하는 대변인 회고록의 시초는 로널드 레이건 대통령의 '입'이었던 래리 스피크스가 1988년 '솔직한 이야기'라는 책을 내면서부터.
스피크스는 이 책에서 레이건 대통령이 백악관 내에서 소외됐으며, 조지 H.W. 부시 부통령은 직언을 할 줄 모르는 '예스 맨'이라고 묘사해 파장을 일으켰다.
화가 난 레이건 대통령은 "신뢰를 저버리는 이런 책들이 가련하다"고 책망했고, 스피크스는 결국 사과를 해야 했다.
빌 클린턴 대통령의 정치 참모였던 딕 모리스가 클린턴의 재선 내막을 담은 회고록을 출판해 파문을 일으키자 조지 스테파노풀로스 당시 백악관 공보실장은 최소한 "대통령을 당혹스럽게 만들지 않는게 참모의 도리"라고 꾸짖었다.
그러나 스테파노풀로스 본인도 1999년 270만달러의 선금을 받고 펴낸 회고록에서는 클린턴을 옹호할 때의 심정이 "얼간이 같았다"고 적어 구설수에 올랐다.
이처럼 거액을 내세운 출판사들의 권유에 백악관 대변인들이 대통령에 대한 신의를 지키기는 게 갈수록 어려워지고 있다.
특히 권력의 막후를 낱낱이 밝히는 책들이 인기몰이를 하는 최근 상황 때문에 매클렐런의 경우처럼 백악관에 버젓이 남아 있는 대통령을 헐뜯는 회고록이 나오는 지경에까지 이르렀다고 전문가들은 지적한다.
부시 대통령 집권 초기 백악관 대변인을 지냈던 애리 플라이셔도 퇴임 후 얼마안돼 책을 냈지만 부시를 헐뜯는 얘기들은 하지 않았다.
플라이셔는 "만일 백악관 내 갈등이나 대통령에 대한 험담을 담았다면 훨씬 더 많은 돈을 벌었겠지만 그러지 않기로 했다"고 밝혔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