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웃에게 피를 나눠주는 삶. 그것이 저의 운명처럼 느껴져요"
왼쪽 팔이 없는 서정석(51) 씨가 헌혈을 삶 그 자체로 받아들이게 된 사연은 각별하다.
가난했던 젊은 시절 삶이 힘들어 방황하던 서 씨는 21살 젊은 나이에 순간적인 충동을 이기지 못하고 열차에 뛰어들었다.
생명이 위독할 정도로 중상을 입은 서 씨는 수차례의 수술 끝에 가까스로 목숨은 건졌지만 결국 한 쪽 팔을 잃고 말았다.
그러나 서 씨는 팔을 잃은 바로 그 때가 새로운 삶이 시작되는 순간이었다고 회고한다.
혈액 부족으로 여러 번 수술을 연기해야 했던 그는 아픈 사람의 절박한 심정을 알게 됐고 피를 나눔으로써 그 고통을 조금이라도 나눠 가져야겠다고 생각했다.
퇴원한 뒤 1982년부터 1년에 5~6차례 헌혈을 해오던 서 씨는 10여 년 전부터는 2주일에 한 번씩 단 한 번도 거르지 않고 청주시 사창동에 있는 헌혈의 집을 방문하고 있다.
지난 25년 간 서 씨의 헌혈 횟수는 무려 272회. 이는 충북에서도 두 번째로 많은 것이다.
고물상에서 일하며 받는 푼돈과 기초생활수급자에게 주는 보조금으로 어렵게 생활하는 서 씨가 헌혈을 한다며 집을 나설 때마다 주위 사람들은 '잘 먹지도 못하고 몸도 불편한데..'라며 안쓰러운 눈길을 보내지만 서 씨는 개의치 않는다.
그는 "하루면 새로운 피가 만들어지는데 굳이 아낄 필요가 있냐"며 "잠깐 시간을 내면 수없이 많은 사람들이 새로운 삶을 얻게 된다는 생각에 잊지 않고 꼭 찾게 된다"고 말했다.
일하랴, 헌혈하랴 바쁜 서 씨지만 배움도 게을리 하지 않는다.
가난으로 배우지 못한 한을 조금이라도 씻고자 2003년 방송통신대학교 컴퓨터과학과에 입학했던 그는 생계 문제에 떼밀려 잠시 중단했던 공부를 최근 다시 시작했다.
서 씨는 "인터넷을 하다가 컴퓨터에 관심을 갖게 돼 시작했지만 전문용어가 많아 수업을 따라가기가 쉽지 않다"면서도 "학위 욕심 없이 하고 싶은 공부를 할 수 있다는 것 자체가 큰 기쁨"이라며 웃었다.
헌혈의 정년은 만 65세로 그 이후에는 헌혈을 하고 싶어도 할 수 없다고 설명하는 그의 헌혈 목표는 500번.
서 씨는 "25년 동안 쉬엄쉬엄 해서 270번을 했으니 지금처럼만 꾸준히 헌혈하면 정년이 되기 전에 500번도 가능하지 않겠느냐"며 자신감을 내비쳤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최근 급격히 감소하고 있는 헌혈 인구에 대한 안타까운 심정도 숨기지 않았다.
서 씨는 "많은 사람들은 기부만이 이웃을 돕는 최선의 방법이라고 생각하는 것 같다"고 꼬집은 뒤 "헌혈이야말로 우리 이웃의 생명을 지키는 으뜸가는 선행아니겠냐"며 헌혈에 관심을 가져줄 것을 에둘러 표현했다.
가장 쉬운 듯 하면서도 차마 하지 못하는 일. 헌혈로 사랑의 나눔을 실천하는 서 씨의 인생 궤적은 더불어 사는 삶을 갈망하는 이 시대 사람들에게 큰 자극제가 될 듯하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