증권사들이 중개형 ISA 도입 이후 주식과 상장지수펀드(ETF) 등을 적극적으로 자산에 편입하며 수요를 이끌어 낸 것과 달리 은행들은 예·적금 중심의 낮은 수익률을 고수한 결과로 풀이된다.
26일 금융투자협회에 따르면 지난 5월 말 기준 은행 ISA 누적 투자금액은 13조7115억 원으로 증권사 누적 투자금액(13조9383억 원)보다 2268억 원 적었다. ISA 출시 이후 월별 누적금액에서 은행이 증권사에 뒤쳐진 적은 처음이다.

증권사 ISA는 중개형 ISA를 발판으로 1월부터 5월까지 누적 투자금액이 4조1418억 원 순증가했지만 같은 기간 은행 ISA는 275억 원 순증가하는데 그쳤다. 증권사가 4조 원 이상 자금을 유치할 때 은행은 제자리 걸음을 한 셈이다.
은행 ISA가 정체된 흐름을 보이는 이유는 기대 수익률이 낮기 때문이다. 현재 은행 ISA 전체 자산 11조6451억 원 중에서 원금보장형 자산인 예·적금은 10조1465억 원으로 비중이 87.1%에 달한다. ISA 비과세 혜택을 받기 위해 3년 간 거치해야한다는 점에서 은행 ISA는 사실상 '3년 짜리 정기예금'이라는 의미다.
은행연합회에 따르면 현재 국내 은행의 ISA 전용 예금의 1년 수익률은 3.00~3.40% 가량이다. 부산은행 '마이플랜 ISA 정기예금'이 연 3.00%으로 가장 낮았고 수협은행 'ISA(개인종합자산관리계좌)' 상품이 연 3.40%로 수익률이 가장 높았다.
5대 시중은행 중에서는 KB국민은행 'KB개인종합자산관리계좌 예금'과 신한은행 '신한은행 ISA 정기예금'이 3.20%로 가장 높았고 ▲하나은행 ISA 정기예금(3.18%) ▲농협은행 ISA 정기예금(3.15%) ▲우리은행 ISA 정기예금(3.10%) 순이었다. 현재 은행 1년 만기 정기예금과 비슷한 수익률이다.

증권사들이 판매하는 중개형 ISA를 연계한 환매조건부채권(RP)와 주가연계파생결합사채(ELB)의 보장 수익률이 평균 연 5% 정도인 점을 감안하면 수익률에서 은행이 증권사에게 밀리는 상황이다.
대형 시중은행 관계자는 "ISA가 처음 나왔을 땐 정말 비과세만 받는 상품으로 은행에 많이 몰렸는데 중개형 ISA를 비롯해 증권사 라인업이 좋아지다보니 2030세대를 중심으로 증권사로 고객이 많이 넘어간 상태"라며 "예금으로 하기에는 납입한도나 비과세한도가 너무 낮다는 점도 문제"라고 평가했다.
이와 달리 올해 상반기 주식시장이 호황을 거듭하면서 주식 또는 ETF를 편입한 증권사 중개형 ISA는 급상승하고 있다. 올해 1월부터 5월까지 증권사 중개형 ISA 누적 투자금액은 4조1418억 원 순증가했다.
중개형 ISA는 위탁매매업 허가를 받은 증권사에서만 가입할 수 있는데 기존 신탁형·일임형과 달리 채권이나 국내 상장주식 또는 펀드에 직접 투자가 가능하다. 해외주식은 직접 투자가 불가능하지만 이를 추종하는 ETF나 펀드는 투자가 가능하다.

증권사 ISA가 급격하게 성장하면서 ISA 운용 자산으로 주식과 ETF의 인기도 덩달아 올라가고 있다. 올해 5월 말 기준 국내 ISA 운용 자산 편입 비중을 살펴보면 예·적금이 45.4%로 가장 높았지만 ▲주식(22.4%) ▲해외ETF 등 상장펀드(12.2%) 등 투자형 상품의 편입 비중도 만만치 않게 높았다.
은행 입장에서는 ISA 시장 역전 현상을 뒤바꿀 만한 타계책도 보이지 않는 상황이다. ISA 수익률 개선을 위해서는 ISA 편입 자산에 투자형 상품을 포함해야하지만 '홍콩 ELS 사태' 이후 영업현장에서 투자상품을 적극 권하기도 어렵다는 반응이다.
시장이 장기간 정체되면서 주요 은행들도 ISA 관련 프로모션을 대부분 진행하지 않고 있다. 해외주식과 ETF로 무장한 증권사 중개형 ISA에 대항할 만한 뾰족한 방안이 없다는 것이 주요 은행들의 공통된 입장이다.
다만 은행들은 지난 25일 정부가 발표한 세법개정안을 기대하고 있다. 개정안에 따르면 ISA 납입한도를 연 2000만 원에서 4000만 원, 비과세 한도를 종전 200만 원에서 500만 원으로 상향 조정하는 안이 포함됐는데 안정적인 운용을 바라는 고액자산가들의 유입을 바라고 있다.
은행권에서도 그동안 ISA 납입한도와 비과세 혜택 확대를 기대하고 있었는데 세법개정안이 추진되는 만큼 제도개선 차원에서는 이견이 없는 분위기다. 다만 증권사 ISA 상품이 다양한 자산을 편입할 수 있는 등 운용 측면의 이점이 워낙 커 은행 ISA가 회복될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또 다른 은행 관계자는 "정부가 ISA 납입한도와 세제혜택 규모를 크게 늘리기로 세법개정 방향을 잡게 되면서 제도개선과 관련해서 은행권이 당장 요구할 만한 건은 보이지 않는다"면서 "다만 한도가 2배 늘어나더라도 증권사로 옮겨진 가입자들을 되돌리기는 단기적으로 쉽지 않을 것으로 예상한다"고 말했다.
[소비자가만드는신문=김건우 기자]